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 환경

은빛 죽방멸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코리언지오그래픽-10편 시간의 그물 죽방렴] / KBS 20141218 방송

松竹/김철이 2023. 12. 18. 16:19

은빛 죽방멸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코리언지오그래픽-10편 시간의 그물 죽방렴] / KBS 20141218 방송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EZlkNOchS-U

 

 


▶ 한반도 남쪽 푸른 바다에 안긴 섬, 경상남도 남해. 그 바다에 대나무로 만든 죽방렴(竹防簾)을 치고 하루에 두 번, 물때를 기다리며 대대로 삶을 살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5백년 넘게 이어진 전통 어업유산, 바다의 문전옥답인 죽방렴은 인간이 최대한 자연에 순응하며 겸손하게 드리운 시간의 그물이자 삶의 그물이었다. 죽방렴 멸치잡이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시간을 시적인 영상으로 담아냈다.

1. 8할이 기다림인 시간의 그물, 죽방렴
바다는 언제나 봄이 돌아온 것을 한 발 먼저 알고 있다. 그리고 바다에 가득해진 그 봄빛을 남해의 어부들은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유자망, 안강망, 연안들망, 낭장망, 권현망 등 30가지가 넘는 다양한 방식으로 멸치를 잡는 배들이 남해바다로 나가는 시간. 봄날의 미조항은 온통 은빛 비늘을 뒤집어쓴 어부들의 멸치털이 작업으로 활기가 넘친다. 하지만 같은 남해라도 지족해협에서 만나는 멸치잡이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어군탐지기를 설치하고, 대형 그물을 펼치며 멸치떼를 쫓아가는 어선들 대신 그 바다에 있는 것은 대나무로 엮은 발을 바다에 세워 둔 죽방렴(竹防簾). 멸치 또한 아무 때나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죽방렴 어부는 하루에 두 번 썰물 때를 기다려 작은 목선을 타고 바다로 간다. 하루의 8할이 기다림인 시간의 그물이 죽방렴인 것이다.

2. 은빛 멸치를 기다리다
남해바다는 멸치의 은빛으로 풍요롭다. 작고 흔한 물고기이기에 [자산어보]에서는 멸치를 가리켜 업신여길 멸(蔑)자를 써서 멸어(蔑魚)라 하였고, ‘물 밖으로 나오면 급한 성질 때문에 금방 죽는다’는 뜻으로 멸할 멸(滅)자의 멸어(滅魚)라고도 적었다. 하지만 멸치는 바다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 2만여 종의 물고기가 사는 바다에서 가장 많은 개체 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뼈대 있는 가문을 이룬 멸치들이다. 그러나 흔하다는 이유로 정작 제대로 조명되지 못 했던 은빛 찬란한 멸치 이야기. 갈치 등 포식자와 이루는 먹이사슬의 드라마와 하늘을 수놓는 철새들처럼 자유롭게 남해바다를 유영하는 멸치떼의 한밤 무도회, 그리고 물 밖 어부들의 삶을 지탱해준 자연의 선물로서 죽방렴의 싱싱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3. 죽방렴의 역사와 지족해협
세태의 변화와 함께 이제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원시어업이자 전통어업 유산인 죽방렴이 삶의 땀내 풍기는 온전한 생업으로 5백 년 넘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죽방렴(竹防簾)은 대나무로 만든 어살의 일종으로 얕은 바다에 참나무 말뚝들을 울타리처럼 박고 대나무로 만든 발을 촘촘하게 그물처럼 엮어 세운 것이다. 물고기가 들어오는 길이 되는 V 모양의 발장 부분과 들어온 고기가 모이는 발통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들이 썰물 때에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이런 죽방렴은 원시시대부터 존재했던 어업 형태로, 지금은 남해 지족해협 일대의 사례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어 어업 유산으로서의 보전 가치 또한 높다. 한편, 남해 지역의 죽방렴에 대한 문헌 기록은 예종 원년(1496년)에 편찬된 [경상도 속찬지리지 남해현조]에 처음 등장해 적어도 5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조선 후기 김려의 [우해이어보](1803)에는 죽방렴을 만들고 고기를 잡는 방식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는데, 지족해협 일대는 얕은 수심과 빠른 물살, 조수간만의 큰 차이로 인해 죽방렴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 갖춰진 곳이다.

4. 죽방렴이 탄생시킨 마을 문화, 은빛 눈부신 남해 사람들의 삶
죽방렴 한 채를 설치하는 데 필요한 재료는 직경 10㎝ 이상의 대나무 1,500개와 참나무 말목 300개 등이다. 장정 10여 명이 매달려 50일~60일이 걸려야 가능한 대공사이다. 매년 새로 만들지는 않는다 해도 낡은 말목과 대나무발을 교체하는 작업은 수시로 해야 하는 일이고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작업이기에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죽방렴을 중심으로 한 생활 공동체가 되었다. 여럿이 함께 할 수 없었다면 진즉에 사라졌을 유산이 죽방렴인 것이다. 오늘도 바다 곁에서 달님의 시간에 맞춰 하루를 사는 사람들. 이름도 ‘족함을 안다’는 지족(知足)에서 바다가 내주는 만큼만 들어오는 멸치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멸치를 들이는 것은 바다지만 그 바다를 감동시키는 것은 사람의 몫이란 것을.

5. 남해의 수중 생태정원 죽방렴
물살이 거센 지족해협은 고요한 만에 비해 수중생물이 자라기 어려운 조건이다. 급류는 작은 물고기들을 떠내려 보내고, 해초류가 뿌리를 내리기에도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방렴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바다 가운데 굳건히 자리 잡은 죽방렴 주변에는 해초들이 풍성하게 자라고, 발장에 붙어사는 생물들로 아름다운 수중정원을 이룬다. 죽방렴을 이룬 말목과 대나무발이 빠르게 흐르는 물살을 어느 정도 막아주고, 해초류와 조개류, 작은 물고기들의 서식을 돕기 때문이다. 해초류는 다시 작은 어류의 산란장이 되고, 밀물 따라 들어오는 물고기들까지 죽방렴에 들어오면 더욱 풍성한 수중세계가 펼쳐진다. 죽방렴 한 채는 바다 속의 작은 우주와 같다.

아무런 기계장치도, 환경의 훼손도 없이 수백 년 전의 방법 그대로 멸치가 제 스스로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죽방렴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어로법이다. 그래서 남해 지족해협 사람들은 대대로 죽방렴의 은빛 멸치를 기다리며 삶을 이어올 수 있었다.

※ 이 영상은 [코리언지오그래픽-10편 시간의 그물, 죽방렴(2014년 12월 18일 방송)]입니다. 일부 내용이 현재와 다를 수 있으니 참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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