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가진 것으로 베풀다가 가난해진 사람들은 행복하다 | 정비오 비오 신부님(군종 통일대 본당)

松竹/김철이 2025. 2. 14. 10:30


가진 것으로 베풀다가 가난해진 사람들은 행복하다

 

                                                                                      정비오 비오 신부님(군종 통일대 본당)

 

 

제가 살았던 곳에는 지적장애가 있는 행려자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항상 마을 슈퍼 앞 에서 혼잣말하고 웃곤 했습니다. 어렸던 저는 그 분이 무서워서, 학교 갈 때 전속력으로 달려서 그분 앞을 지나치곤 했습니다. 그분은 제삿집을 찾아가 밥을 얻어먹었는데, 저희 집에도 종종 찾 아왔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분께 밥을 한 상 차려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게 인상적이어서 북동 성당에서 부제 수련 을 할 때, 행려자에게 돈을 주었더랬습니다. 그 런데 소문이 나서, 돈이 부족해지기 시작했습니 다. 어떤 분이 “부제님, 행려자에게 돈을 주면 술 사 먹어요”라고 해서,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 리고 다음에 찾아온 분이 배고프다길래, 같이 국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또 차비를 달라길래, 버 스정류장까지 따라가서 차비를 드렸습니다. 그 런 제가 귀찮았는지 그 뒤로 행려자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저는 돈이 굳었습니다. 참 부끄럽습니 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저의 민낯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십니 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저는 가난할까요. 사실 예전보다 가난하지 않습 니다. 시리아 난민보다 가난하지 않고, 가난한 선교사였던 제 아버지보다 부유합니다. 사실 저 는 어렸을 때보다 끼니 걱정 없는 지금이 좋습니 다.

 

예수님은 왜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 셨을까요? 어릴 적 가난했던 분들에게 농작물을 나누고, 명절 때 자식들이 찾아오지 않던 분들에 게 명절 음식을 갖다 드리라던 부모님의 심부름 을 다녀오면서, 설명하기 힘든 보람과 행복을 느 끼곤 했습니다. 그 시절을 묵상하다가 불현듯 이 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가난한 사람들이 가 난해진 이유가, 가진 것을 궁핍한 사람들에게 베 풀다보니 그리된 것이구나. 예수님은 그렇게 가 진 것을 나누다가 가난해진 사람들이 행복하다 고 하신 거구나.’

 

이제는 가난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모습을 벗어버리고, 제가 가진 것으로 궁핍한 이들을 찾 아 도와야겠습니다. 그들을 돕다가 함께 굶주리 고 함께 울어주는 사람으로 죽을 수 있길 기도합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