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초전성당 주임)
오늘 복음은 언뜻 아름다운 이야기로 보입니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나병은 사라졌고 예수님의 인기는 하늘을 찌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을 이렇게만 본다면 너무 순진한 시선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1독서는 악성 피부병의 영적인 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죄는 사제에게 가서 드러내어져야 하고 사람들 앞에 고백되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격리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이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2독서에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고 그 어떤 영역에도 방해를 놓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행위가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아니라 어떤 의도를 지니고 있고 어떤 목적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살피도록 합니다.
이렇게 두 독서를 앞에 배치하고 복음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복음 안에서는 이 독서에서 언급되는 사건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치유 사화에서는 특이한 점이 눈에 보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위성과는 상관 없는 것입니다. 해 줄 수도 안 해 줄 수도 있는 것을 예수님께서 당신의 선의 안에서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치유들 같은 경우에는 마치 하나의 교리교재처럼 그 치유를 통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목적이 뚜렷한 경우가 많습니다. 헌데 이 경우에는 정반대로 예수님이 그냥 베풀어주는 치유입니다.
그래서 '말하지 말라', 즉 함구령이 떨어집니다. 그는 1독서의 예시처럼 그저 사제에게 가서 부정을 벗어난 확증을 받고 예물을 바쳐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명하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예수님의 명령을 지킬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그는 떠나가자마자 주님의 고귀한 명령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에게 일어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립니다. 안타깝게도 이는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병에서 구원해 준 사람에게 감사를 갖기는 커녕 도리어 이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결국 그 사람의 선포는 예수님의 선교 사업에 도움이 된 것이 아니라 방해가 된 것입니다. 앞서 2독서에 나오는 방해를 놓지 말라는 이야기에 대한 하나의 예시가 된 사건인 셈입니다.
물론 하느님의 뜻이 더 드높기 때문에 드러나게 다니지 못해도 복음은 계속 전파됩니다. 고을 안으로 들어가나 바깥에 머무르시나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 나병환자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는 일입니다. 무조건 모든 일이 드러내 보여지고 알려진다고 좋은 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식별과 더불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알아야 마땅하다는 듯이 행동합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불 붙이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과 다 큰 어린이 불 붙이는 방법을 아는 것은 그 실행에 차이가 있습니다. 적어도 어른은 책임질 수 없는 곳에 함부로 불을 붙여서는 안된다는 것은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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