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두렵지 않음이 복음 선포의 시작/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 2023 06 29/ 전삼용 요셉 신부님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Gk9VCQvLnZ8
가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 – 사람이 두렵지 않음이 복음 선포의 시작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입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다 순교하였습니다. 성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볼 수 있었기에 하늘 나라 열쇠를 가지게 되었고 성 바오로는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오늘은 복음 선포와 두려움의 관계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장래가 유망한 어떤 여자 피아니스트가 세계 최고의 스승이 개인 제자를 뽑는다는 말에 콩쿠르에 참여하였습니다. 그의 차례가 되어 안으로 들어가 떨리는 마음으로 연주했는데 거장의 평가는 박했습니다. 그녀는 실망하여 그날부로 피아노를 접었습니다. 결혼하여 가정주부로 살아가던 중 그때의 그 거장이 자신의 도시에서 연주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거장은 그녀를 대번에 그날 연주를 가장 잘했던 학생으로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녀는 더욱 화가 나, 그러면 그때 왜 그렇게 박한 평가를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거장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말을 합니다. 그 말을 견뎌내지 못하면 언젠가 다른 어려움이 와도 견뎌내지 못합니다. 당신이 피아노를 포기한 건 내 탓이 아닙니다. 그러한 시련을 이겨낼 준비가 없었던 당신의 탓입니다.”
천재는 수많은 시련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시련을 끊임없이 이겨낼 에너지를 지니는 일입니다. 이 이야기의 여자 피아니스트는 그 에너지를 위대한 스승에게서 얻으려 하였습니다. 공갈 젖꼭지에서 어떤 에너지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공갈 젖꼭지’를 잃을까 두려워합니다. 엄마의 젖이 부족할 때 그러한 집착과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말로 가르침을 시작하십니다. 내가 사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에너지를 사람들로부터 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고 하십니다.
우리는 마치 ‘마차’와 같습니다. 다만 이 마차가 저절로 생겨났는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만약 저절로 생겨났다고 믿으면 그 마차에 누구를 태울 것인지는 내가 결정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 손님을 잃을까 두려워하게 됩니다. 내가 태운 사람에 차비를 낼지, 안 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반면 내가 만들어졌다고 믿으면 나를 만든 이나 그가 원하는 사람을 태우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어느 날 프로이센의 왕 프레데릭은 신하들과 같이 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비웃는 농담을 하였습니다. 그때 본진랜드 장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왕 폐하! 대왕께서는 제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전쟁에서 대왕을 위하여 서른여덟 번 싸워서 이긴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제 저는 나이가 들어 머지않아 대왕이 비웃으시는 저의 구세주 그리스도를 만나 뵈러 가게 됩니다. 저는 대왕보다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함을 압니다. 폐하, 소신은 이제 물러가려 합니다.”
다들 장군을 즉시 처형하라는 왕의 명령이 떨어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왕이 일어나 떨리는 목소리로 본질랜드에게 사과하였습니다.
나를 만드신 분이 주님이시기에 주님을 내 마차에 태운다면 다른 이들은 두렵지 않습니다. 그들이 나의 생명을 좌지우지하지 못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그들에게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두려움 없음은 주님께서 계심을 드러내는 가장 큰 증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마태 10,32)라고 하십니다.
바오로와 실라스가 선교할 당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지진이 일어나 쇠사슬이 풀리고 감옥 문이 열린 일이 있었습니다(사도 16,16-40 참조). 그런데 그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도망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간수가 문이 열려 있는 감옥을 보고 사람들이 도망쳤을 것으로 생각하여 자결하려고 합니다. 그때 바오로는 자신들이 안에 있으니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간수는 도망갈 기회가 있었는데도 여전히 감옥에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크게 감동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자기 가족들이 신앙을 받아들여 세례를 받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2티모 4,17)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이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참 복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나의 마차에 나를 만드신 주님을 모시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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