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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바로 살기

松竹/김철이 2016. 5. 14. 09:36

세상 바로 살기

 

                                     김철이

 

 누구나 오목렌즈와 볼록렌즈가 맡는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다시피 볼록렌즈는 빛을 모아주는 역할을 하며 실상을 맺게 된다. 반면 오목렌즈는 빛을 퍼지게 하고 허상을 맺는다. 실상이란 빛이 실제로 한곳에 모여 상을 맺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허상은 빛이 지나가진 않아도 그 연장선이 만나는 곳에 상이 맺히는 것을 말한다. 흔히 우리가 보는 거울은 허상이고 돋보기 등은 실상이다. 또한, 졸보기는  확실히 보이 않지만 가까운 보이는 역할을 한다. 반면에 돋보기는 멀리 있는 물체는 선명하게 보아 가까운 물체는 없는 역할을 한다. 풍요로운 계절, 가을의 문턱에서 풍년 맞을 채비가 한창인데 뚱딴지처럼 오목렌즈와 볼록렌즈의 역할과 졸보기와 돋보기의 역할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날로 발달해 나아가는 첨단 의술 덕에 백이십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이 모름지기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목렌즈와 볼록렌즈, 졸보기와 돋보기의 역할을 곰곰이 가슴에 새겨 생각해 보고 이 두 가지의 분류 속에 숨겨진 교훈을 찾아내 우리네 삶에 접목해 보자는 것이다.

 

 많고 많은 세상 사람 중에 가장 잘 사는 사람은 돈이 많은 부자도 아니요, 직위가 높아 천하를 호령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 꼴값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어느 누가 생김새 어울리지 않고 꼴사나운 행동 한다는 뜻의 말로 “꼴값하네!” 라는속어()가 있다. 그러나 이 속어를 꼼꼼히 되새김질해보면 이처럼 좋은 뜻을 지닌 단어도 드물다는 것이다. 꼴값, 그렇다.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사는 이 땅의 모든 세상 사람이 제 자리에 제 분수를 지키며 제 꼴값 제대로 하고 산다면 세상은 아마도 태평성대(代)를 이룰 것이고 지금 이 시대의 현대인들처럼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 타인들을 짓밟고 일어서려는 병폐도 분명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 상에는 지금 현재 70억 인구가 문화와 생활풍습을 달리하면서도 생존을 위해 갖은 모습 갖은 향기 맞추려 애쓰며 어깨를 나란히 살고 있다. 가끔 70억 인구가 단 하루 거르지 않고 제 목소리를 높여만 가는데 하나밖에 없는 지구가 여태 터지지 않고 버텨준 것이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이 하루에 한 마디씩만 입 밖으로 내뱉어도 70억 마디, 이 70억 마디의 말이 하루하루 쌓여간다고 예상할 때 한 달이면 2백10억 마디, 일 년이면 2천5백20억 마디가 되는데 이 천문학 숫자의 말 중에 제 꼴값 제대로 하는 사람의 말이 과연 몇 마디가 되며 그 몇 마디 안 되는 말들이 온 세상을 지탱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김질할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섭고 두렵다는 것이다. 그나마 몇 사람 되지 않은 제 꼴값 제대로 하며 사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멸망하지 않고 제대로 굴러가고 있을 텐데 만약에 몇 사람 되지 않은 제 꼴값 제대로 하며 사는 사람이 빠지게 된다면 세상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예측불허 아무도 장담 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이다.

 

 각박한 현대 세상사를 살아내려면 내 것 네 것 따지는 건 기본이고 남의 입에 들어가는 밥풀떼기까지 떼서 자신의 입속으로 가져가는 것이 인지상정이 되어버린 현세에 인간 기본의 꼴값이라도 하며 살려고 남들이 쉽게 행하지 않은 일들을 아무런 계산 없이 행하며 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밥 퍼"라는 이름으로 요사이 사회 문젯거리로 떠오른 노숙자 밥 주는 일, 시설 장애인이나 요양보호 시설에 기거하는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자원봉사하는 일, 평생 자기 가게 하나 없이 노점상을 하며 모은 전 재산을 만학의 꿈을 잃어버린 새싹들을 위해 선뜻 내놓는 일, 부모 잃은 고아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여 한평생 단란한 가정을 꾸려 나아가는 일, 자기도 먹고살기 어려운 형편이면서도 못사는 이웃을 위해 박봉을 두 쪽으로 나누는 일, 자신도 거동이 극히 불편한 장애를 지녔으면서도 오갈 곳 없는 중증 장애인들을 한 지붕 한 가족으로 만드는 일, 그 밖에도 숨은 곳에서 남들이 고개 돌려 외면하는 일들만 골라 하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적지 않다는 것인데 이들 중에 분명 제 꼴값 제대로 하며 세상 텃밭에 토양이 되고도 남을 만한 삶을 추구해 나아가는 이가 있어 여기에 소개하고 그 기를 받아 세상 모든 사람이 제 꼴값 제대로 하며 살기를 바란다.

