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수(無期囚)로 사는 삶이라지만
김철이
무기수란 사회에서 중죄를 지은 이들을 교화 목적으로 구치소에 경리시켜놓은 상태를 말한다. 한편, 아무리 대죄를 지은 무기수라 하여도 국경일이나 대통령 취임에 맞추어 죄질과 참회의 모습이 보이는 이들에겐 특별 사면의 특혜를 얻어 오랜 구치소 생활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되어 사회의 한 일원으로 복귀된다. 그러나 나는 세상에 태어난 이후 어린 시절 땅을 기는 개미 몇 마리, 사지가 있되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니 여름날 무차별 쏘아대는 모기 편대의 기총소사에 대응하기 위해 스프레이 모기약으로 모기 몇 마리 죽인 죄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데 특별 사면이란 강 건너 등불로 느낄 수밖에 없는 한평생 영원한 무기수로 살아가야 하는 처지다. 미물(微物) 같은 존재라지만, 개미도 모기도 생명을 지녔으니 그들의 생명을 뺏는 죄를 미리 아시고 세상을 관장하는 신께서 내게 살인의 죄를 물어 평생을 영원한 무기수로 살라 셨다면 입이 열이 있어도 변명할 여지가 없지만, 만물의 영장인 한 인간으로써는 억울한 생각이 들 때가 없지 않아 있다.
내 의지대로 선택했던 인생의 길이 아니었기에 더욱 분하고 억울한 생이었다. 태어난 지 삼 주 만에 심한 고열로 경 끼를 앓게 되었고 그 후유증으로 뇌성마비 일급 장애라는 멍에를 진 채 살아가야 할 처지에서도 난 결코 병마에게 굴하지 않았다. 박봉의 부모 슬하에서 부유하게는 생활하지 못했으나 세상 어느 부모보다 따뜻한 가슴을 지니셨던 양친의 한없는 사랑과 관심 덕분에 병마의 사슬에 묶여 한평생 창살 없는 감옥에서 영원한 무기수로 생활해야 할 운명에서도 세상 그 어떤 아이들보다 밝고 명랑하게 자랄 수 있었다. 그리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에도 받아줄 학교만 있다면 천 리고 만 리라도 마다치 않고 업고 다니며 최고의 학벌까지 공부를 시키겠 노라시던 어머니의 애절한 세상은 못 본 채 외면하였고 배우고 싶은 욕망이 누구보다 컸었던 나는 두 살 아래 누이동생 등 너머로 한글을 깨우쳐 꿈에서라도 이루고 싶었던 작가의 길을 걷고 싶어 끊임없는 노력과 습작 끝에 비록 무명이긴 하지만, 여섯 장르의 문학계 공인이 되었고 나름대로 왕성한 집필과 활동을 하며 몇 줄 글로써 갖가지 형태로 마음의 상처를 입어 아파하고 가려워하는 이들의 부위를 긁어주고 안아주기 위해 남은 삶 동안도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가까운 이웃에서 늘 나를 지켜보는 이웃사촌 중 나를 가리켜 천진난만한 어린애 같다고도 하지만, 나를 보고 바보 같다고도 비웃는 이들도 있는데 나의 삶의 속사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웃을 거리라고는 단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 늘 웃고 다닌다 하여 부쳐진 호칭이다. 이 모두 내 어머니의 헌신적인 참사랑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어려운 세상사 불평을 늘어놓으려면 끝이 없는 법, 나 비록 풀 수 없는 병마의 사슬에 묶인 채 살아있는 것이 감옥이요 숨 쉬는 것이 형벌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긴 하지만 시각 장애인들이 부러워하는 성한 눈을 지녀 그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대자연을 볼 수 있고 농아 장애인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하는 밝은 귀를 지녀 더없이 아름다운 세상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어찌 행복한 삶이라 하지 않겠나! 게다가 세상 누구보다 맑은 영혼에서 나오는 영감으로 먹이를 쪼는 한 마리 새처럼 손이 아닌 입으로 뭇 독자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삶인가…
이 행복하고 감사한 삶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하여 3년여 전부터 애당초 나 자신이 예견치 못한 삶도 더불어 살아가는 중이다. 피 끓는 젊은 시절 잘못돼 나아가는 사회에 맞서 인간해방, 장애해방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휠체어를 생활필수품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중증 장애인들이 사회인의 한 일원으로 아무런 불편 느끼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에 걸쳐 늘려있는 갖가지 장애물들을 하나 남김없이 쓸어버리기 위해 눈 오는 날, 비 오는 날, 가리지 않고 지원군 한 명 없이 홀로 동분서주했었다. 20여 년 동안 외기러기 외로운 걸음을 걷다 보니 몸과 마음의 피로가 누적되어 중도에 하차하여 조금만 쉬어 가야지 했던 걸음이 언 20여 년을 멈춰버렸는데 3년 전 IL 운동을 하는 몇 사람이 찾아와 부산 시내에서 장애인 편의시설이 가장 취약한 동래구에 IL 센터를 설립하여 이기심으로 비대해져 가는 세상에 정의의 돌팔매질하여 기형적으로 기울어져 가는 세상을 바로 잡아 세우는 한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니 선봉장이 되어 달라는 것이 아닌가, 남몰래 혼자 장애인 해방운동을 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나 어느 단체에 소속되어 하는 건 부담스럽다며 몇 차례 정중히 거절했으나 막무가내 찾아와 동래구 장애인 자립생활센터 소장직을 맡아달라는 청을 거듭 해왔고 사람에겐 신의 뜻이 담긴 음성을 들을 귀가 없으므로 신의 뜻이 담긴 말씀을 들으려면 진심이 담긴 사람들이 구사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신앙적 교훈이 떠올라 그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받아들여 오늘에 이르렀다.
