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상대적이지 않다.
원정학 바오로 신부님(주례성당 주임)
우리는 보통 그가 잘사는 것을 보고, 건강하고 잘 먹 는 것을 보고, 웃는 것을 보고 행복할 것이라 생각합니 다. 그와 반대로 그가 형편이 어렵고, 잘 챙겨 먹는 것 도 병원 치료를 제대로 받는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속 상해 우는 것을 보면 안타깝고 불행하다고 여깁니다.
사실 여러 물질적·물리적 제약 때문에 작은 것 하나 도 제대로 못 할 때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난 행복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타깝고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 편 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자 애를 씁니다. 자녀들에게 가난을 주지 않으려 좋은 것을 배불리 먹이고, 능력 있 는 아이로 키워 사회에 나가서도 넉넉한 삶을 살도록 교육에 특별히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 이 마치 행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자리를 잡습 니다. 가난이 싫습니다. 가난으로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주림에 고통받기보다는 세상을 살지 않는 것이 더 낫고, 가난 속에서 행복은 찾을 수 없다고 가난한 자신 의 처지를 원망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예수님은 그런 너희가 ‘행복하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날에 ‘하느님 의 나라’가 너희의 차지가 될 것이고, 배부르며, 웃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이는 복음서 곳곳에서 드러나는 반전의 이야기와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날 에 양과 염소를 나누고 하느님 나라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로 태워지는 곳으로 간다는 이야기(마태 25,31- 46 참조), 부자와 굶주린 나자로의 이야기(루카 16,19-31 참조) 등 세상에서의 삶과 지위가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다르다는 반전의 이야기들은 마치 지금 가난하게 살 면 부자가 되고, 세상에서 부유하고 모든 것을 다 누리 는 이들은 잃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비추어 집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예수님께서 하시고 싶었던 이야기 는 ‘가난하게, 굶주리며, 울면서 살아라’가 아니라 기준 도 없고, 끝도 없는 욕망의 물질적 추구보다는 마음이 부자인 사람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을 우선으로 하기보다는 가난한 이들을 돌아보며 나누고, 이웃에 게 양보함으로써 자신의 배고픔마저도 기쁨으로 바꾸 고, 고통에 함께 슬퍼하면서도 서로 위로하고 함께 나 아감으로 슬픔을 희망과 더 나은 기쁨으로 바꾸는 것 이 ‘참 행복의 길’이 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세상 창조의 목적이며 상대적이지 않고, 사 라지거나 끊어지지 않는 영원성을 지닌다고 봅니다. 부유함과 배부름, 웃음은 그 자체가 행복이 아니며, 자 신도 모르게 끊임없는 갈망의 늪에 빠지게 되는 위험 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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