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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말들도 촌수는 안다

松竹/김철이 2016. 1. 25. 14:05

연작 수필 3부작

말띠 해에 들어보는 말들의 이야기

제3부 말들도 촌수는 안다


                                                  김철이

 

 

 갑오년 말띠 해를 맞아 살면서 명마의 기를 받아 험한 세상살이 1년을 살아내야 할 우리는 삶의 기본 설정을 어디에 두고 어떤 삶을 추구해 나아갈 것인지 떠올려 보고 한 해 시작의 문턱을 디딘 이 시점에서 올 한 해만큼은 후회하지 않을 삶의 주사위를 던져 세상 누구보다 보람된 인생을 살며 적어도 인두겁을 쓴 인간 본연의 값은 하고 살리라는 또 다른 하나의 다짐으로 짐승에 불과하지만, 사람 못지않은 삶을 살다 간 명마들 생의 수레바퀴를 함께 돌아보기로 한다.

 


 첫 번째 이야기로 김유신이 사랑했던 여인은 천관녀였다. 천관녀(天官女) 는 신라 진평왕 때의 기녀로 화랑 김유신이 그녀에게 정을 붙여 다녔는데, 어머니의 꾸중을 듣고 다시는 그녀의 집으로 가지 않기로 맹세하였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집에 돌아가는데, 말이 늘 하던 버릇대로 그녀 집 앞에 멈추자 정신이 든 김유신은 말의 목을 베었다. 김유신을 이끈 말의 목을 벨 정도로 모질게 천관녀를 쳐버렸다. 여기에 천관녀는 죽은 말을 자신으로 생각하며 내처 버린 그의 무정함을 원망하여 원사(怨詞)를 지었다고 하는데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로 고대 유럽을 호령했던 인물로 유명한 알렉산더 곁에도 뛰어난 명마가 있었다. 전쟁을 함께 누비던 명마의 이름은 부케팔로스인데. 배와 머리 부분에 소머리 모양의 무늬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케팔로스는 알렉산더가 어린 시절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풍문이 들릴 정도로 굉장히 난폭한 말 이였다. 사람들은 이 말을 길들이려 했지만, 말에 올라타기만 하면 모두 낙마를 하고 말았다. 알렉산더는 말이 자신에게 타려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보고 놀란다는 사실을 알고, 타는 위치를 바꿔 부케팔로스의 등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그 이후 알렉산더와 부케팔로스는 많은 전쟁터를 함께 누비며 동고동락을 하게 된다. 알렉산더는 말을 평생의 반려동물로 소중하게 아꼈는데. 왕위에 오른 알렉산더는 부케팔로스의 이름을 따 알렉산드리아부케팔라라는 도시를 건설하기도 했었다. 

 

 세 번째 이야기로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에 송현로 장군의 묘와 나란히 만들어져있는 말의 무덤이 있는데 이 말의 무덤이 장군과 함께 나란히 만들어진 유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병자호란 때 상상진(霜上陣)에서 일어난 일이라 한다. 전투에 창의(倡義)로 참전한 훈련판사(訓練判事) 송현로(宋賢老) 장군에게는 이름이 생이(生伊)라는 애마가 한 마리 있었는데, 역전분투 끝에 이 싸움에서 장군은 순국하였고 그의 애마는 다행히도 명을 보존하여 고향인 산청 생초까지 장군이 착용하던 피 묻은 군복의 한 조각을 입에 물고 돌아왔다. 집안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매우 놀라는 한편 충성스런 말의 거동에 감동되어 눈물을 흘렸다. 집에 돌아온 말은 삼 일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하늘을 쳐다보고 세 번을 울고 쓰러져 죽고 말았다. 장군의 순절을 뒤따르려는 거룩한 최후였다. 그 당시 사림에서는 그 군복으로 장군의 묘를 짓고 그 밑에 충마의 무덤을 지어 후히 장례 하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 무덤의 흔적이 남아있다.

 

 네 번째 이야기로 오추마(烏騅馬)는 검은 털과 흰 털이 섞여 있는 중국의 항우가 탔었다는 준마(駿馬)이다. 어느 마을 한 마리의 용이 호수에 내려와 말로 변해 사납게 날뛰는데, 아무도 그 말을 타질 못했다. 그때 그 근처를 지나던 '항우'가 말을 발견하고, 반나절 동안의 힘겨루기로 제압해서 길들여 탔다고 한다. 항우는 이말을 타고 동분서주하여 전장을 다녔다. 해하 전투에서 패한 '항우'가 오강 에서 죽음을 결심하고 '오추마' 라도 살리기 위해 뗏목에 태워 보냈으나, 항우의 죽음을 직감하고 슬피 울며 물에 뛰어들어 죽고 말았다. 기원전 202년 항우가 한 고조 유방(劉邦)에게 쫓겨서 오강(五江)에 이르러 탄식하며 스스로 자결했으니 그의 나이 31세였다. 그의 오추마를 정장에게 주니 정장이 데리고 강을 건너는데 오추마는 한번 구슬피 크게 울고 강물 속으로 빠져들었다. 오추의 나이는 다섯 살이었다.



 다섯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말은 말타기에 능숙하고, 활쏘기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주몽의 전설적인 영웅의 이야기에서 만날 수 있다. 동명성왕(東明聖王) 또는 추모왕(鄒牟王) 고구려의 개국시조자 초대 군주로 알려진 주몽에게도 뛰어난 명마가 있었다. 아쉽게도 명마의 이름은 전해지고 있지 않다. 주몽은 어머니 유화부인이 금와왕의 후궁으로 혼례를 올려 이복형제들이 생기게 된다. 주몽은 형들과 갈등을 겪게 되고, 자신이 점 찍어 둔 명마를 가지려고 일부러 굶겨 볼품없는 말로 만든다. 기록에는 어머니 유화가 준 바늘을 혀에 꽂아서 삐쩍 마르게 했다고 하는데. 금와왕은 볼품없는 말을 주몽에게 주고, 정성껏 돌봐 명마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름을 날린 영웅 곁에는 그와 함께 반드시 한 필의 명마가 존재했었다.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오직 주인을 바라보는 충성심을 가지고 있던 명마. 영웅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이러한 명마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세계 역사상 그 이름이 길이 남을 영웅호걸들의 삶의 진로에 일조한 바 있는 다섯 가지 명마들의 이야기를 전해 읽고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우리 사람들은 충분히 반성해야 할 계기를 잡아야 할 것이다. 전 세계 국경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단일민족성(單一民族性)을 고집해 오던 우리나라 선조들의 자부심이 점차 허물어지고 다문화 시대로 치닫는 이즈음 어디서 묻어온 병패(敗)인지 모를 일이지만, 매스컴을 통해 들려오는 단어들을 듣고 있자면 귀를 씻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툭하면 “성추행” “성폭행”이니 딸자식 키우는 부모들이야 하룻밤이나마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겠는가? 어디 이뿐이더냐 천지가 개벽해도 마음에 차지 않을 터, 천륜을 모질게 배신해도 유분수지 친족(族)간에 성추행 성폭행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니 뛰어난 명마가 아니라 평범한 말들도 혈육을 알아보고 사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교미하지 않는다던데 하물며 인두겁을 쓴 사람들이 이런 몰지각한 행실로 세상을 어지럽히다니 말띠 해를 맞아 그들은 예천 지보의 '말 무덤을 찾아 반성의 독백(白)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