막상 IL 운동가로 일선에서 바라본 장판, 장애인들의 세상은 문제점도 많았고 개선점도 많았다. IL 센터 주력사업인 사대사업 중 하나인 권익옹호 사업을 시행하면서 중증 장애인의 처지에서 하루하루 생활하다 순간적으로 무심히 지나쳤던 장애인 편의시설에 관한 문제점들이 확연히 한눈에 들어왔고 한 걸음을 움직여도 곳곳에 흩어져있는 걸림돌들을 살펴보며 수많은 중증 장애인들이 숱한 세월 동안이다지 잡다한 장애물들 탓에 얼마나 많이 몸과 마음을 다쳤고 얼마나 많은 속 눈물을 남몰래 흘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절로 가슴이 미어져 내렸다. 단체 동료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들여다본 중증 장애인들의 가슴속은 죄다 다 타버린 숯검정이었다. 살아낸 연륜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는 나겠지만, 중증 장애인들의 삶은 도토리 키재기였고 한겨울 산불처럼 거칠고 험한 세월에 시커멓게 타기는 마찬가지, 세상 숱한 상처를 한 가지씩 꺼내놓을 때마다 동면 상면의 심정으로 상담실은 이내 숙연해졌다. 정보제공 및 의뢰 사업을 시행하며 아무리 세상이 살기 좋아졌다 해도 장애인이 살기 좋은 세상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정보화 사회란 허울 좋은 껍데기뿐이고 삶의 울타리 밖의 소식에 까먹는 중증 장애인들이 부직이 수라는 것을 실감하였다. 중증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사업을 가까이 접하며 몸은 당연히 중증 장애를 지녔고 일상생활 말 발음조차 심하게 어눌하여 일상생활 속 타인과의 대화마저 불가능한 중증 장애인들이 당당히 홀로 세상 서기에 성공하여 자립생활 성공사례를 발표할 때 가슴이 뭉클했었고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졌다.
매일 아침이면 비가 내리는 날만 제외하고 아내와 함께 수영강과 동강 줄기로 일궈낸 온천천 시민공원 강변로를 걸어서 출근하곤 하는데 사람은 자신의 위치가 말해준다는 속설이 절실히 실감 나는 요즈음이다. 40여 년 전 IL 운동을 열정적으로 임했던 그 열정이 조금은 식었던 탓인지 몰라도 IL 센터 소장직을 맡기 전에는 길을 가다 중증 장애인들이 사용하기에 불편하겠다는 편의시설이 눈에 띄어도 내가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 나서 건의하고 개선되어 나가겠지 하는 생각으로 지나칠 경우가 많았었는데 요사이엔 인도의 보도블록이 조금만 고르지 못하고 경사로 각도만 조금 가팔라도 천하의 둘도 없는 싸움꾼의 넋이라도 서린 듯 어느 관청에 건의해서라도 반드시 개선되도록 힘써야겠다는 충동이 가슴속 불기둥이 치솟아 오르기 일쑤다. 40여 년 전에는 지원군 하나 없이 끝없는 싸움꾼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금은 외롭고 슬펐었는데 지금은 우리나라 전국에 2백 개가 넘는 IL 센터가 설립되어 있고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의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으니 그 어떤 마음의 장벽도 허물 수 있고 아무리 꽁꽁 묶인 마음의 사슬도 풀어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절로 생긴다. 비록 무기수의 삶이지만, 장차 바뀔 세상에 미리 감사하며 평생을 싸워도 끝나지 않을 이 싸움에 동참한 일원으로 세상이 바뀔 그 날까지 넋이 되었어도 싸워야 할 이 싸움의 선봉장으로서 한 점 부끄럼 없이 봉사하겠다는 이 마음 영영 변치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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