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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제4화 유년시절 동고동락했던 책들의 흔적

松竹/김철이 2015. 8. 24. 13:32

연작수필 5부작 세상 사는 이야기 - 제4화 -

유년시절 동고동락했던 책들의 흔적 

 

 몸도 성치 못한 철부지 꼬마가 당돌하게 장차 언어의 마술사 글 쓰는 작가가 되겠다며 야무지고 엉뚱한 행동을 보였을 때, 그 아이 부모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자식을 낳아보지 못했으니 상상이 가질 않는다. 아마도 어기(語氣)가 넘어 할 말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부모는 여느 부모와는 달랐다. 그 시절 내게 보여주신 모습이 병든 자식을 위로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나는 믿을 것이다. 그 시절 내 부모의 말씀을 적어도 50평생을 살면서 나를 대하는 부모님의 가식적인 모습은 한 번도 접하질 못했으니까 말이다. 비록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가슴속에 따뜻한 정이 흐르는 성품을 지녔기에 작가가 되고자 허황한 꿈만 꾸는 아이의 귓전에 틈이 날 때마다 갖가지 전래동화라든지 이솝우화를 직접 입담으로 들려주시곤 하셨다. 이 또한 고향의 향수라 할 수 있으니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 그 입담을 빌려 그 향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하자

 

 길동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병서와 도술을 체득했고, 훌륭한 인물이 되기 위하여 학문과 무예의 연마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자라는 신분으로 인하여 온갖 천대와 구박을 감수해야 했고, 심지어 그의 비범함이 장차 화근이 될 수도 있다는 가족들에 의해 음모로 암살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결국, 길동은 모친의 충고로 암살의 위기를 벗어나 정처없는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된다. 집을 나온 길동은 비분을 삭이며 떠돌다가 도적의 소굴로 들어가 힘을 겨루고 도적의 두목이 된다. 길동은 해인사의 재물을 기이한 계책으로 탈취하고, '활빈당'이라 자처한다. 그 후로 길동은 팔도 지방 수령들의 불의의 재물을 기이한 계략과 도술로써 탈취하여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다. 이 홍길동전에서 아버지는 내게 남자의 용맹성과 불의를 보고 눈감는 자는 남자로서 그 자격을 잃는 것이라 일러주셨다.

 

 전설 속의 동물로 여우에서 진화한 구미호 이야기, 구미호가 사람들의 간을 파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구미호는 여우 구술을 품고 있는데, 그 여우 구술은 값이 비싸고 아픈 사람한테 먹이면 모든 병이 낫는다고 한다. 구미호가 땅에 여우 구술을 흘리면 하늘로 사라진다. 그리고 보름달이 뜰 때 잃어버린 힘을 얻고, 여우 구술이 없는 구미호들에게는 여우 구술이 주어진다고 끝맺음을 맺는 이 이솝우화를 통해 본디 담력(膽力)이 약해 하찮은 일에도 잘 놀랐던 내게 담을 키워주는 계기로 삼으셨다.

 

 옛날 어느 부인이 아들 아홉과 딸 하나를 낳고는 모진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부인이 죽자 남자는 새 장가를 들었다. 후처로 들어온 부인은 아들 아홉과 막내딸 한 명을 합쳐 모두 열 자식을 거느리며 살게 되었다. 그런데 후처는 이 막내딸을 몹시 미워하며 늘 갖은 험한 일을 다 시키면서 구박하였다. 그러나 처녀는 장성하여 시집갈 때가 되었으므로 오빠들이 많은 혼수를 장만하였는데, 그만 처녀도 어머니처럼 갑자기 몹쓸 병에 걸려 그만 죽고 말았다. 이에 아홉 오라버니가 몹시 슬퍼하면서 동생의 혼수를 마당에 내놓고 불에 태우는데 계모가 이를 보고 주변을 돌면서 아까워하며 태우지 못하게 방해를 놓았다. 화가 난 오라버니들이 계모를 불 속에 넣고 함께 태워 버렸더니 까마귀가 되어 날아갔다. 처녀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어 밤만 되면 오라버니들을 찾아와 슬피 울었다. 접동새가 야밤에만 우는 이 슬픈 이야기를 통해 부모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셨다.

 

 시냇물이 바다로 흘러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바다에 흘러들어 가면 금방 짜져서 먹지 못하게 되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해!" 그 말을 전해 들은 바다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시냇물이 너무나 얄미웠다. 해서 어떻게 혼을 내 줄까 궁리하다 알을 낳기 위해 바다를 떠나는 송어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누가 오라고 그랬니? 오기 싫으면 오지 마라. 그러면 짜질 염려도 없을 테니까!" 시냇물이 흘러서 바다로 간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니까 만약 시냇물이 바다로 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금방 썩어서 냄새를 풍기는 죽은 물이 되었을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무슨 일이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도록 교훈을 주는 이야기로 나의 어머니는 이 이솝우화를 들려주시며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과 세상은 더불어 사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을 미리 가르쳐 주셨다.

