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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2022 10 06/ 내 안에 ‘이것’이 없으면 ‘성령’도 없는 것/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松竹/김철이 2022. 10. 6. 00:13

2022 10 06/ 내 안에 ‘이것’이 없으면 ‘성령’도 없는 것/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CfVvi_DkTs4

 

 

 

2022년 다해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 내 안에 ‘이것’이 없으면 ‘성령’도 없는 것

 

영화 ‘케빈에 대하여’(2012)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에바는 자유로운 여행가입니다. 그러다 프랭클린과 아이를 갖게 됩니다. 아직 아이를 원치 않았던 에바는 태어날 아이에 대해서 부정적입니다. 물론 에바는 케빈에게 최선을 다합니다. 하지만 케빈은 엄마의 감정을 봅니다. 케빈은 엄마의 마음을 계속 아프게 합니다. 엄마는 결국 자신 안에 있던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맙니다.

“난 네가 태어나기 전에 더 행복했어!”

엄마의 감정을 먹지 못했던 케빈은 성장하면서 계속 타인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사이코패스가 되어갑니다. 어느 날 가정에 너무도 소홀한 프랭클린은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에바와 이혼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케빈은 엄마를 놓아줄 마음이 없습니다. 케빈은 자신의 아버지 프랭클린과 여동생 실리아를 활로 쏴 죽인 후 학교 체육관의 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활로 학교 친구들을 대량 살해하고 체포됩니다.

재판 동안 에바는 모든 재산을 뺏기고 폐인처럼 생활합니다. 과거 사건을 아는 남자에게 협박당하기도 하고 피해자 유족에게 손찌검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2년이 지나 18세가 가까워져 소년교도소에서 성인 교도소로 이송될 케빈을 만납니다. 에바는 케빈에게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묻습니다.

“왜 그랬니?”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모르겠어.”

에바는 원하지 않게 어머니가 되었지만, 케빈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주지 못했습니다.

“감정!”

사랑은 감정입니다. 격리 원숭이가 젖병을 단 차가운 철사 원숭이보다는 젖병이 없어도 수건이 감긴 원숭이 모형을 어미로 여긴 것과 같습니다. 젖을 주는 일은 희생입니다. 하지만 새끼는 따듯한 감정을 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친구가 빵 세 개만 꾸어달라고 밤에 찾아와 다른 친구를 괴롭힙니다. 그 빵 세 덩이는 세속-육신-마귀가 죽는 것을 통해 생겨나는 감정입니다. 좋은 감정은 돈에 대한 욕심이 사라질 때, 육체에 대한 욕망이 사라질 때, 교만이 꺾일 때 생겨납니다. 에바는 아이에게 무언가는 주고 싶은데 세속-육신-마귀를 꺾을 무언가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무언가를 우리는 “성령”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는 시간을 기도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의 기도’와 이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청해야 하는 것은 “사랑, 기쁨, 평화”(갈라 5,22)의 열매를 맺는 성령입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13)

기분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상대에게 희생해도 상대는 내가 사랑한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이 기분을 좋게 만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내가 주님의 기도를 정성껏 할 때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기분 나쁘게 만드는 원인인 삼구를 없애시고 좋은 감정이 생겨나게 합니다. 그러면 비로소 친구에게 줄 빵 세 덩이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영화 ‘사도’에서 사도세자가 아버지에게 한 미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임금도 싫고 권력도 싫소.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듯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자녀들은 부모의 따듯하고 다정한 감정을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차갑게 젖병만 물려주며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가 감정 없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그 대가는 부모와 함께 치러야 합니다.

배우자를 만나고 자녀를 만나고 친구를 만날 때 내가 건네줄 따듯한 빵 세 개가 준비되었는지 살펴봅시다. 다정할 수 없다면 안 만나는 편이 좋습니다. 사랑은 감정입니다. 그 감정은 성령에 의해 생깁니다. 성령은 우리가 기도할 때 오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사람 만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