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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수필 2부작 하얀 찔레꽃 제2화 추억의 강

松竹/김철이 2016. 2. 23. 14:06




연작 수필 2부작

하얀 찔레꽃 제2화 추억의 강

 



                                             김철이



 돌이켜 떠올리면 내가 보낸 유년시절은 무척이나 서정적이었다. 풀피리 꺾어불고 송사리떼 쫓아다니느라 해지는 줄 몰라 때 되어 집집이 굴뚝에서 피어오른 뽀얀 연기와 그 시절 어느 가정이든 끼니마다 밥상의 터줏대감 역할을 했던 시래기 된장국 끓어 넘치는 냄새에 허기를 느껴 개구쟁이 악동의 하루를 마감하는가 하면 애써 가꿔놓은 이웃 동네 마늘밭에서 풋마늘 서리를 하다 마늘밭 주인에게 덜미를 잡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고 후했던 인심 덕분에 마늘밭 주인이 손에 쥐여주는 풋마늘 종대기 한 온큼 들고 의기양양 집으로 돌아왔던 일, 달빛 으스레한 야밤에 또래 친구의 등에 업혀 이웃집에서 경영하던 이웃 양계장에 들어가 달걀 서리를 하려다 산고를 겪으며 암탉이 낳아놓은 날 달걀 한 개를 손에 넣는 순간, 그 어떤 정에도 비교할 수 없는 큰 모정이 발동한 암탉이 제 알을 훔쳐가려는 날도둑을 막으려 발버둥치는 소리에 놀라 자다 말고 뛰쳐나온 양계장 주인의 포로 신세가 되었던 일, 형님을 따라 송사리 미꾸라지떼를 쫓아 여름 냇가를 누비던 일, 이러한 모양새의 추억들이 나의 글 심(書心)과 함께 살았고 나의 글 심(書心)과 함께 자랐다는 것이다.



 추운 겨울 무법자 동장군이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매서운 칼바람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흙먼지 폴폴 날리는 비포장 골목을 터줏대감처럼 차지하고 언 손 호호 불며 동네 개구쟁이 동무들과 아무런 쓸모도 없는 유리구슬 따먹기를 하느라 토끼 꼬리만 한겨울 한나절 해가 다지는 걸 몰랐던 일들, 나이 어린 철부지가 세상사 뭘 안다고 푸르던 나뭇잎파리들이 점차 갈색으로 물들어갈 때쯤이면 창밖 나뭇잎들이 하나 둘 앞다투어 떨어지며 가지에 맺은 정과 이별하는 모습을 말끄러미 바라보며 괜스레 센티 해지던 일들, 추운 겨울 슬하에서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은 철부지 얕은 생각에 양지바른 대청 앞 댓돌 위에 크고 작은 화분들을 가지런히 갖다 놓고 문구점 학습용 꽃씨들을 사다가 심어놓고 매일 아침이면 오늘은 얼마나 자랐을까 하고 문안 인사 나누던 일들, 청포도 익어갈 무렵 앞마당에 심어져 감나무와 나이테 자랑하던 청포도 넝쿨 아래 깔아놓은 평상 위에 목침 베고 홀로 누워 장차 살아낼 글 꾼의 길을 닦던 일들, 이러한 일들이 지금 현재 걷고 있는 문학도의 길에 질 좋은 밑거름이 되었으니 나, 이 세상에 얼마나 더 눌러살는지 모르지만, 내 넋의 춤사위에 장단 맞춰 노래할 더 많은 추억거리 쟁이며 살 것이다.



