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수필 5부작 골목 이야기 제3화
조상 없는 자손이 존재할까?
김철이
생명체가 사는 어느 세상이든 작은 것부터 시작되지 않은 큰 것은 없는 법이다. 그 누가 물주고 가꾸지 않아도 대자연 터전 잡아 사시 사칠 피고 지는 수많은 초목을 떠올려 보아도 한눈에 능히 깨달을 수 있는 진리라는 것이다. 또한, 작은 것이 자라서 큰 것이 된다고 하여도 어느 것 하나 세상에 영원히 존재한다는 건 없다는 것이다. 태어나고 자라고 진화하고 죽어가는 것이 세상 모든 사물의 근본적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하루가 무섭게 변해가는 세상 굴레 속에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보존되어 나아가야 할 존재들도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중요시해야 할 것이다. 세상엔 이러한 존재들이 적지는 않겠지만,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면 우리나라 민족성이 그 첫 번째일 것이다. 아무리 원숭이 본성을 지녔다 해도 세상엔 따라야 할 것이 있고 따르지 않아야 할 것이 있는데 변해가는 시대에 발맞춰 나아간다는 맹목적인 핑계로 수천 년 고이 모셔 내려온 백의민족 민족성마저 다문화 시대에 팔아넘긴 이 시대 사람들은 먼 훗날 우리나라 민족성을 찾아 헤매는 후손들에게 뭐라 변명을 늘어놓을는지
어디 이뿐일까? 사람들 편리함을 위해서 세상에 생겨났다가 사람들 편리를 위해 사라져 가는 것 중에 우리나라 전국에 걸쳐 개통되어 길게는 수백 년 짧게는 수십 년 동안 국내 뭇사람의 통로 역할을 해주며 민족의 갖가지 기쁨과 슬픔을 지켜보며 동고동락했던 넓고 좁은 골목길이 있는데 해외에서는 수백 년 수십 년 된 골목길을 그 나라 민족과 함께했던 골목길 문화적 이미지를 정부 시행령으로 보존하는 추세지만 국내에서는 새로운 건설을 위하는 목적이라면 수십 년 수백 년 된 골목길이라 하여도 예사로 헐고 그 자리에 대도시의 상징인 대로를 닦아 말과 마차가 다니던 길에 대형 버스와 번쩍이고 빛나는 고급 승용차들을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옛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좋고 편리한 것이라도 세상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는 법인데 경제적 동물이라 일컫던 이 시대 현대인들은 모름지기 어떡하면 좀 더 새롭고 편리할까 만을 추구하고 고심하는 통에 소중히 보존되어 나아가야 할 것들이 죄다 뒤로 밀려난 채 등한시되는 실정이다. 이러한 논리를 신세대 현대인들이 접한다면 몸은 로켓이 달을 드나드는 우주시대에 살면서 생각은 옥토끼가 달 속에서 떡방아를 찧는 구시대 발상을 늘어놓는다며 화살 같은 핀잔이 마구 날아들겠지만, 물살 같은 세상 몇 걸음 돌아가면 될 것을 아무리 현대화 건설도 좋고 빠른 세상 더 빠르게 달리는 것도 좋은 데 단지 생활하기 불편하고 느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민족의 희로애락과 함께했던 그 숱한 세월은 하나 가치도 없다는 듯이 팔도 지방마다 민족의 혈맥으로 남아있는 크고 작은 골목길들을 무분별하게 헐어 없앤단 말인가? 선진국 중 하나인 영국에서는 민족의 역사와 국민의 옛 그림자가 서려 있다며 후대에 물려줄 문화적 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한 지침으로 정부 차원에서 길이 보존한다는데 이 사실을 먼 훗날 우리 후대에서 전해 듣고는 과연 어떤 평가와 정의를 내릴는지 벌써 기대가 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나라 팔도 지방 곳곳에 민족 역사의 증인으로 역대 선조들의 삶의 숱한 이야기들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내 현대인들에게 전해주고자 팔도에 감춰진 골목길 여행을 떠나보기로 한다. 먼저 서울 중구 아현동 1가 건천동 골목길로 인쇄소가 밀집한 오래된 골목길 동네로 옛 모습들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1545년 음력 3월 8일 조선 한성부 건천동 현재 서울 인현동에서 이정(李貞)과 초계 변씨(草溪卞氏)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대부분을 건천동에서 자랐고, 청소년기는 외가인 아산에서 성장하였다고 전해지는. 성웅 이순신 장군의 출생지로 전해지는 건천동 골목길은 이 외에도 숱한 유명 인물들이 출생한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러하듯 좁은 골목 안에서 훌륭한 인물이 태어나지 말라는 법은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좁은 골목 안에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인물의 맥(
