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발표작

물방울 동글이의 세상 여행기 13화 둥지 잃은 작은 생명체들의 합창/(동화)아람문학

松竹/김철이 2018. 3. 19. 14:08


(연작 동화) 물방울 동글이의 세상 여행기

13화 둥지 잃은 작은 생명체들의 합창



 동글이는 주변을 지나가던 바람들을 불러 모아 낯선 생김새의 생명체들이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주고받는 얘기들을 몰래 엿듣고 싶으니 바람결에 실어 동글이의 귓속에 들려달라고 부탁했어요. 바람들도 처음엔 남의 얘길 엿듣는 건 나쁜 짓이라며 동글이의 말에 시큰둥하였으나 바람 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동글이의 간곡한 부탁을 뿌리치지 못해 동글이의 말대로 갖은 곡식과 채소 과일들이 속삭이며 나누는 이야기 속으로 몰래 숨어들었어요. 

 

고구마: “갑자기 무슨 바람이람.”
옥수수: “재들도 우리가 무슨 얘길 하는 건지 궁금했던 게지”
배추: “잘됐네! 재들 더러 우리 처지를 널리 전해달라고 하면 되겠네”

딸기: “재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
감자: “모르는 소리 재들이 힘을 모으면 세상 누구보다 큰 힘을 발휘하는 거 몰라?”
무: “맞아 재들이 한번 힘을 모으면 사람들도 오금이 저려 벌벌 떤다던데”

벼: “그건 맞는 말이야 재들이 화가 나면 우리 곡식들은 꼼짝 못 하고 고개를 숙여야 해”
보리: “작년 가을걷이를 앞두고 재들이 갑자기 화를 내는 통에 우리 곡식들 혼비백산했었잖아”
포도: “어디 그뿐이겠어”
감: “그 난리 속에 수학기를 맞아 다른 곳으로 이사하려고 한껏 단장하고 있던 우리 과일들은”
사과: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듯 온통 가지에서 떨어져 땅에 굴러다니는 수난을 겪었지”
대추: “괜히 성질 고약한 재들 아는 척했다. 날벼락 맞지 말고 우리 하던 얘기 계속해”
호두: “그래 그렇게 하자 그 일만 떠올리면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고 오금이 절로 저려와”

 

 바람과 비와 온도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써야 하고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과일과 곡식 채소들의 나누던 얘기를 엿들으러 갔던 바람들은 자기를 더욱 멀리하며 나누던 얘기의 목소리를 죽여 속삭이는 통에 곡식과 채소 과일들의 대화 내용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던 바람들은 답답하고 갑갑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바람들은 몸을 하나로 뭉쳐 동글이 한데로 돌아가 동글이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게 됐으니 동글이가 직접 가서 들으라는 말을 남긴 채 멀리 날아가 버렸어요. 조금은 야속한 마음이 들었던 동글이는 멀어져 가는 바람들을 바라보다 하는 수 없이 곡식과 채소 과일들이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직접 가서 듣기로 했어요.


동글이: “애들아! 너흰 여기서 뭘 그렇게 의논 중이야.”

사과: “어휴~ 깜짝이야 간 떨어질 뻔했네. 누군지 몰라도 인기척 좀 내고 다녀라”

배: “사과 너도 참 딱하기도 하다. 네가 사람이니 간이 있게”


감: “그리고 재도 보아하니 사람이 아닌듯한데 인기척은 무슨 인기척이야.”

포도: “그건 그렇고 도대체 넌 누군데 우리를 놀라게 하고 남의 일을 방해하는 거야”


동글이: “미안해 내 소개가 늦어서 난 물의 나라 수나라에서 온 동글이야”

딸기: “아하~ 네가 바로 그 동글이로구나”

동글이: “너흰 또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수박: “이웃 곤충 나라 호랑나비가 야생화 마을에 들렀다 가면서 우리에게도 일러준 거야”


동글이: “아~ 그랬구나! 그건 그렇고 너희 표정을 보니 큰 걱정거리가 있는 듯한데 무슨 일이니 혹시 내가 도울 일이 있음 도와줄게. 말해 보렴.”