 

 언제나 등에 짐을 잔뜩 싣고 다니는 당나귀가 있었다. 어느 날, 당나귀는 소금 자루를 실어 나르게 되었다. 그런데 개울을 건너다 그만 발을 헛디뎌 물속에 빠졌다. 당나귀는 허우적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살려 주세요!" 주인은 황급히 당나귀를 일으켜 세웠다. 당나귀는 짐이 무척 가벼워진 것에 매우 놀랐다. 소금이 모두 물에 녹아 버렸으니까 당나귀는 마음속으로 기뻤다. 그리고 훨씬 가뿐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당나귀는 또 소금 자루를 나르게 되었다. 이번에도 개울을 건너가게 되어 당나귀는 속으로 좋아했다 "좋아, 보기 좋게 주인을 속여 넘겨야지." 개울 한가운데에 이르자, 당나귀는 일부러 '풍덩' 하고 물속으로 빠졌다. "살려주세요!" 주인이 허겁지겁 당나귀를 일으켜 주었다. 물에 잠긴 소금은 순식간에 녹아 버렸다. 당나귀는 다시 짐을 덜게 되어 편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인제 짐을 아무리 많이 실어도 걱정 없어 주인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으니까. 꾀부리는 당나귀와 당나귀의 속셈을 알고도 모른 채 해주었던 주인의 모습에서 너그러운 부모의 마음과 밴댕이 속 같은 자식들의 마음을 소금을 나르는 당나귀에 비유하여 미리 보여주셨다.

 

  배고픈 개가 잔칫집에 들러 고기 한 덩이를 얻었다. 입에 고기를 문 개는 개울 위에 놓인 외나무다리를 건넸다. 그런데 다리 중간쯤에서 무심코 다리 밑을 내려다보니 다리 밑에도 어떤 개 한 마리가 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개가 물고 있는 고깃덩이가 제 입에 문 고기보다 더 크게 보였다. 욕심이 난 개는 그 고깃덩이마저 뺏으려고 큰 소리로 짖었다. 순간, 입에 물고 있던 고깃덩이를 순식간에 물속으로 빠뜨리고 말았다.

 

 욕심 많은 개, 이 이야기는 개에 비유하여 소개했을 뿐, 개 차원에서 듣고 풀어갈 성질의 내용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뜻과 의미는 겉으로 보이지 않으셨지만, 사람이 지나친 욕심을 부릴 양이면 금수(禽獸)보다 못하는 가르침을 암시해 주셨다.

 

 파랗게 싹이 돋은 보리 순들이 여기저기에 뭉개져 있는 것을 본 농부가 화가 나서 학들을 쫓아내려고 돌을 던지는 시늉을 했다. 놀란 학들이 달아났다가 농부가 없으면 또 나타났다. 농부는 학을 다치게 하기 싫어서 가짜로 돌을 던지는 시늉만 했는데, 학들이 자기가 예뻐서 혼내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화가 난 농부는 정말로 돌을 던졌는데, 돌을 맞은 학들은 죽고 말았다.

 

 이솝우화이지만, 어머니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두가 잘못했으면 말로 타이를 때 알아듣고 제자리로 돌아가 본분을 다하는 것이 현명하고 어리석은 학들처럼 계속 미련을 떨다가는 언젠가 한번은 큰일을 당하게 될 거라는 교훈을 남겨주셨다.

 

 넓고 푸른 들판에 전나무와 가시나무가 서 있었다. 전나무는 가시나무를 늘 얕잡아 보고 있었다. 전나무가 가시나무한테 말했다. "못생긴 가시나무야, 너는 정말 쓸모가 없는 것 같구나." 전나무의 말에 가시나무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이번에는 가시나무가 전나무한테 물었다. "전나무야, 그럼 너는 어떤 쓸모가 있지?" "나는 좋은 목재니까 집을 지을 때 사용하지." 전나무는 어깨에 힘을 주고 뽐냈다. 그러자 가시나무가 피식 웃으며 전나무한테 점잖게 말했다. "그래? 그러나 나무꾼이 도끼를 들고 이 들판으로 나오면 그땐 아마도 내가 부러워질걸…." 어머니는 이 이야기 속에서 무언의 교훈을 사대육신 뼛속에 새겨주셨는데 그것은 사람은 누구나 공평해야 하고 지금 양달이라 하여 영원히 양달이 될 수 없으며 현재 응달이라 하여 영원한 응달이 될 수 없다는 인간사 진리를 깨우쳐 주셨다.

 

 칼바람 몰아치고 된서리 맞은 대지에 천둥마저 내려치니 갈까마귀 울음마저 숨죽여 숨듯이 글쟁이라곤 단 한 명도 없는 가문에서 돌연변이도 유분수지 고인이 되신 부모님 응달의 짙은 향수로 글쟁이가 되었으니 하늘 가신 부모님께 양달의 은헤로 보답 해야 할 테지 내 영혼의 껌딱지처럼 눌어붙은 숱한 책들의 흔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