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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2022 10 28/ 모든 인간관계는 상대가 필요한 것을 내어줄 수 있을 때까지만 유지된다/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 / 전삼용 요셉 신부님/ 천주교/ 가톨릭/복음/묵상

松竹/김철이 2022. 10. 28. 08:02

2022 10 28/ 모든 인간관계는 상대가 필요한 것을 내어줄 수 있을 때까지만 유지된다/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 / 전삼용 요셉 신부님/ 천주교/ 가톨릭/복음/묵상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dMCZ_D9IH9k

 

 

 

2022년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 – 모든 인간관계는 상대가 필요한 것을 내어줄 수 있을 때까지만 유지된다

 

영화 ‘넘버 3’(1997)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한물간 건달이었던 한석규는 위기에 처한 보스를 구한 다음 배신자를 처단하여 넘버 투로 등극합니다. 이 과정에서 행동대장인 박상면과 라이벌 구도가 형성됩니다.

그렇게 5년 정도가 지난 뒤 조직은 성장을 지속하고, 호텔 인수 건을 한석규가 맡게 됩니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 사는 검사 최민식이 자꾸 트집을 잡습니다. 점점 일이 꼬여만 가자 보스가 한석규를 대하는 것도 시들해지는 느낌입니다. 한석규는 넘버 쓰리라고 하는 놈들을 응징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스는 한석규에게 최민식 검사를 죽이면 자신의 보스 자리를 넘겨주겠다고 합니다. 한석규는 최민식을 인질로 잡아 산에서 죽이려 합니다. 그런데 한석규의 총구 앞에서 최민식이 말하는 말이 압권입니다.

“너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둬라. 깃털 하나 뽑혔다고 몸통까지 작살나는 건 아니야. 대한민국에 검사가 1,100명이야. 매년 90명씩 생겨나고 또 수사는 계속될 거고. 어차피 너희들은 작살나가 돼 있어. 너도 깃털에 불과해. 조직은 키워줄 놈한테 절대로 피를 묻히게 하지 않아. 당장 깨져도 후회는 없다. 삼류 인생이지만 열심히 살았으니까.”

“삼류?”

이때 한석규는 조직을 배신하고 최민식을 살려줍니다. 결국 최민식은 한석규의 도움으로 조직을 일망타진합니다.

 

왜 한석규는 최민식의 말에 마음을 바꾸었을까요? 사실 한석규는 넘버 투와 넘버 쓰리 사이에서 심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넘버 투가 되라고 아우성치고 그 요구를 따라줄 능력이 없는 자신을 보며 심하게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최민식은 자신도 삼류라고 하는데 삶에 만족합니다. 그냥 열심히 살았다는 것에서. 한석규는 최민식에게서 참 평안의 길을 찾은 것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의 길. 그것은 바로 이류가 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길입니다.

깡패와 검사가 맺어지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깡패는 검사가 감옥만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주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무엇을 줄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돈과 명예와 쾌락을 좇는 이들은 그것을 주는 사람과 친구가 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더는 줄 수 없을 때면 그곳에 머물 이유를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을 끊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평화를 원하는 이들이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 성령을 주려면 내게 성령을 주시는 분과 친구가 되어야만 합니다. 받아서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줄 수 있느냐에 따라 어떤 친구가 생기느냐가 결정됩니다. 진리와 은총이 아니면 자칫 모기들을 내 주위로 모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 시몬과 성 유다 타대오 사도의 축일입니다. 그래서 복음도 사도들을 뽑으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이 이런 모습이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루카 6,18-19)

예수님은 사도들이 이런 모습이기를 원하셨습니다. 바로 말씀도 전하고 병도 고쳐 주는 것입니다. 말씀은 진리이고 병을 고쳐 주는 힘은 은총입니다. 이렇게 할 때 내 주위에도 좋은 친구들이 모입니다.

 

성인 중에 수십,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성인들이 많습니다. 성지에 가면 이런 성인들의 유해를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지만 많은 사람이 모입니다. 그 이유는 아직도 그분들에게서 진리와 은총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게 산 이들의 표징입니다. 이들은 보며 우리는 세상의 허무와 결국 쫓아야 할 것은 주님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또 그런 유해들을 통해 기적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편지들을 그분들 주위에 놓고 기도합니다. 그분들은 돌아가셔서도 여전히 무언가 주기에 사람을 끄는 것입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결국 내가 무엇을 주려고 하는지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