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머리’ 보다는 ‘따뜻한 마음’
신정호 모세 신부님(소양로 본당 주임 겸 교회사연구소장)
103위 성인 중 김아기 아가타는 외교인 집안에서 태어나 외교인에게 출가하여 미신을 숭상 했습니다. 다행히 언니가 먼저 천주교 교우가 되어 그녀를 신앙으로 인도했지만, 김아기 는 머리가 둔하였던 탓에 12가지 주요 기도문인 『십이단』 (十二端)을 외우지 못해 세례를 받을 수 없 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뜨거운 열성으로 열심히 교리를 배웠고, 그러던 중 천주교 서적을 숨긴 죄 로 김업이 막달레나, 한아기 바르바라와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김아기는 문초를 당할 때 “나는 오직 예수, 마리아밖에 모릅니다.” 라고 신앙을 고백했고, 배교를 강요하는 이들에게 “차라리 죽을지언정 예수, 마리아를 배반하지 못하겠습니다.” 라며 확고한 믿음 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직 세례도 받지 않았던 김아기는 혹독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앙을 잃 지 않았고, 결국 감옥으로 이송됐습니다. 이때 먼저 수감되어 있던 다른 천주교 교우들이 김아기를 “예수와 마리아밖에 모르는 김아기가 오셨네!” 라고 하면서 기쁘게 맞이했습니다.
끝까지 신앙을 지킨 김아기는 결국 형조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옥중에서 중요한 교리를 배운 후 대세를 받아 아가타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1839년 5월 24일에 53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 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체포되었던 김업이 막달레나, 한아기 바르바라와 함께 1984년에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성녀의 삶을 묵상할 때면 우리 신앙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간혹 우리는 교리를 많이 아는 사람이 깊은 신앙을 가졌다고 생각하고는 합니다. 그렇지만 ‘오직 예수, 마리아’ 만 알던 김아기 아가타가 성인이 된 것을 보면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젠가 전국 교회사 연구자들의 모임에 갔을 때, 한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연구자에 게 필요한 것은 좋은 머리보다는 따뜻한 마음과 부지런함” 이라고 말입니다. 이 말은 신앙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머리가 아닌 따뜻한 마음과 성실함 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따뜻한 마음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며, 성실 함은 그 사랑과 믿음을 삶으로 사는 것이지요.
순교자들은 목숨으로 주님을 증거한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지식이 아니라 깊은 신앙과 따뜻한 마음, 그리고 성실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순교자 성월에 묵상 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모습은 그분들의 삶에 있습니다.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이달에 우리의 시선을 순교자들의 죽음이 아닌 삶으로 옮겨, 그 거룩한 마음을 배우고 닮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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