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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수난 죽음 부활 / 승천의 각각의 영적 의미 - 주님 승천 대축일

松竹/김철이 2022. 5. 29. 09:06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수난 죽음 부활 / 승천의 각각의 영적 의미 - 주님 승천 대축일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CRnbCx1Hsxo

 

 

 

 

 

수난 죽음 부활 - 승천의 각각의 영적 의미

 

수난은 단련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코로나에 예비된 몸의 면역성을 기르듯이 우리의 영혼은 어둠이 단순히 없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그 어둠을 이겨내는 힘이 필요합니다. 예비자 교육이 지상에서의 단련의 상징성을 드러냅니다.

 

죽음은 단절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전에 지녀오던 것들과 단절됩니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에 더는 미련을 가지지 않게 되고 더는 그에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세례의 물이 이 옛 것과의 단절이라는 상징성을 드러냅니다.

 

부활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의 입장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생활방식을 실행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세례 이후의 교회의 삶이 이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상징성만 지닐뿐 현실은)

 

'승천'은 지상의 우리를 위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이전까지 우리는 '인도자'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승천 이후로 눈에 보이는 인도자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고 나면 우리의 내면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마치 아들의 위치에서만 살아오던 한 남성이 아버지를 여위고 자식을 두게 되어 자신이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해 나가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이 계신 동안에 제자들은 묻고 관찰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승천 이후에 제자들은 자신들이 길을 선택하고 실행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승천이라는 것은 신앙의 '주체성'을 의미합니다.

 

한국 교회는 여전히 유아기적인 모습을 종종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세상 안에서 모두 전문가 행세를 하지만 교회만 들어오면 유아가 되어 버립니다. 젖을 달라고 떼를 쓰고 왜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느냐고 투덜댑니다. 교회가 무엇이 필요한지 주체적으로 살피지 못하고 복음 선포에 소극적인 모습입니다. 그저 항상 주어진 과업만 반복적으로 하는 데에 안정을 느끼고 누군가 늘 자신을 이끌어주기만을 기대합니다. 바로 '승천'을 살지 못하는 현대의 신앙인들의 모습입니다.

 

때로는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기조차 두려워합니다. 공연히 일을 더 맡게 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수익이 꽤 쏠쏠한 부업이 있다면 사람들은 마다않고 그 일을 수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그 결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약합니다. 우리에게 여전히 하느님은 잠들어 계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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