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살아요

내가 네 고조 할아비다.

松竹/김철이 2019. 12. 31. 20:15

내가 네 고조 할아비다.


                                       김철이

 

떡국을 유난히 싫어하는 아이가 있었다.

평소에 잘 먹지 않는 별식이었지만,

아이는 한 해 정초에 먹는 떡국조차 먹기를 싫어하였다.

 

아이의 지독한 편식에 대해 고심해 오던 아이의 아빠는

다가올 정초에는 반드시 아이에게 떡국을 스스로 먹게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며칠을 두고 고민했으나 묘안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의 아빠는 이 고민을 술자리에서 친한 친구에게 농담 삼아 털어놓았다.

아이 아빠의 고민을 들은 친구는 콧방귀를 뀌며

이 친구야! 그걸 고민이라고 하고 있어?”

나로선 고민이 아닐 수 없지.

정초에 한 그릇 먹는 것도, 먹지 않으려 뺑소니를 치니, 말아야.”

그럼, 내가 시키는 대로 해봐.

뭔데?”

귓속말로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전해 들은 아이의 아빠는 무릎을 !” 쳤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아빠는 술김에

해이~ 영식! 올 정초엔 네가 반드시 떡국을 먹게 해주지.”

 

아빠의 취중 진담에 불안해진 아이는 다음날 학교 친구에게 아빠가 했던 말을 전하니

내가 너네, 아빠가 들고나올 수를 대충 짐작하겠는데,

넌 더 큰 수를 들고 나가면 돼.

어떤 수?”

귓속말로 친구의 묘안을 들은 아이는 만세를 불렀다.

 

마침내 설날이 되어 아침 식사 준비로 한참 떠들썩하였다.

이즈음 아이의 아빠가 며칠 전 친구에게 전해 들은 묘안을 떠올리며 아이에게 말했다.

영식아! 설날에 떡국을 먹지 않으면 나이를 먹지 않아 마냥 어린애로 남아있단다.”

아빠! 걱정 마세요. 저도 올해 설날부터 떡국을 먹을 거예요.”

! 아빠! 한해 설마다 꼭 한 그릇의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먹는 거죠?”

아무렴!”

많이 먹는 사람도 있고 적게 먹는 사람도 있으니 떡국의 양과는 상관이 없는 거고요?”

으응~ 그럼!”

 

주방으로 달려간 아이는 엄마! 제가 먹을 떡국은 제가 그릇에 담을게요.”라며

자신이 먹을 떡국을 손수 그릇에 담았다.

그러나 정작 아이의 떡국 그릇에는 국물과 함께 콩알만 한 떡국 하나가 담겨있었다.

황당해진 아이의 아빠가 아이를 나무라듯이 말했다.

, 이게 뭐냐? 딸랑 떡국 한 조각 떠와서는

아빠! 걱정 마세요. 이게 막 그릇이 아니라 또 떠다 먹을 테니까요.”

아빠는 아이의 행동에 왠지 불안했지만, 그나마 떡국을 먹지 않을까 봐 눈치만 살피던 중

주방과 안방을 쥐방울 드나들 듯하며 떡국 그릇의 수를 늘려가던 아이가 끄윽!” 트림을 하더니

 

네 이놈! 경수야 넌, 설날에 할아비에게 세배도 하지 않느냐!”며 아빠를 향해 호통을 쳤다.

영식아! , 아빠에게 호통을 쳤냐?”

아빠라니! 이놈아 넌, 아직도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겠냐?”

오늘 내가 떡국을 삼백 그릇을 먹었으니 내가 네 고조 할아비이니라

 

! 한 방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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