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행복하게 역설을 살아가는 법 | 김민 요한 신부님_예수회(인권연대연구센터)

松竹/김철이 2025. 2. 16. 10:15

행복하게 역설을 살아가는 법

 

                                                         김민 요한 신부님_예수회(인권연대연구센터)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에 꽤 잘 어울리는 답변 가운데 하나가 ‘역설을 살아가신 분’이라는 표현이라 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지만 그다지 영광스 럽게 세상에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혼인도 아직 치르지 못한 처녀에게 잉태되셨으니까요. 또 태어나신 예수님 곁 에는 당시 그다지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던 목동들을 비 롯해, 심지어 동물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 자들 역시 어부나 세리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수 난과 죽음은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수치 그 자체였습니다. 사랑을 주었던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고, 모욕 속에서 십 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니 말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어떤 신학자는 예수님의 삶을 ‘실패한 삶’이라고 부릅니 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실패로 인하여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역설이 예수님 삶의 방식일 뿐만 아니라 그 분 가르침의 요체 중 하나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가난하 고 굶주리며 미움받고 울고 있는 이들은 행복하고, 오히려 부유하고 배부르며 웃고 있는 이들이 불행하다는 가르침은 역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가르치는 역설 은 우리에게 한 가지 깨달음을 줍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 복과 하느님의 행복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이 행복하다고 할 때 사용되는 행 복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마카리오스(μακάριος)’입니다. 원 래 마카리오스는 신들, 부자, 권력자처럼 모든 것이 풍요 로워서 근심이 없고 만족스러운 상태를 뜻하는 단어입니 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단어를 전혀 반대의 뜻으로 사용하십니다. 풍요로움이 아니라 빈곤함이 우리를 행복 하게 해 준다고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 해서는 역설이 갖는 독특한 특징을 이해해야 합니다. 역설 은 상식적으로는 부조리하지만 직관적으로는 옳은 모순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역설은 우리가 우리의 상식, 우리의 부유함, 우리의 풍요로움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눈에는 결핍, 모욕, 실패로 보이는 것들로 우리를 채울 때 삶의 참된 실체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역설이 주는 행복함을 잃어버릴 때, 그럼으로써 상식 의 세계로 넘어가버릴 때, 우리는 번영 신학과 같은 영적 인 천박함에 빠지게 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예 수님의 삶의 본질인 겸손함과 고통을 잊어버린 채 세상의 부귀영화에 눈이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신앙이 품고 있는 역설을 많이 잊어버렸습니다. 가난과 겸손은 비참과 비굴의 동의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즉 우리 는 예수님의 삶 자체에 깃든 풍요로움에 대한 감각을 잊 게 되었던 것입니다. 좀 더 우리가 예수님의 역설을 행복 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