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松竹/김철이 2020. 4. 1. 00:15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강론 듣기 : https://youtu.be/60_jdOn1x-U



4월 1일. 다른 해였다면 이날 하루 종일 '거짓말'이 세상 안을 휘저었을 겁니다. 공공연히 거짓말을 하는 것이 허용되는 날, 물론 기분좋은 거짓말이지만 그렇게 '거짓말 같이 좋은 날'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이날 우리가 해 온 행동이었다면 지금은 정말 '거짓말 같은 상황'이 벌어진 시간들입니다. 이럴 때는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운 시간입니다.




그런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복음은 '진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우리에게 이 말씀은 결론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사실 이 말씀은 그 시작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 자유로움의 근본은 진리이고 그 진리는 깨달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분 안에 살아가는 것이 진리를 깨닫고 알게 되는 길입니다. 곧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이야기이고 우리는 말씀이시고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통해 이것을 알아듣게 됩니다. 곧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진리를 깨닫고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곧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공부하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하느님 말씀은 성경과 하느님 백성의 삶으로 이어져 왔고 그것은 지식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자각하기 전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서 존재하시기 때문에 어떤 기준으로든 하느님과 거리를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이신데 그분과의 거리를 표현하는 것도 그리 옳은 태도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같은 사람이시지만 우리가 말하는 '하느님의 아들'로 그분을 보는 것으로 차이를 설명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과 우리의 근본적인 차이는 그분의 모든 것은 하느님 아버지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우리는 세상의 이치 안에서 하느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해석 가능한 형태로 하느님을 말했기에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보려 하고 예수님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전해주신 모든 것, 곧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이미 주어져 있던 것을 현실에서 사신 것이 차이였습니다. 




곧 '가능'과 '불가능'의 차이였습니다. 누군가는 '기적', '능력'으로 주님과 우리의 차이를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다름'이고 우리는 '사랑'이라는 주님과 같은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제자들이 우리에게 교회를 전해준 이치는 '기적'이 아니라 주님께 받은 사랑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사람들은 우리는 누군가의 '종살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이면서도 죄의 종으로 살아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도 이 말씀을 피하긴 어려울 듯 합니다. 무엇인가에 짓눌린 듯 살아가며 하느님을 도피처나 위안의 유일한 희망인 듯 사는 모습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매달리느냐 세상의 가치에 매달리느냐의 차이 정도로 말입니다. 




자유로운 사람, 행복한 삶을 바란다면 주님의 말씀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곧 주님에게서 우리 삶의 근본을 찾고 삶의 방식도 배워야 합니다. 곧 우리의 삶을 하느님이 원하시는 사랑으로 채우고 살아갈 때 우리는 그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자유가 온다는 것이 아니라 근본을 알아 진리로 세상을 살아가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애를 써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보고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바로 결정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거짓말 같지만 한 번 믿어 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