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김철이
늘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처럼 늘 낮은 자세로 살고 싶고 덜 가졌고 세상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느린 이들이 의기투합하여 중증 장애인들을 비롯한 소외된 계층 삶의 마중물이 자청하여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라는 서정주 시인의 한 구절 시구처럼 적지 않은 세월 숱한 우여곡절 끝에 설립된 부산시 동래구 장애인 자립생활센터 가족들이 지난여름 서로의 부족함을 서로 채워가며 더 낳은 내일을 맞이하려 양산시 서창 청성산 중턱에 자리 잡은 솔 향 산장에서 도심지를 집어삼킬 듯한 무더위를 어머니의 너른 젖가슴처럼 한없이 펼쳐진 대자연 품속에 묻혀 1박 2일 예정의 단합대회를 다녀온 바 있다.
맨 처음 우리 일행을 맞아준 생명체는 솔 향 산장의 안전을 지켜주는 삽살개 모자였다. 배를 깔고 엎드려 청성산 천지를 여유롭게 두루 지켜보는 듯한 성품의 어미와 덩치는 어미보다 우람하지만, 몸집에 비해 다소 촐랑대며 매사에 궁금증이 많은 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해 긴 털 사이로 보이는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새끼 삽살개였다. 이 두 마리의 삽살개는 1박 2일 동안 우리 센터 가족이 원하면 언제든지 달려와 위험을 몸소 막아줄 경호원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다. 몸소 수행하는 수도승도 아닌데 불판 위에 굽혀가는 고기 익는 냄새에 칭얼거릴 만도 하련만 능청스럽고도 대견스럽게도 산자락 배에 깔고 아주 편안하게 누운 채 시선은 고기 불판을 향하지 않고 꿀떡 같은 먹고 싶은 마음은 뒤로하는 모습이 철 덜 든 사람보다 났다는 생각이었다. 산장 주인의 말을 듣자니 이 삽살개 모자는 사람에 비유하면 대학 공부를 한 것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었다. 충견이라는 단어로는 이 삽살개 모자에겐 많이 부족했었다. 우리 일행이 보름달이 야밤을 밝혀주는 산 경치에 매료되어 소나무 가지 위에 지어놓은 원두막을 잠자리 삼아 노숙을 할 때 산 위에서 굶주린 짐승이 내려온 듯 모자 삽살개 중 어미는 일행이 누운 원두막 평상 주위를 빙빙 돌며 행여 어느 짐승이 해칠세라 지켜주었고 새끼는 천둥같이 짖으며 산에서 내려온 짐승을 쫓으려는 듯 비호같이 산 중턱을 향해 달려 올라가더라는 것이다. 자기들의 주인인 산장지기와 산장을 찾는 길손들의 안전을 지켜주려고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늘 일정한 거리를 벗어나지 않는 모습이 충견의 토양을 접하는 듯하였다.
두 번째 우리 일행을 맞아준 것은 청성산 아래의 도심지 표정이 한눈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허름하게 지워진 원두막이었다. 야박한 도심지 인생살이와 삼복더위에 지친 마음을 원두막 다다미방에 내려놓은 도시인의 시야에 들어온 모습은 몇 개의 크고 작은 옹기들이 아무렇게 놓인 작은 물웅덩이였다. 신기한 것은 물은 모름지기 아래로만 흐른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땅 밑에서 솟아났다는 것이었다. 이 작은 웅덩이는 발 담그는 도시인의 고달픈 신심을 달래주기에 충분했었다. 낮술 마시는 자는 제 아비도 몰라본다는 속담을 잠시 뒷전으로 미뤄놓고 오후 반나절이 지났을 무렵부터 천성산 산마루를 깔고 앉아 가져간 술 몇 병 꺼내놓고 바라보기만 하여도 막혔던 숨통이 단숨에 탁 트일 듯한 산 경치 안주 삼아 권커니 잣거니 마시던 술의 취기가 점차 오르기 시작하자 쓰레기통을 거꾸로 쏟아놓은 듯 쓸 소리 몹쓸 소리 쓴소리 단 소리 너무 쉽게들 내뱉는 도시인들을 처량하게 내려다보는 보름달은 마치 가련한 신세의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표정처럼 느껴졌다. 인간사 삼팔선 없는 치열한 전쟁은 그곳에서도 치러졌다. 수십 년을 굶주린 흡혈귀 된 양 악명높은 산모기는 갖은 매연과 소음에 찌든 도시인들의 살점을 쉴 새 없이 파고들었고 매캐한 모기향 연기로 한 방울의 피조차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투는 밤새 이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시로 불어주던 산바람이 유엔 안보위원회 역할을 해주었다.
