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수필 5부작 세상 사는 이야기
- 제1화 추억의 기차 소리 -
칙칙폭폭 칙칙폭폭 그 옛날 기차 소리가 무식하고 예의 없게 새벽에 잠이 든 꿀맛 같은 나의 단잠을 흔들어 깨웠다. 어린 시절 병약했던 나는 만물의 영장 주제 값도 못한 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던 힘없는 그 모습에 왜 그리도 기가 죽던지 그 당시 미국 가톨릭 어느 수도회 소속이었던 부산 메리놀병원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꼬박 삼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드나들었던 내게는 호랑이 성품을 지니셨던 부모님보다도 주사와 기차가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다. 철도원 가족이란 특혜로 무상으로 신물 나게 탈 수 있었던 나는 아침 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어머니 등에 업혀 메리놀병원을 향해 달렸다. 그 당시 우리 집이 있던 부산 연제구 연산2동에는 교통수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 흔한 달구지 한 대도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 덕분에 기차를 타고 병원을 가려면 새벽녘에 집을 나서야 했다. 그 당시 나약했던 국내 의료시설 탓에 진료는커녕 메리놀병원 진찰권을 타려고 해도 오뉴월 엿가락 늘어지듯 진찰권을 타려는 인파의 끝이 보이질 않았다.
몸을 무리하게 혹사했던 탓에 혀에 가시가 돋은 듯이 밥알이 자갈돌같은 느낌에 입맛이 새벽밥 밥술을 뜨는 둥 마는 둥하고 집을 나서는 어머니 등에 업힌 나는 세상 물정 모르고 마냥 좋았다. 그때 내 나이 고작 두, 세 살 성숙해서가 아니라 영혼 속 아픈 상처의 딱지가 너무 커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 시절 기억은 아직도 생생히 살아 숨 쉰다. 기차를 타려면 연산동에서 이웃 동네인 거제동까지 걸어서 가야만 했다. 어린아이의 기억으로는 그 당시, 이웃 아주머니 한 분이 심장이 건강치 못해 함께 메리놀병원 통근치료를 받으셨는데 원래 고열로 매우 놀라 걸린 병이라 기적 소리만 들릴 때면 어머니 등짝이 들썩거릴 정도로 매우 놀라던 나를 애인케 보시고 아주머니는 등 뒤에서 두 손으로 나의 두 귀를 틀어막아 주셨다. 무슨 세상 불만이 그리도 많았던지 마음아픈 여인들의 심정도 모른 채 왜 그리 고함을 고래고래 질러 됐던지 거제역에서 기차를 타고 병원에 가면 거의 온종일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러 부산역 역사에 들어서면 역 구내로 들어서는 시커먼 그 모습은 마치 우직하고 몸집 좋은 사내와 같았다. 가만히 서 있는대도 연기를 뿜으며 장차 역사의 기억 속에 사라질 자신의 운명을 알고나 있는 듯이 눈물을 흘리듯 물을 줄줄 흘리고 섰던 그 시절 기차의 모습이 그 시절 주역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는 지금 나의 자화상을 미리 본듯싶다.
무식하게 질러 되던 기차 소리를 뒤로하고 거제역 역사를 벗어나면 한동안 귓전에 기적 소리로 쟁쟁, 천구백오 일에 걸쳐 반복되었던 일상 속에 울고 싶고 웃고 싶었던 일화도 많았다. 어디서 낮술을 드셨는지 술에 권하게 취하셨던 아저씨 자식들에게 갖다 주시려고 사신 양갱의 금박지 껍질을 손수 까서 어머니 등에 업힌 채 기진맥진해 있던 아이의 입에 조심스레 넣어주시며 아기가 잘생겨 한번 안아봐도 되냐는 물음에 어머니는 대답할 말조차 잃었는지 대답 대신 등에 업었던 아이를 생 계란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내려 건네주시면 그제야 아이가 성한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아신 아저씨, 혀를 껄껄 차시며 아까운 아이 어쩌다 이렇게 됐느냐는 질문에 눈에서 방금 이라도 터져 나올 듯한 눈물을 참느라 침을 삼키시던 어머니, 기차를 타고 시골 오일장에서 갖은 채소를 때다 파시던 채소장수 할머니 옆자리에 앉아 아이를 보아하니 아무리 보아도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발육상태가 달리 느껴졌던지 병원에 함께 다니던 아주머니에게 아이의 상태를 물어보시곤 채소 보따리를 풀어 조목조목 갖은 채소를 꺼내 어미니 손에 건네주시며 다 산 것 아니니 힘내라 용기 주시던 인정 많은 경상도 할머니의 구수한 사투리, 기차 통학하던 여고생 누나들이 아이가 마치 서양 아기처럼 귀엽게 생겼다며 어디서 생겼는지 책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미국제 초콜릿을 꺼내주며 제 엄마 등에 업힌 아이를 얼레던 그 선한 모습들, 사람은 늙어도 기억은 늙지 않는 법, 때로는 세상에 태어나서 어머니 갖은 고생만 바가지로 시켜드렸고 자랄 적에 곱게 자란 어머니 여린 가슴에 커다란 대못을 박아드린 죄책감에 그 옛날 아픈 기억들은 깡그리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더라. 숱한 세월이 기차를 갈아타고 달리고 또 달려 반나절이 좋게 걸렸던 한양길을 두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으니 얼마나 많은 추억이 흘렀는가. 고장도 없는 시간은 줄곧 앞만 보고 달리고 그 옛날, 우람한 몸집으로 무식하게 고래 고함을 질러 되던 옛날 기차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지만, 칙칙폭폭 칙칙폭폭 그 옛날 기차 소리는 지금도 귓전에 맴을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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