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보여야 이웃도 보입니다
이완빈 요셉 신부님(역곡2동 본당 보좌)
잘 지내기가 참 어려운 때입니다. 사람끼리도, 나라끼리도 그렇습니다. 아비 어미란 자가 인두겁 을 쓰고 제 새끼를 내다 버리지 않나. 힘센 나라가 수치심도 없이 힘 약한 나라를 깔아뭉개지 않나. 아무튼 안팎으로 위태로운 시절입니다. 사람끼리 든 나라끼리든 너와 내가 마주 선다는 점에서 결 국 본질은 이웃 사이입니다. 너와 내가 어디 보통 인연입니까. 네가 나인 듯 공들여 섬기라고 하느 님께서 맺어주신 너와 나인데 어쩌다 이리 각박해 졌느냐 하면, 그저 너랑 내가 맘이 상해서가 아니 라 너도나도 그만 하느님을 잊어버린 탓입니다. 하 느님이 보이지 않는 판국이니 사람이 보일 겨를이 있겠습니까. 하기야 하느님 등 뒤에서 몰래 열매나 훔쳐먹은 통한의 그날부터 여태 하늘 아래 단 하 루라도 괜찮았느냐마는, 그렇다고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사형수처럼 낙심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팔월 염천에 땀을 비처럼 쏟으면서 도 꿋꿋이 천지를 보살피고 계신 덕분입니다. 그러 니 세상을 보면 한숨이 나지만, 세상 너머까지 본 다면 한숨만 짓지는 맙시다. 아무렴 사람이 헤집어 놓은들, 만물을 품으시는 하느님의 부성애는 날로 더 지극하신 까닭입니다,
오늘 하느님은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물으셨습 니다. 세상은 나를 누구라고 하는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는지. 같은 물음이 두 차례에 걸쳐 있 으니 예사 물음은 아니려니 합시다. 이웃끼리 잡아 먹는 지옥 같은 세상이 더는 마구간만큼도 내주지 를 않아 하느님을 길바닥으로 내쫓았고, 오갈 데 없는 가엾은 하느님은 우리 틈새에 당신 자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고 싶으셨습니다. 세상은 당신 을 잊은 지 오래지만, 우리만은 부디 그러지 말라 는 신신당부와도 같겠습니다. 일찍이 약속하신 대 로 단 두세 명만 합심하더라도 하느님은 거기 머 무실 것이니, 그리만 되더라도 요사이 이웃이란 말 이 무색하도록 매정해진 세상사의 판도를 뒤집기에는 넉넉합니다. 하느님은 혈혈단신으로도 당신 이 세상을 이겼노라 하셨는데, 그 하느님을 필두로 뒤따르는 무리가 두셋이나 있다면 못 할 일이 있 겠습니까.
그러니 어서 고합시다. 뭇 얼치기들은 요한이 요, 엘리야요 하며 헛발질하겠지만, 그리스도인이 라면 입을 모아 당신은 저의 하느님이시라고 당신 이 저의 전부라고 그러니 저도 꼭 당신처럼 살다 가 꼭 당신처럼 죽을 거라고 아룁시다. 속속들이 상해버린 이웃 사이가 하느님 아니고선 본디처럼 성해질 리 만무합니다. 딴에는 이웃끼리 잘 좀 해 보려는데 이 사람 때문에, 저 사람 때문에, 또 누구 때문에, 마음 같지 않을 때마다 기억합시다. 이웃 에 앞서서 단연 하느님부터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이 부동의 첫째이고 이웃은 그다음입니다. 하느님 은 단지 순서만 앞서는 게 아니라 기초요 근간이 며 토대라는 뜻입니다. ‘나는 네게 누구냐?’ 하시는 데, 천추에 사무친 그날처럼 선악과보다 못한 하느 님, 그래서 어느새 까먹어 버린 하느님, 그리고 별 로 기억나지도 않는 하느님이라 답해서야 되겠습 니까? 참으로 우리의 하느님이요, 참으로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그게 무지막지하게 살벌해진 작금 의 이웃 사이를 돌이킬 수 있는 유일하고도 역량 있는 고백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시인하는 우 리와 똘똘 뭉쳐, 너와 내가 부둥켜 살맛이 넘쳤던 천국살이를 되세우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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