 글 쓰는 작가로서 세상에 태동하기 몇십 년 전부터 나의 글심(書心)에 양질의 멘토 역을 자청하여 맡아주셨던 나의 모친은 내 나이 문학이라는 단어조차 이해하기 힘들 시기부터 나의 영혼 속에 문학을 향한 예지적 능력을 불어넣어 주셨는데 그 방식은 무척이나 다양하고 다채로웠다.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내 나이에 걸맞을 갖가지 형식의 동화책을 읽어주셨는가 하면 어머니 내 나이 또래 때 외할머니 입을 통해 구전으로 전해 들었던 옛 전설이나 설화 등을 거의 날마다 잠자리에 들 무렵이면 나와 두 살 아래의 누이동생에게 팔베개 가지런히 내주며 구전으로 대물림해 주셨다. 내 모친의 입담을 통해 전해 들었던 옛 전설 중 매년 보이면 문득문득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가 바로 찔레꽃에 얽힌 가슴 아픈 전설이다. 외할머니 살아생전 애틋한 모녀지간의 정을 주고받았던 어머니는 언제나 그랬듯이 찔레꽃 전설을 이야기해 주실 때마다 몸소 겪으신 실화인 양 남달리 우수 어린 눈가에 촉촉이 이슬이 맺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아주 먼 옛날 외동딸을 시집보내고 난 어머니는 홀로 긴 겨울을 수 삼 년 지냈다. '죽기 전에 하나뿐이 딸(달래)을 한 번 보고 죽어야지!' 언제나 입버릇처럼 되뇌던 어머니는 구부러진 허리에 죽장(竹杖)을 짚고 먼길을 나섰다. 거의 4~5일이나 걸려서 (달래)가 사는 인근 마을까지 도착했을 때, 짙은 저녁노을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갑자기 붉은빛이 감도는 것을 보고 보리 흉년이 들 것을 미리 알아차린 노모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보릿고개 때는 오지 말라'던 달래의 하소연이 떠올랐다. "어머니!, 제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보릿고개 때만은 찾아오시지 말아 주세요!" 노모의 귓전에서는 달래의 눈물 섞인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듯했다.



 그 먼 길을 이제 찾아와서 다시금 돌아설 수도 없고 배가 너무 고파 허리가 저절로 접혀서도 꼼짝할 힘이 없었다. 어쨌거나 '보릿고개'에는 친정어머니도 오지 말라던 딸네 집에 불쑥 들어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척에 그토록 그립던 딸네 집이 보이는 거리에서 어머니는 용기를 잃은 것이다. 하지만 이름이나마 불러보고 싶었다. 만나지는 못할지라도 "달래야!" 하고 이름이나마 불러보고 싶었지만, 딸의 이름을 담은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어머니는 그만 그 자리에 덜썩 주저앉은 채 폭포처럼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일 순간, 허기진 배를 쓸어 내리던 어머니 눈에 하얀 꽃이 핀 가시나무를 발견하고는 무작정 따먹기 시작했다. 가시나무 틈에 솟아난 새순(찔레)도 꺾어 먹었는데 찔레의 새순은 참으로 달콤했고 순간적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이것만 먹어도 집으로 돌아갈 힘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로 한없이 따먹었다. 그러는 사이 어둠은 짙어져 길은 보이지도 않고 피로에 지친 몸은 어느새 곁에 서 있던 가시나무 밑에서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굶주린 배를 안고 잠든 어머니는 잠이 든 것이 아니라 숨을 거둔 것이었다. 어쩌면 산골 꽃샘추위에 얼어 죽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가시가 많은 새순(찔레)을 너무 많이 꺾어 먹어서 뱃속에 위장이 가시에 찔려 죽었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그 꽃을 '찔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달래가 맨발로 달려와 가시나무 밑에서 너무 슬피 울다가 지쳐 그녀도 그만 죽고 말았으니 그로부터 찔레나무 밑에는 매년 봄이면 변함없이 달래의 넋이 함께 자라고 있었다.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보릿고개, 그 한 많고 가슴 아팠던 사연이 매우 쓰렸던 보릿고개… 지금도 봄철이면 찔레꽃 밑에는 달래의 넋이 함께 자란다는 보릿고개에 얽힌 모녀간의 기막힌 전설이 서려 있어 달래와 어머니의 한풀이를 하느라 희게도 피고 두 모녀의 못다 나눈 정의 정표로 붉게도 핀다는데 이 전설을 얘기하고 난 뒤에 어머니는 넉넉지 못했던 형편 탓에 못다 한 효도가 떠오르는 듯 잔잔한 목소리로 “하얀 찔레꽃”을 불러 듣는 이 없는 허공에 날려보내셨다. 못다 한 효도의 삶도 대물림하는 것인지 나 역시 잊히지 않은 습관처럼 매년 봄철이면 어머니께 못다 한 효도 탓에 그때 어머니 부르셨던 “하얀 찔레꽃” 가사가 영혼 속 추억의 강을 거슬러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