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귀신도 아닐 텐데…
김철이
종로 삼거리에서 초등학교 동창 세 사람이 우연히 만났다.
사십 년 만에 만났던 동창생들이라 뛸 듯이 반가웠다.
세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그동안의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삼십 년이란 세월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고
현재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고추 친구 시절로 돌아가 재잘대던 세 동창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 내 개척교회의 목사 아들이었던 동팔 이는
무지몽매한 세상 뭇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설법을 전하는 스님이 되어있었고
사람들의 미래와 희로애락을 점친다는 무속인의 아들이었던 순식이는
고향 동네의 개척교회 목사님이 되어있었으며
어린 시절 동네에서 한 곳밖에 없었던 구멍가게 집 아들인 학수는
가톨릭 신부님이 되어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만난 세 사람은
한 자리에서 각자 직분에 어긋남 없이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찾기로 했다.
학수: “야! 우리 정말 오랜만에 만났으니 술 한잔하는 게 어떠냐?”
동팔: “그 좋지! 오랜만에 허리띠 풀어놓고 실컷 마셔보자.”
순식: “안 돼! 난, 술 마시면 큰일 나”
동팔: “큰일은 무슨 우리 꼰대 보니 술만 잘 드시더라.”
순식: “사이비 목사들은 그런지 몰라도 난, 아냐?”
동팔: “칫! 다 도토리 키 재기지 뭐. 술도 먹으라고 만든 음식인데 왜 못 마신다는 거야.”
순식: “그게 다 눈 감고 아옹! 하는 격이지 뭐 설법을 전한다는 스님이 술이라니”
동팔: “속세에선 술이라 할지 몰라도 우리 스님들에겐 술이 아니라 곡차라는 것이지.”
순식: “흥! 곡차 좋아하시네, 그래서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거야.”
동팔: “너, 오랜만에 만나 정말 이럴래? 금연해야 할 너네, 목사들도 담배만 잘 피우더구먼.”
순식: “끝까지 치사하게 나올래!”
너네, 땡땡이중들도 고급 술집에서 아가씨들 옆에 앉혀놓고 술 마신다면서?”
동팔: “증거 있어? 너,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지”
넌, 어째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 없어, 보지도 않고 함부로 말하는 버릇”
학수: “너네는 그야 말로 하나도 변하지 않았냐?”
“만나기만 하면 아옹다옹 못 잡아먹어 난리이니 예전하곤 처지가 바뀌긴 했지만”
“내가 말을 잘못한 것 같구나.”
“우리 그러지 말고 공통 적으로 즐길 수 있는 고~ 스톱! 한 판 어떠니?”
순식: “그 굿 아이디어인데”
동팔: “너희들 기억나냐? 옛날에 순칠 이네 헛간에서 화투 놀이하다 들켜 혼쭐이 났던 일?”
학수: “그걸 어떻게 잊냐? 죽어도 못 잊지”
순식: “난, 그날 우리 꼰대한테 얼마나 혼쭐이 났던지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 처진다.”
의기투합한 세 사람은 인근 모텔로 들어가 고스톱, 판을 벌렸다.
한참 화투판이 무르익어갈 무렵
밖에서 시끌벅적 소란이 이는 듯 싶더니
세 사람이 열을 올리고 있는 방문을 누군가 노크를 하였고
모텔 종업원인 줄 알고 화투 판을 펼쳐놓은 채 무심코 들어오라 대답했었는데
정작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이는 모텔 종업원이 아니라 무장경찰이었다
경찰: “꼼짝 마! 다들 두 손 머리에 얹고 벽을 향해 돌아 섯!”
학수: “아니 이 사람이 싸라기밥만 먹었나? 초면부터 왜, 반말이야”
동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수리수리 마하 수리 수 수리 사바하”
순식: “오 주여! 저를 이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이 시험에서 구원하옵소서.”
학수: “놀고 있네. 그런다고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모르실 것 같냐?”
경찰: “도대체 당신들 뭐 하는 사람들이고 어디서 왔소?”
느닷없이 고스톱판에 뛰어든 무장경찰 때문에 순식간에 화투판은 깨지고 말았다.
경찰이 들어 닥치자 순식과 동팔은 잽싸게 손에 든 화투장을 팽개치곤
벽을 향해 돌아앉아 눈을 감은 채 맞는지 틀리는지 모를 기도와 염불을 되내었다.
잠시 후 세 사람의 신분을 알게 된 경찰이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팔과 순식과는 달리 기도도 염불도 하지 않고 묵묵히 화투장만 만지작거리던 학수에게 물었다.
경찰: “신부님! 신부님 혼자 고스톱 치셨어요?”
학수: “야 이놈아! 세상천지 어떤 미친놈이 혼자 고스톱 치는 것 봤냐!”
경찰: “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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