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_삶의 고해 중에서 102

인생 노래 | 저서_삶의 고해 중에서

인생 노래 松竹 김철이 세상 그 누가 지었나, 심오하고 미묘한 그 노래 가락마다 기쁨이요 소절마다 아픔이니 추리소설 같고 모노드라마 같다더라 한 박자에 웃고 두 리듬에 우니 관객 없는 무명의 무대 위 단역의 풍자극 같구나 때론 엇박자에 슬퍼하고 때론 같음표에 박장대소 거두절미 어차피 한번 부를 노래라면 비곡(悲曲) 말고 희곡(喜曲)만 쟁여 불렀으면

작품 발표작 2023.09.24

기일(忌日) | 저서_삶의 고해 중에서

기일(忌日) 松竹 김철이 어느 지난날의 오늘 간혹 날 낳아주신 부모님 피눈물 절규로 떠나보내야 했던 절망을 겪어야 했다 간혹 몇십 년 동고동락하던 피붙이 작별도 하지 못한 채 속울음 꺼이꺼이 토해야 했다 태산준령 갖은 고뇌로 넘어도 얻을 수 없고 갖은 상념으로 강과 바다를 메운다 한들 이을 수 없는 혈연 세상 그 무엇으로 이을지

작품 발표작 2023.09.17

우정이란 | 저서_삶의 고해 중에서

우정이란 松竹 김철이 구름은 뭉게뭉게 신선인 양 시선은 멀리 두고 산봉우리 걸터앉아 잡나무 잡새 산 벌레 산짐승들 차별 없이 비바람 맞을세라 비바람 걸음 앞서 일러주고 먼 봉우리 흘러갔다 되돌아 흘러온다. 샘물은 송골송골 잔돌 큰 돌 가리지 않고 돌 틈에서 어깨를 걸고 걸어 솟고 솟아 짱돌 수수돌 자갈돌 석돌 구별 없이 씻어주며 헌신으로 흐르다가 돌 틈으로 되돌아 들어갔다 다시금 헌신으로 솟아나 희생으로 흘러간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서 뭇 인생 끝을 향해 줄달음치지만 우정이란 두 글자 따뜻한 피가 흐르는 가슴팍 차별 없고 구별 없이 영생을 누림이니라

작품 발표작 2023.09.10

물 2 | 저서_삶의 고해 중에서

물 2 松竹 김철이 누가 뭐래도 무색이요 누가 우겨도 무향인데 원대한 꿈을 품고 겸손한 걸음 아래로만 걷는다. 길이 없어도 한 마디 불평 없이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겸허한 행적 낮추어 흐르더라 가슴 타는 논밭도 가로질러 축이고 목 타는 초목들도 뿌리 속까지 촉촉이 적시네 때론 분노한 부정이 되고 때론 울분한 모정이 돼도 뭇 생명 품어 흐를 내리사랑 영원하리

작품 발표작 2023.09.03

물 1 | 저서_삶의 고해 중에서

물 1 松竹 김철이 물은 언제든 다툼의 씨앗을 빚지 않고 세상 누구와도 다툼이 없으라. 두서넛 달 혹한에 발이 묶여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의 걸음 춘삼월 부초를 엎는다. 드높은 하늘 무작정 등 떠밀어도 제 어미 제 새끼 사랑으로 품듯 물속 생명체 품어 흐른다. 부평초 신세 한순간 위로받지 못해도 마냥 흐르는 절개, 꺾지 않고 만삭의 계절 업어 도도히 거닌다. 동장군 칼바람 흘러야만 할 물길 통째 가로막아도 굴하지 않고 쉬었다 가고 돌아서 간다.

작품 발표작 2023.08.27

산에, 산에 | 저서_삶의 고해 중에서

산에, 산에 松竹 김철이 그대 품에 안기어 도란도란 세파에 병든 마음을 풀어놓고 해 질 녘 그대 홀로 남긴 채 돌아갑니다 금낭화꽃 늘어서서 배웅하고 몇 걸음 앞서 골골대던 물소리 어둑어둑 초저녁 계곡 길 열며 인생들 삶터로 되돌아갑니다 세상살이 살아가며 인생살이 늙어가며 버거운 삶 지칠 때면 먼발치 멍하니 그대를 바라다보고 정녕 그리울 때면 그댈 찾아 잠시 안식을 누리지요 그렇게 저렇게 살다가 그대를 영영 마주할 수 없는 날 그대 등성이 편히 누워 그대 닮은 그대로 되살 수 있을지

작품 발표작 2023.08.20

시묘살이 | 저서_삶의 고해 중에서

시묘살이 松竹 김철이 부모님 이별한 지 이십여 년 모습과 표정은 봄날 아지랑인데 이름은 영혼 속 껌딱지 지워질 줄 모르더라 이승과 저승의 거리 몇 리나 되길래 내 아비 내 어미는 밤이면 밤마다 밤마실 오가실까. 허리도 굽지 않았고 머리엔 서리도 내리지 않았네 반백이 넘은 날 보고 아들자식이라 부르니 내 아비 내 어미 계부 계모인 줄 알겠네 그래도 좋소이다, 살아생전 효도 못 한 아들자식 저승 가는 그날까지 영혼 속에 초막 짓고 시묘살이할 터이니 밤길 조심 하사 찾아오소서

