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수필 5부작 세상 사는 이야기 / 제3화 일원의 행복
물질 만능의 시대에 사는 이 시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행복]이란 단어가 입력되어 있을까? 물론 많이 가지면 일단은 행복함을 느끼지만, 그 느낌은 길지가 않다는 것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특히 개발도상국 시절 조부모(祖父母) 부모(父母)들이 뼈 빠지게 고생했던 덕분에 얻을 만큼 얻었고 가질 만큼 가진 채 생활해 나아가는 요즈음 젊은이들은 줄 때야 잠시 감사함과 행복함을 느끼다 얼마 되지 않아 감사함도 행복함도 쉬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뭐든 고생 없이 쉽게 얻으려 하고 쉽게 얻을 수 있으니 감사함도 행복함도 절반으로 줄어들 수밖에 노력하긴 싫고 편히 살고 싶은 생각들만 영혼 속에 가득하니 남이 가진 것이 탐이 나고 게을러 가진 것 별로 없이도 수백, 수천만 원은 돈 취급조차 하지 않은 채 “억! 억!” 한다는 것이다. “억! 억!”하다가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억!” 하고 세상을 뜨는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 라는 속담에 걸맞게 분별없는 어른들이 천진난만하게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 앞에서 “억! 억!” 하니까 마냥 새파랗게 자라야 할 동심마저 황금만능의 노예가 된 듯 “억! 억!” 한다는 것이다.
두어 달 전의 일이었다. 볼 일이 있어 아내와 외출에서 돌아와 자동차에서 내려 아내가 대문 빗장을 여는 사이 휠체어를 타고 대문 앞에 잠시 앉아있을 때 대문을 나란히 한 옆집 대문 댓돌 위에 앉은 열 살 정도의 또래 남자아이들이 그림 딱지 따먹기를 하고 있어 문득 유년시절 그림 딱지 따먹기 하던 추억이 떠올라 말끄러미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멀쩡한 눈에 번갯불이 튀겼고 속에서 천불이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의 그림 딱지 속 그림에 악연실색(愕然失色), 딱지 속 그림이 아이들 나이 또래에게 맞는 도안이 아니라 돈 그림이었는데 그것도 아이들 또래에게 맞는 몇백 원의 수준이 아니라 수억, 수십억을 훨씬 뛰어넘어 조 단위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어이가 없고 너무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어릴 적 딱지 속 그림이라야 인기 많던 만화책 주인공 아니면 군인들 계급단위였고 옛날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었다. 철부지 아이들 간 키우기 딱 좋았다. 아이들의 동심이야말로 순수하고 티 없이 깨끗한 환경에서 키워 나아가야 하는데 행길에 곱게 던져놓아도 비 오는 날 지나가던 미친개조차 물고가지 않을 돈으로 순박한 동심을 유혹하여 병들게 하니 세상 어른들 그 책임을 어떻게 다질 것인가, 동심을 멍들게 하면 나라도 병이 절로 드는 것을…
그 징벌의 징조가 드러나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되었다. 시골 아이들은 몰라도 요사이 도회지 아이들은 어른들이 천 원권 한 장을 용돈으로 건네줄 양이면 별천지에서 온 외계인 취급하며 빤히 바라보거나 궁시렁거리기까지 하는 아이들도 있단다. 만약, 그런 아이들에게 일 원권 동전을 건네준다면 외계인이 아니라 정신병자 취급만 받지 않아도 천만 다행한 일일 게다. 그러나 실망은 하지 말자. 희망의 씨앗은 어느 시대던 움트기 마련이고 단돈 일 원으로 행복했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이 시대 아이들이야 돈 백 원이라면 콧방귀 낄 테지만, 내 어릴 적 시절엔 단돈 일 원만 들고 나가도 그렇게 행복하고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삼십오 년 전 백 원을 일원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화폐 개혁이 있기 전에는 일원으로 하루가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는 것이라 많이 가지면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심리처럼 요즈음 아이들이 하루를 행복하게 살려면 오천 원을 가지고도 그리 넉넉함을 느낄 수 없다는 말을 친분이 있는 아이의 말을 통해 들었던 적이 있는데 흔히 칠 공 팔공 시대라 일컫는 쉰 살을 넘긴 나이의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남녀노소 모두 일원의 행복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아침에 출근하시는 아버지의 옷소매에 매달려 하루 용돈으로 일원을 타내기 무섭게 등교 전 형님과 달려간 곳은 당연히 구멍가게였다. 내 어릴 적 우리 동네 구멍가게 주인은 육, 이오 전쟁 때 북한에서 피난 오신 할아버지였는데 생활력이 강해서 그런지 피난 넘어와 홀로 된 상처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아이들 사이에 인심이 그리 후하지 못했다. 할아버지의 말씨가 서울 억양이 난다 하여 동네 개구쟁이들은 부르기 좋게 서울 할배라고 불렀다. 그 시절 구멍가게 과자들은 유리 항아리에 넣어놓고 팔았는데 투명한 유리 항아리 속 갖가지 과자들은 동네 개구쟁이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었다.
