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강론 듣기 : https://youtu.be/DFq9CH5WoD8 사순절이 끝을 보이고 당장 성지주일을 준비해야 할 시간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위험 속에 머물고 있고 점점 더 커져가는 상황에 우리나라만 나아지고 있다고 말을 꺼내기도 조심스러운 상황입니다. 상황이 시작되었을 때 누군가는 결정을 해야 하고 대처를 해야 할 시간, 그 행동이 호들갑이 되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세상 속에 왕따를 자처하듯 보였지만 지금은 그행동이 다른 이의 모범이 되고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때 그렇게 하는 것이 바른 유일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위기를 넘기는 동안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수고를 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것을 감추어 백성을 위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고, 또 지금은 그 모든 것을 공개하는 것이 백성을 위한 일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때도 지금도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상황을 잘 보고 잘 판단하고 잘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옳은 일을 해야 하고 그것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가장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결국 유일한 방법임에도 때로 진실이 묻히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 세상 일입니다. 그러나 바른 길을 걸어야 하고 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바리사이들과 백성들 앞에서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주님을 봅니다. 주님의 주변에 모여든 이들이 주님께 묻습니다. “당신이 누구요?”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이치 속에 살아가는 이들과 그들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스승들 앞에서 주님은 당신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있음을 증언하십니다.그래서 생명의 길인 사랑의 삶을 살지 않고 죄의 기준 위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며 사람을 죄인인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판단하며 사는 이들이 그 죄 속에서 머물러 죽을 수 밖에 없음을 이야기하시는 주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기준으로 말씀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지만 그때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켜온 율법이 분명 하느님에게서 온 것임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으로 자신들 안에서 같이 살고 있는 이가 자신은 하늘, 곧 위로부터 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듣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도 이스라엘의 스승들 앞에서 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왜 그들과 차이가 있는지 위와 아래라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설명하십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땅에서 나온 것인지가 그 구분의 기준입니다. 땅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에서 나온 것을 말하고 하늘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늘나라의 기준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만드신 기준과 사람에게 주신 삶의 기준이 하늘로부터 온 기준입니다. 물론 율법은 하느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율법의 근본은 바로 세상의 근본이신 하느님을 알고 사람의 근본에 맞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과 조심해야할 것이 율법에 담겨 있습니다. 곧 십계명의 글자 이전에 그것이 주어진 근본을 기억하며 이를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같은 율법을 하느님의 뜻인지 아니면 죄의 기준인지로 보는 구분의 이유가 됩니다. 세상 안에 함께 살지만 하느님의 뜻을 기억하는 이는 율법 위에 살아갑니다. 율법의 정신은 사랑이고 그 사랑은 사람을 죄의 덫에도 걸리지 않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게 합니다. 그러나이를 죄라는 기준으로 장벽을 세운 이는 그 죄에 걸려 넘어지는지 아닌지를 두고 구원까지 들먹이며 사람을 몰아붙이게 됩니다. 열정인듯 보이지만 폭력적이고 칼날 같은 잔인한 기준으로 하느님을 저 높은 곳으로 밀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 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보시며 하느님의 기준, 곧 율법으로 그들을 판단할 수도 있지만 당신이 하시는 일은 그것이 아니라 하십니다.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가 곧 당신의 삶이 되고 그것으로 아버지와 늘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당신이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이유이고 백성들 안에서 위험한 듯 그러나 당당하고 행복하게 사는 이유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어떤 기준에서든 상대적인 기준으로 나뉘기 쉽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어느 것이 자신에게 유익한가를 중심으로 선과 악도 나뉩니다. 그리고 승리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도 익숙한 표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지 아닌지는 그 때부터 변하지 않는 유일한 기준이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처럼 살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기준으로 사는 이는 사랑 위에 살아갑니다.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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