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가져야 할 것인가?
이상욱 안드레아 신부님(소룡동성당)
우리에게 이른바 “행복 선언”이라고 알려져 있는 오 늘 복음말씀은 마태오 복음 서 5장의 말씀과 유사한 내 용이지만, 루카 복음사가는 행복선언에 마태오 복음서 에 없는 불행선언을 더함으 로써 소유와 만족에 관한 신학적인 교훈을 전해주 고 있습니다.
행복선언과 불행선언을 통해서 우리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치들을 만납니다. 가난함과 하느님 나라, 굶주림과 배부름, 슬픔과 기쁨, 타인의 모함과 중상, 칭찬이 그것입니다. 행복선언에서 예수님께서 는 “가지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 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 죠. 여기에서의 가난함은 일차적으로는 경제적인 궁핍을 뜻하지만, 성경 안에서는 신학적이고 종교적 인 의미가 더해집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현세적으 로 가진 것이 없어서 의지할 곳도 없는 작은 사람들 이지만 그만큼 하느님께 의지하고 그분을 더 가까이 할 가능성이 크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신앙 안에서 는 누구보다도 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행복선 언은 뒤이어 나오는 불행선언과 직접적으로 연결됩 니다. 현재 부유한 사람이 불행한 이유는 받을 상을 다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부유함도 경제적인 풍요함에 신학적이고 종교적인 의미가 더해집니다. 현세적인 재물과 힘에 의지하느 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버린 이들에게는 재물의 풍요함 외에 누릴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준 엄한 경고입니다.
굶주리는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도 배부른 사람 들이 불행한 이유도 같습니다. 끼니를 이어가지 못 해도 혹은 너무 많이 먹어도 문제라는 일차적인 의 미에 더하여 좀 더 영적인 의미가 더해집니다. 굶주 리는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이들이 하느님께 굶 주렸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 기는 것에 늘 배고프기 때문에 하느님을 찾는 행위 자체가 행복하다는 뜻이죠. 반면 배부른 사람들은 본인의 만족감과 포만감에 빠져서 정말 먹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살기에 늘 영적인 굶주림과 공허함에 괴로워합니다.
“우는 사람들”은 하느님과 함께 울기 때문에 행복 합니다. 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여러 가지 슬 퍼할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슬퍼하실 일에 함께 슬퍼하면서 하나씩 바꿔나가다 보면 언 젠가 아버지와 함께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하 느님께서 슬퍼하실 일을 나와 무관하게 생각하면서 웃고만 산다면 이미 그 자체가 슬픈 일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모욕하고 중상해도 하느님 앞에서 떳떳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나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할지라도 하느님 보시기에 떳떳하지 않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 지입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복음에서 행복한 사람과 불행 한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바로 하느님입니다. 현세 적인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할지라도 하느님을 갖 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것이고, 하느님 을 가졌다면 모든 것을 가진 것만큼 만족스럽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더 영적인 풍요함을 누리셨 으면 좋겠습니다.
'사제의 공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소)년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교회의 변함없는 사랑 –교회와 청(소)년(II) | 박상일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수원교구대회 준비위원회 부국장) (0) | 2025.02.08 |
---|---|
하느님의 말씀은 믿는 이들을 겸손의 삶으로 이끌어 줍니다. | 박성환 요셉 신부님(우림성당) (0) | 2025.02.07 |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치겠습니다.” | 신기현 시몬 신부님(광안성당 주임) (0) | 2025.02.06 |
“깊은 데로 나아가라” | 이준연 사도 요한 신부님(청주성모병원 병원장) (0) | 2025.02.05 |
그리스도께 불꽃을 댕겨 받자 | 이경상 바오로 주교님(서울대교구 보좌주교) (0) | 2025.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