내 어린 시절 즐겨 먹던 추억의 과자로는 보석 반지, 테이프, 네거리 사탕, 오징어 짱다리, 맥주 맛 사탕, 밭두렁 등이 구멍가게 과자 진열장 터줏대감역을 맡아 그 시절 동심의 입맛을 희롱했었는데 그 시절 과자들의 공통점은 오래 먹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과자를 만들어 내는 기술도 개발되지 못했겠지만, 그 보다 앞선 이유는 다들 어려운 시절이었던 탓에 마음 놓고 아이들의 간식거리를 댈 수 없으니 하나를 먹어도 맛과 영양가는 둘째 치고 오래 먹을 수 있는 과자를 만들어 내지 않았나 싶다. 그 외에도 그 시절 아이들의 혀를 동하게 하고 군침을 흘리게 했던 과자 중에 페인트 사탕, 아폴로, 아이셔, 우산 초콜릿, 뿌셔뿌셔, 깜짝이, 뽀빠이, 차카니 등이 있었는데 이 많은 과자도 일원이면 하루를 번갈아 가며 맛볼 수 있었다. 어른들은 이 모든 과자의 가슴에 불량식품이라는 누명을 씌워 못 사 먹게 했었지만, 그 시절 아이들의 입맛에는 천하 진미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그 과자들의 맛이 천하 진미였다. 먹거리가 넘쳐나는 요사이 아이들에게 건네주면 맛도 보기 전에 불량식품이라 인상부터 찌푸릴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 불량식품이라 누명을 썼던 그 과자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처럼 고급화된 과자들을 생산해낼 수 있었겠는가, 해서 아무리 물질 만능의 시대에 산다 하여도 간혹 이 시대의 밑거름이 돼주었던 시절의 아픔도 되새김질하여 아파보라는 것이다. 일 년 열두 달, 삼백육십오 일도 하루부터 시작되고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이 되듯 아무리 “억! 억!”하는 시대라지만, 그 좋아하는 “억!”도 일원부터 시작되고 “억!”에서 일원만 부족해도 “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게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의 모습일 게다. 만약, 버스정류장에 일 원권 동전 하나가 굴러다닌다면 정말 아깝고 보배로운 마음으로 부끄럼 없이 허리 굽혀 줍는 사람 몇이나 될까 체면도 남사스러움도 다 무릎서고 일원을 줍는 사람이 있다면 그이는 그 순간부터 일 원짜리 인생이 아니라 수억을 손에 넣은 채 수억짜리 인생을 살아가게 될 거라는 것이다. 일원의 행복을 느낄 수 없다면 수억이 아니라 수천억의 행복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松竹♡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 사는 이야기/제5화 인생의 강 (0) | 2015.09.03 |
---|---|
세상 사는 이야기/제4화 유년시절 동고동락했던 책들의 흔적 (0) | 2015.08.24 |
세상 사는 이야기/제2화 사(死)의 찬미 (0) | 2015.07.10 |
세상 사는 이야기/제1화 추억의 기차 소리 (0) | 2015.07.06 |
영혼의 편지 (0) | 2015.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