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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제5화 인생의 강

松竹/김철이 2015. 9. 3. 15:29

연작수필 5부작 세상 사는 이야기 -제5화-

 


                  인생의 강

 


                                                                 김철이

 
 
 세상은 참으로 복잡 미묘하다. 하루를 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눈치만 보다 억만금(億萬 金)을 주고도 바꾸지 못할 소중한 시간을 쉽게 낭비해 버린다는 것이다. 동창이 밝아 눈을 뜨면 가장 먼저 그날 날씨를 살피는 데서부터 눈치 세상을 살아간다. 눈치를 보는 계층은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젖먹이 아기라면 밤새 실례한 기저귀를 언제나 갈아줄까 하고 엄마의 눈치를 살필 것이고 유치원생이라면 꿀맛 같은 아침잠을 어떡하면 좀 더 잘 수 있을는지 갖은 잔꾀 다 부릴 것이며 초등학생이라면 전날 못다 한 숙제를 등교 무릎에야 부랴부랴 서둘러 하느라 귀따가운 어른들의 잔소리를 피하려 곁눈질 절로 할 것이다. 

 

 대입 수능시험을 코앞에 둔 고 삼 수험생이라면 밖으로는 동급생들과 치열한 경쟁 속에 하루하루 자기 자신과 사투를 벌이는 한편 안으로는 장차 무슨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려고 온 가족이 숨소리마저 죽여가며 수험생 뒷바라지하는 가족들이 부담스러워 반대로 역 눈치를 살펴야 할 것이고 간신히 바늘귀만 한 고 삼 구멍을 통과하여 엘리트 등용문 대학엘 입학하였다 치더라도 사 년 후면 취업대란시대(就業 大亂 時代)의 실질적인 주연이 되어 유치부를 제외하고도 이십 년을 공부시켜 놓았더니 취직은 언제나 하려나 하는 부모의 눈치를 절로 봐야 하는가 하면 이력서 봉투를 든 채 높디높은 기업체들의 문턱을 넘나들며 스트레스성 눈치를 살펴야 할 것이며 어쩌다 운이 좋아 내로라 손꼽는 대기업에 취업이 됐다손 치더라도 누구든 밟고 딛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현실을 통감하며 직장 상사는 물론이고 동료들의 눈치까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눈치를 살피며 사는 것은 편안하고 안락한 보금자리가 돼주어야 할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요즈음에야 핵가족 시대라 하여 그런 모습을 접할 기회가 드물겠지만, 불과 일이십 년 전만 하여도 한지붕 아래 삼 대 가 서로 부딪기며 생활하는 것이 예사였기에 아무런 덕도 남지 않는 시어른들과 며느리 사이부터 시작하여 시누이올케, 시동생 형수 사이로 이어지는 눈치 보기는 애꿎은 남편과 슬하의 자녀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치고 그 숱한 갈등 속에서 숨 막히는 눈치 보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슬하에 딸자식을 거느린 부모는 비행기를 타고 아들자식을 거느린 부모는 자동차를 탄다는 묘한 속설이 공공연히 나도는 기막힌 현실은 세상 수많은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기보다 아내와 처가의 눈치를 살피느라 재치와 지혜를 발휘하여 대처를 잘하다 보니 이러한 속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우리 사는 지금 이 시대는 다문화 시대의 길목이 아닌가 싶다. 날이 가면 갈수록 전 세계의 거리는 좁혀질 것이고 수많은 인종과 민족들이 살을 한데 부비며 살아가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 남북 전쟁 이전 노예제도를 만들어 여러 수많은 민족을 강제로 노예화해 부렸던 여러 강대국의 거들먹거렸던 오만함은 사라진 전설 속에서도 자취를 감출 것이고 그 누구의 생각이며 누구의 손으로 만들어졌던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그 옛날 조선 시대부터 대를 이어 내려오다 부끄럽게도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의 손에 의해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 양반(兩班) 중인(中人) 평민(平民) 상민(常民) 천민(賤民) 제도 역시 우리 기억 속에서 말끔히 사라질 것이다. 이 불합리한 제도를 통해 석 자도 안 되는 수염을 쓸어내리며 가슴에 차는 행복함에 쾌재를 불렀던 이들도 있었겠지만, 엉터리 같은 이 제도에 억눌려 숨 한번 크게 고르지 못한 채 상전(上典)의 눈치를 살피느라 허리가 휘었던 이들도 얼마나 많았는지 절로 상상이 된다.

 

 노비를 재물로 취급하여 타인들에게 매매되기도 하였던 우리나라 고려와 조선 시대, 양민(良民) 남자와 여자 종 사이에 태어난 자식은 자동으로 노비로 간주하던 노비 수모법(奴婢 隨母法)이란 악법의 그늘에서 타고난 신분이 미천하다 하여 같은 인성을 지녔고 같은 풍습하에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같은 민족에게 갖은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았지만, 죽은 목숨처럼 살았던 그 옛날 우리 조상님들의 삶과 노예를 팔고 사는 시장. 인권이 무시되는 곳이 엄연히 존재했고 먼 옛날 백인들은 노예 시장에서 몇 푼 안 되는 몸값을 내고 주로 흑인 노예들을 사다 마음껏 부렸다던 미국 남북 전쟁 이전의 사회에서 노예의 신분을 지닌 채 온갖 수모와 괄시를 다 받으며 살아야만 했던 모든 제도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 지니고 난다는 추하고 더러운 갖은 욕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옷 한 벌 걸치지 않고 태어나 티 없이 맑고 깨끗하게 흘러가야 할 인생의 강이 오염이 되어 똥물이 흐른다는 것이다.  
 

 한 세상 살다 보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지고 싶은 것도 누리고 싶은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다 가져본들 남는 건 허망한 욕심뿐 인간의 도리에 어긋난 행위가 잦을 시면 흘러갈 앞길에 불행을 초래하고 향락에 빠져 제 가정 제 자식새끼 고개 돌려 외면하면 늙고 병들면 가슴 치며 후회할 터이고 출세와 명예에 눈이 어두워 벗을 버린 자는 온 세상의 버림을 받아도 호소할 곳 하나 없으리 비 오는 날이면 산 위로 올라 네 흘러가는 인생의 강을 보라. 세상 모든 강물이 네 발아래로 흐르고 있지 않은가 피 터지게 목청 높여 불러 되지 않아도 강은 옥수로 흐르지 않을까 비워라. 그리고 네 먼저 쏟아라. 구정물 몇 방울 흘러갈 도랑 물꼬에 용서를 구하는 용서를 청하여라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은 보고 배워 낮아지라는 것일 것이다. 우리 인생 죄다 빈손으로 왔으니 돌아갈 적에 영혼이 살아갈 농막(農幕) 하나 지어놓아도 수지맞은 인생을 살았다 할 것이다. 자연의 강은 세상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흐르지만, 인생의 강은 시시때때로 눈치를 살피며 흐른다. 이유는 한 가지, 자연의 강물은 아무런 계산 없이 마냥 바삐 흐르지만, 인생의 강물은 갖은 계산 다 하고 잔머리 굴리느라 더디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기왕에 빈손으로 왔으니 우리 인생 가다듬어 인생의 강가에 청수(淸水)나 흐르게 눈치는 보지 말고 살아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