참외: “그렇지 않아도 너의 도움이 필요해서 널 찾으러 갈 참이었어”

동글이: “잘 됐구나! 말해봐 내 힘으로 도울 수 있음 도와야지”


감: “요즘 이 나라에서 나는 우리 토종 과일과 채소들이 남의 나라에서 들어온”

배추: “채소나 과일 심지어 갖은 곡식들 탓에 우리가 설 자리가 없단다.”

석류: “그건 세상이 변하고 넓고 멀기만 하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깨어진 뒤로”
모과: “세상 모든 나라가 가까워지면서 자기 나라에서 나는 것들을 서로 팔고 사니 어쩔 수 없지만”
앵두: “이 나라 사람들은 우리를 너무 함부로 대한다는 거야”
밤: “글쎄 말이야. 사람들은 참 이기적이야 남을 더 생각하고 도와주는 사람도 많지만”
대추: “사람들은 자기들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를 지녔고”
감자: “힘이 가장 세며 생각을 할 줄 알아 전 세계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여기니 그럴 테지”

동글이: “너희도 사람들에게 쌓인 게 많나 보구나.”

고구마: “많다 뿐이겠어.”
우엉: “사람들은 죄다 앞날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에다 자기들 앞길을 일러주는 말도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인가 봐”

동글이: “그건 또 무슨 말이니?”
연근: “그렇지 않고서야 자기들 코앞에 곧 밀려닥칠 재난조차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할까”
동글이: “나도 시각장애인이고 청각장애인인가 봐 지금 너희가 하는 말들을 통 이해할 수 없으니 말이야.”

 

동글이는 온갖 곡식과 채소 그리고 과일들이 나름대로 가슴속에 눈덩이처럼 쌓인 상처들을 쏟아내 놓았지만, 그들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널리 알려졌고 금수강산 어딜 가나 옥수 같은 물이 자유로이 흐르고 산수 좋기로 소문난 이 나라에서 태어나 끼니마다 갖은 사랑 다 받으며 뭇 사람들의 먹거리로 자리 잡고 살아온 오곡백과와 이 오곡백과와 때놓을 수 없을 벗이 되어 하루도 빠짐없이 사람들의 밥상에 올라 함께 사랑을 받아온 갖은 채소들이 왜 무엇 때문에 이 나라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흉을 보기 시작했을까 하고 궁금해 하며 질문을 계속해 이어갔어요.

 

동글이: “내가 전해 듣기론 너희는 몇천 년 동안 이 나라 백성들의 갖은 사랑을 다 받았다고 들었는데 이제 와서 왜들 그래 세상 어떤 생명체라도 은혜를 모르면 생명을 지닌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말할 수 없는 거야”
무: “은혜? 암 그렇지 은혜를 모르면 죽은 생명체고 말고”
옥수수: “그럼, 이 나라 사람들은 거의 다 죽은 생명체라고 할 수 있겠네.”

동글이: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너희 말을 듣고 있자니 갈수록 알아듣기 어려운 말만 하니 원”
잣: “좋아 그럼 동글이 네가 우리 편이 되어 우리를 도와주리라 믿고 다 얘기해 줄게”

 

 세상 어떤 생명체에게든 진실이 통하는 마음이 있고 마음과 마음의 문을 열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고 각자 하는 생각이 다르다 해도 서로가 처해있는 처지를 나누다 보면 어떤 어려운 일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 동글이는 오곡백과와 갖은 채소들의 처지에서 그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도와주어야겠다는 결심을 다졌어요. 동글이의 진실한 마음을 안 듯 동글이를 삥 둘러선 오곡백과와 갖은 채소들은 그동안 자기들이 겪었던 일들을 하나둘 털어놓았어요.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