작품 발표작 2023.08.13

꽃불 | 저서_삶의 고해 중에서

꽃불 松竹 김철이 “불이야!” “어디?” “어디?” 뭇시선이 머문 곳 산등성이 불은 산을 통째 삼키려는데 남녀노소 입질에 오르내리는 건 외마디 환성뿐 누구 하나 불 끌 생각이 없다. 화마는 절정에 이르러 산자락을 타고 오르더니 산골짝 계곡마다 퍼질러 앉아 메아리 인파를 부른다. 꾀꼬리 울고 잔대꽃 푸르게 필 무렵 진달래 꽃불은 생을 다한 깜부기불로 남겠지

작품 발표작 2023.08.06

인생은 하루살이 | 저서_삶의 고해 중에서

인생은 하루살이 松竹 김철이 뉘라서 모를쏘냐 금은보화 곡간에 쌓는 기쁨 인생사 소풍 걸음 맨발 벗고 맨몸으로 홀로 왔던 외길이니 나누고 정 베풀어 돌아 돌아 길에 꽃길 삼아 걸어가소 인생 백 년을 산다 해도 아픈 날과 슬픈 날을 뺄셈으로 빼고 나면 성한 날도 기쁜 날도 한순간 물거품인데 하루인들 헛살리까 소풍 온 기념으로 마음 문 자물쇠 끌러 놓고 슬픈 이도 아픈 이도 축복으로 맞이하세 앞앞이 복되어 소나기로 내릴 인생살이 길목에서

작품 발표작 2023.07.30

춘계전쟁(春季戰爭) | 저서_삶의 고해 중에서

춘계전쟁(春季戰爭) 松竹 김철이 벙커 속 초록 신병들이 적군도 없는 전투의 파병을 위해 하나둘 머리를 내밀어 새파란 눈으로 적진을 응시한다. 폭음 없는 폭파는 삼천리 금수강산을 뒤엎고 시절의 패잔병 꽃샘추위 엳아홉 달 작전상 후퇴를 한다. 지하 참호 속에 은폐 중이던 동면 동물들 일제히 승전보를 전하고 얼음 되어 억류당하던 물은 자유 찾아 드넓은 물의 세계로 간다. 또 다른 전선의 승전을 위해 민들레 홀씨 특전병 되어 꽃바람 군 수송기 삼아 돌아오지 못할 정찰을 떠난다.

작품 발표작 2023.07.23

말 | 저서_삶의 고해 중에서

말 松竹 김철이 발도 없는 언어 몇 마디 천 리를 간다고 했지만 그 누가 허락했다고 남의 가슴에 왕소금을 뿌렸더냐 쓰레기이야 쏟으면 쓸어 담을 수도 있다지만 말 한마디 잘못 내뱉으면 다시는 쓸어 담지 못하거늘 입방정 그만 떨고 선산 묫자리나 찾기를 네 마음 아프면 내 마음 성하다더냐 말로 입힌 상처, 말로 씻으려 말고 네 살아있는 생명의 양심으로 기워 갚으렴 먼 훗날 네 죽어 저승 갈 적 세 치 혀로 내뱉은 몇 마디 네 말 올가미로 네 영혼마저 살릴 수 없으리

작품 발표작 2023.07.09

천태만상 | 저서_삶의 고해 중에서

천태만상 松竹 김철이 세상사 드넓다 해도 꼴사나운 행세 천지에 널린 채 꼴값을 떨어대니 눈꼬리가 절로 오르락내리락 차라리 삭발하고 폭포 물에 득음이나 하련다 살다 살다 외로울 땐 산새 들새 벗하며 세상을 논하고 맹자를 논하더라도 검은 걸 희다곤 않으리 안주 없어 술 못 마시랴, 술이 뭐 별거더냐? 물이 술이 되고 술이 물이 되는 더러운 인생사 술 걸러 물로 마시겠네 너른 세상사 하루살이 생을 살다 날개를 접더라도 나날이 천태만상 속에 값없이 떠오를 둥근 태양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 보련다

작품 발표작 2023.07.02

오월의 모란꽃 | 저서_삶의 고해 중에서

오월의 모란꽃 松竹 김철이 모란꽃 부귀의 꽃망울 그 꽃망울에 빠진 태양신은 쉴 새 없이 햇살을 부어 쟁인다. 하루 이틀 사흘 태양신 유혹 견디다 못해 모란꽃 꽃신을 곱쳐 신는다. 모란꽃 꽃잎 속에서 사르르 사르르 부어내린 화주 몇 잔으로 이듬해 오월 아슴푸레 향기라도 싫지 않다면 거듭 시절의 여왕 희롱하련다.

작품 발표작 2023.06.25

오월의 모란꽃 _ 제 4시집 삶의 고해 중에서

오월의 모란꽃 松竹 김철이 모란꽃 부귀의 꽃망울 그 꽃망울에 빠진 태양신은 쉴 새 없이 햇살을 부어 쟁인다. 하루 이틀 사흘 태양신 유혹 견디다 못해 모란꽃 꽃신을 곱쳐 신는다. 모란꽃 꽃잎 속에서 사르르 사르르 부어내린 화주 몇 잔으로 이듬해 오월 아슴푸레 향기라도 싫지 않다면 거듭 시절의 여왕 희롱하련다.

개인♡시집 2023.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