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20915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cTSyup1sfZM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사람의 마지막 말을 우리는 ‘유언’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남기는 말은 우리가 사용하는 숱한 이야기와 달리 말한 사람은 사라지지만 그 말을 들은 이들에게 계속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 세상의 한 어머니가 아들이 사라지기 전 한 말을 듣습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장면, 십자가 아래에서 평생을 함께 하며 지켜주었던 어머니에게 아들이 남긴 한 마디는 새로운 아들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상징적이거나 또 교회의 역사로 해석하지만 당시의 어머니에겐 ‘작별’의 의미였을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의 말인 셈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우리는 이 말로 교회가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기 시작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말씀은 어머니의 마음에 새겨진 아들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드린 부탁이기도 했을 겁니다. 그분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처음 하느님의 뜻에 대한 고백을 이제 교회가 고스란히 주님에게서 받았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새로운 사명을 아들에게서 받았고, 어머니가 십자가의 아들을 보는 일은 계속되리라는 의미도 포함합니다.
“고통”
그리스도인에게 이 단어는 익숙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동시에 구세주의 어머니의 고통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바르게 살았고, 사랑하며 살았으나 힘있는 이들의 미움을 받아 본보기로 죽임을 당했던 힘없고 착한 아들을 보아야 하는 어머니의 고통, 그 억울함에도 아무말 없이 그대로 두었던 아들의 이해하지 못할 선택을 수용해야 하는 어머니의 고통이 주님 수난의 고통보다 더 아파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칼로 꿰찔리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차라리 자신이 아픈 것이 나은 것이 고통스러운 자녀를 보는 부모의 심정이라고 합니다. 옳고 바른 삶. 모든 이를 사랑하고 품어 주었던 것이 죄가 되는 어이 없는 이스라엘의 모습 속 이 어머니는 그 고통을 다시 목격해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되셨습니다. 그것이 아들의 부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셨을 겁니다. 당신의 남은 삶이 누군가의 고통을 목격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것을 지켜주고 이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1:06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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