서울 종로 미학의 골목길 북촌 한옥마을은 사적들과 문화재, 민속자료들이 숱하게 많아 도심 속의 거리 박물관이라 불리는 곳이기도 하는데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이름에서 '북촌(North Village)'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으로 이름도 정겨운 가회동과 송현동, 안국동, 그리고 삼청동이 슬하에 들어있다. 사간동, 계동과 소격동, 그리고 재동에는 역사의 흔적이 동네 이름으로 남아 수백 년을 지켜온 곳이기도 하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 사회 경제상의 이유로 대규모의 토지가 소규모의 택지로 분할되었으며, 지금 현재 볼 수 있고 서까래를 나란히 맞대고 있는 한옥들은 1930년도를 전후하여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러한 한옥형식의 변화는 도심으로 밀려드는 인구들로 인해 고밀도화 되어가는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었다. 조선 시대로부터 근대까지 이어지는 유적과 문화재들은 이 지역을 찾는 이들에게 이 지역의 역사를 무언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가 위치한 곳, 서울 종로구 서촌 경복궁을 중심으로 서쪽 방면 인왕산과 북악산이 둘러싼 지역으로 조선 시대 중인들이 주로 모여 살던 곳인데 서울 종로구 한복판에 자리 잡은 서촌은 동 이름도 생소한 동이 많다는 것이고 지하철 경복궁역 1번 출구 오른쪽 일대, 2번 출구 왼쪽 일대부터 멀리 인왕산자락 밑까지가 서촌이라고 보면 된다. 또한, 경복궁 북쪽에 있는 가회동 일대의 북촌은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살던 곳이지만 경복궁 서쪽에 있는 서촌은 역관이나 의관 등 중인들이 살았던 곳이라고도 한다. 고장도 없이 무정하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 시간의 빠름 속에 또 다른 역사의 모습과 표정을 보는 듯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처럼 약간은 퇴색된 모습으로 삶의 애환이 살아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골목길 서촌이다.
지금까지 걸어본 세 군데 골목길의 공통점은 우리 민족이 수백 년 동안 숨길 고르며 걸어온 발자취를 마음의 눈으로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이 아니면 답답해하는 이 시대 현대인들도 퇴색되어 조금은 느리고 조금은 흐릿한 삶의 걸음을 흙먼지 폴폴 날리고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발길에 걷어 채이며 걸어 나아가야 할 발걸음을 방해받으며 조금은 여유롭게 걸어 봐도 좋을 듯싶다. 그래야 흘러간 세월 속에 묻혀버린 선조들의 발자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을 테니까 말이다.
옛날 말에 부모도 알아보지 못하는 호래자식이란 속설이 있는데 이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님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삶의 터전을 굳게 지켜 후손들에게 물려주신 조상님들의 은공도 모른 채 선조님들이 걸어오신 행적을 무시하거나 굳이 없애려 하는 후손들을 빗대어 꾸짖는 말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대대손손 선조들이 수천 년, 수백 년 동안 몸 붙여 살며 하나 생계의 수단으로 고이 보존했었던 곳곳의 골목길을 단지 불편하다는 한 가지 이유로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없애버린다면 아마도 조상 없는 자손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냐며 천하의 쌍것이라 꾸짖지나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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