 

 그는 올해 만 육십 세로 2014년 갑오년 말띠 해에 제 꼴값 제대로 잘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으로 소개하기에 한층 더 걸맞은 인물이 아닌가 싶다. 그는 서울 출생으로 스물한 살 되던 해인 1974년 봄 개나리 필 무렵 꽃다운 나이에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군 복무에 임했는데 일 년 뒤 훈련 중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 장애를 지니게 되었다. 사고 후 몇 달까지는 분명해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술과 여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하루 중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자신이 입대 전 다녔던 성당에 나가 묵묵부답 아무런 말없이 휠체어에 의지하여 성전에 앉아있자니 이유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스크린에 비친 허상의 인물처럼 머릿속 한 장면으로 스쳐 갔는데 자신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중증 장애인들과 한 지붕 한가족으로 오순도순 행복하게 생활해 나아가는 모습의 환시를 보았다는 것이다.

 



 이 환시(幻視)를 보고 난 그의 생활방식은 판이하게 달라져 갔다. 먼저 입대 후 취득했던 운전면허는 필요치 않으니 장애인용 운전면허를 다시금 취득한 후 부모님이 자신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기로 되어있던 얼마간의 돈을 타내어 트럭에 몸을 얹어 그 당시 강원도 삼척 시골 마을로 향했다. 그 마을은 인적이 드물고 조용하기 그지없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삼척에 삶의 부리를 내린 그는 자신이 가져간 돈으로 비록 작지만, 중증 장애인들이 아무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설계한 아담한 집 한 채를 지었다. 그 후 그는 겨울에 얼어 죽지 않고 여름에 간신히 열사병에 걸려 죽지 않았지만, 그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겪으며 생활하는 중증 장애인들을 한 사람 두 사람 모으는 한편 생활필수품 도매상에서 갖은 생활필수품을 떼다 가게마다 대주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직접 행상을 해서 생긴 수입금으로 장애인 가족들의 생활비로 사용하곤 했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무리 성인군자라 해도 관심이 지나치면 집착이 되고 집착이 지나치면 욕심이 되는 법이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때 지니고 태어나는 물욕(物慾),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慾), 애욕(愛慾), 명예욕(名譽慾), 정욕(情慾,), 색욕(色慾), 일곱 가지 욕심이 있는데 그중 가장 더러운 물욕의 씨앗이 그의 마음속에 돋아날까 두려워 한국 가톨릭 내 어느 한 수녀원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관리해줄 수도자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여 더러운 욕심 때문에 장차 일어날지도 모를 갖은 사건 사고를 미리 방지했었다. 그런가 하면 인생길은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소풍 길이라는 진리를 실천하는 뜻으로 그가 중증 장애인들과 합심하여 애써 일궈낸 보금자리는 한국 가톨릭 내 지방 소속 교구에 헌납하고 또 다른 장애인 공동체를 일궈내기 위해 자신은 홀연 단신 이름 모를 오지를 향해 구르는 네 바퀴 걸음을 옮겨 갔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도 타인의 손길이 필요로 하는 중증 장애인이면서도 자신보다 더 딱한 처지의 장애인들에게 휠체어 네 바퀴를 굴리느라 굳은살이 박인 손길을 누구보다 먼저 내미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네다섯 채의 장애인 공동체를 설립 헌납한 그는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머릿속에 제 꼴값 제대로 하는 영혼으로 영원히 피어지지 않을 것이다. 빛을 모아주는 역할을 하며 실상을 맺게 한다는 볼록렌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