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사제 서품을 받을 때에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물론 사제 서품을 받으려고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제 서품을 받는다는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고 그것을 청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사제 생활이 어떠할 것인지, 어떤 역경과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제직을 고수하고 성소에 매달릴 것인지를 나날이 고민해야 하는 삶을 선택하겠다는 분명한 인식을 품고 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다가올 일을 모두 알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즉 사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들이 무엇을 청하는지 분명히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저 막연히 자신들이 청하는 것이 좋은 것이리라 예상할 뿐입니다. 좋지 않은 것을 자진해서 청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는 영광, 그들은 그것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고 하느님께서 선택하실 몫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청을 보다 현실적이고 본질적인 청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즉, 주님이 마시려는 잔을 나누어 마시는 방향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할 수 있습니다'하고 응답합니다. 하지만 그 대답은 그 순간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 순간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완성하겠다는 일종의 약속이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 앞에서 도망가 버리는 약한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오시고 그들을 조금씩 이끌어서 마침내 그들은 예수님의 수난의 영광을 나누어 받는 자리까지 이르게 됩니다.
우리도 비슷한 일을 겪습니다. 사실 우리가 세례때에 무엇을 받아들이겠다고 나서는지 올바로 인지하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세례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모두 인지하고 '네'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세례가 뭔가 좋은 것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날이 그 대답에 충실하면서 우리의 세례를 결국 완성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첫 대답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온전히 인지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응답'하는 것은 주님에게 소중한 일이었습니다.
모르면 배우면 되고 부족하면 채워 나가면 됩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문제는 배우려 하지 않고 채우려 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죄가 되지 않지만 알 수 있는 가능성과 노력을 의도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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