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포장된 유혹 | 민범식 안토니오 신부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松竹/김철이 2023. 8. 27. 08:36

포장된 유혹

 

                                    민범식 안토니오 신부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앞서, 영적인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 내가 지금 어 디 있는지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 다. 목적지가 분명하더라도, 지금 있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서 가는 길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의 상태가 어떠한지(지금 내가 있는 곳) 를 성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이 유가 있지만,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지금 나의 상태 가 이렇다는 것, 이게 지금 내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 들이기 힘들어서입니다.

 

자기 모습이나 처한 상황에 대해 만족할 때도 있지 만, 그보다는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내 가 한 말이나 행동 또 자주 반복하는 습관을 금세 판단 하고 평가하게 됩니다. ‘아,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왜 그랬을까?’ ‘난 왜 이 모양이지?’ ‘왜 이것밖에 안 되지?’ 자신에게 낮은 점수를 주고 부정적으로 평 가하죠.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 못마땅해하는 마음에 덧붙여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죄의식과 죄책감입 니다. 이런 말을 종종 듣곤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신 자들로 하여금 죄책감을 너무 많이 느끼게 해요.” 어 떠세요?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다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한편으로 충분히 공감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완전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닮아 우 리도 완전해지라는 초대를 받았지만,(마태 5,48 참조) 하느 님의 거룩함과 너무나 다른 자기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죄의식을 갖게 되죠.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계명을 잘 지키며 살고 싶은데, 계명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보면 곧바로 죄책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삶의 많은 순간에 이런 움직임이 자동으로 일어나 다 보니 자기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또 어떻게 하죠? 지금 보이는 내 모습을 바라보지 않고 고개를 돌립니다. 그게 잘 안 되면 마치 다른 모습인 양 나를 포장합니다. 그렇게 포 장한 내 모습을 누가 알려주기라도 하면 그 사람에게 화가 납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내가 지금 어디에 있 는지 내 모습을 성찰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많은 나 자신 인데, 여기에 죄의식까지 더해진다면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차리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을 알기 위해 자신을 성찰하는 것 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성찰이 현재 나에 대한 객 관적 진실이 아니라 맹목적인 자기비판이나 죄의식으 로 이어진다면, 이는 우리 영성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마땅히 가져야 할 건강한 죄의식과 죄책감 은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지만, 그릇 된 죄의식과 죄책감은 우리를 하느님께로부터 숨게(멀 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올바르지 않은 죄의식은 악 마의 유혹일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 전히 무장하십시오.”(에페 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