양산 서창 청성산의 아침을 깨우는 소리는 도회지에서 좀체 들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다디달고 맑디맑은 산 공기에 매료돼있던 길손의 귀속으로 유년 시절 방안에 앉아서도 자주 들었던 뻐꾸기 소리 어린 시절 잠시 기대기만 하여도 든든하고 마음이 놓였던 떡판같은 아버지 등에 업혀 동네 인근 마하사를 찾았을 때 난생처음 들었던 그때 그 매미 소리는 무척 정겹게 들렸는데 센터 사무실에 앉아 듣노라면 도로변 가로수를 온통 점령하고 울부짖는 요사이 매미 소리는 시끄럽다. 도가 넘어 저절로 짜증만 나게 하니 그 이유는 원목 수입 때 나무 틈바구니에 숨어 비행기 삯도 내지 않고 들어온 외래종 매미 알이 토종 매미를 몰아내고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탓이란다. 그러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토종 매미 소리를 들으니 옛 임을 만난 듯이 반가웠고 한 가지라도 더 챙겨 듣고 보고 가려 애쓰는 글 꾼의 시각과 청각 속으로 들어오는 소리와 모습들은 달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이었으며 무엇인가 모를 아쉬움과 애잔함도 느끼게 하였다.
세 번째로 우리 일행을 맞아준 것은 양산 서창에 둥지를 틀고 그 위웅과 아름다움을 제대로 과시하던 천성산이었다. 천성산 기슭에는 미태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는데 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공사 및 착공금지 가처분 신청 (일명 도롱뇽 소송)을 통해 자연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널리 일깨워 주셨던 지율 스님이 수행하고 계신다는 말에 왠지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자신의 삶은 스스로 일구어 가려고 쉴 새 없이 부리질 해대는 딱따구리와 틈만 나면 다른 새의 둥지를 넘보는 뻐꾸기를 보면서 세상 속 인간사 이중성을 실감 나게 느꼈다. 아주까리, 원추리, 두릅나무, 도라지꽃, 야생 밤나무, 분명 이들은 도회지 때 묻은 영혼들이 쉽사리 대할 수 없는 존재이고 그러므로 갖은 오물에 찌든 도심지 영혼들을 정화해 주기에 충분했었다. 숱한 세월의 무자비한 칼날에 잘려나간 소나무 가지에 매달린 송진은 중증 장애인들의 자립생활 주체자 역할을 위해 설립한 우리 동래구 IL 센터 가족들이 IL의 마중물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할 우리 동래구 IL 센터 가족들의 마음가짐은 언제나 희생적이고 인내한 삶을 살아 나아가라는 점을 무언으로 암시해준 것 같아 대자연 섭리에 감사의 표현이 절로 행해졌다. 이 모습들이 작년 이만 때 우리 센터 가족들이 여름휴가 겸 엠티를 다녀온 일상인데 우리 가족 모두 일심동체 하나가 되어 IL의 마중물 역할을 제대로 잘해 나아갈 수 있게 천성산 대자연 섭리에 간곡한 기도를 청한다.
'松竹♡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 소풍 길에서 (0) | 2016.06.07 |
---|---|
세상 바로 살기 (0) | 2016.05.14 |
무기수(無期囚)로 사는 삶이라지만 (0) | 2016.03.30 |
그 집 앞 (0) | 2016.03.04 |
연작 수필 2부작 하얀 찔레꽃 제2화 추억의 강 (0) | 2016.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