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수필

영혼의 편지

松竹/김철이 2015. 6. 26. 16:03

영혼의 편지

 

 

 길거나 짧거나 사람은 누구나 제 몫의 한세상을 살기 마련이고 사람이 타고난 자기 몫의 세상을 살다 보면 미운 사람도 보기 싫은 사람도 입 섞여 말하기 싫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슴 내주어 사랑하고 싶은 사람도 서로 마음을 나누며 좋아하고 싶은 가진 것 공유하며 친해 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다 보면 괴로움이 따르기 마련, 때로는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어서 때로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어서 아픔도 따르고 고뇌하는 괴로움도 따를 것이다. 그렇다고 사랑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존재다. 가슴 쥐어짜는 괴로움이 가만있어도 눈물이 슬픔이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가슴이 아려오는 아픔이 따른다고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삶이란 것 자체도 괴로움의 연속이니 인간사 세상을 살지 말라는 말과 같을 것이다. 상처가 수시로 덧나 아파도 인간의 얇은 생각으로 해결할 수 없어 괴로워도 우리는 살아야 하고 사랑을 해야 한다.

 

 그래서 좋아하고 사랑하다 보면 때로는 실망하고 때로는 배신의 아픔으로 미운 가정이 싹을 피워 세상 소풍 길에서 자신의 영혼에 잘 떨어지지 않는 상처의 딱지가 앉아 미처 살풀이도 못한 채 생의 마지막 날 보따리에 꽁꽁 싸서 가져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배신의 아픔은 우리가 그에게 반대급부를 바라고 있었음을 진작에 반증했을 것이다. 조건 없이 바람 없이 주고 바램 없이 사랑했다면 돌아서 가는 사람은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미움도 아픔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랑은 기쁨이지만 괴로움이 동반되듯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것은 한층 더 자신을 아프게 할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며 미워하는 마음은 희망 없는 아픔일 게요 희망 없는 괴로움일 것이다. 사계가 차례로 변하여 흘러가듯 마음이 변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으려니 사람이니까 변하고 배신할 수도 있으려니 구름과 강물이 흘러가니 내 마음에서 인연(因緣)이라는 미명(美名)하에 창살 없는 옥살이시켰던 그들을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어진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몫의 인생을 기록하면서 그 기록이 쌓이는 것으로 생의 어깨에 지고 갈 짐을 만들기보다는 적절히 소용없을 기억과 기록을 지우고 삭제할 줄 아는 지혜로움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리 날이 시퍼렇게 서고 잘 드는 칼로도 끈을 수 없는 이 연줄로 아파하는 대상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천륜이 매어놓은 연줄은 이승에 살아 숨 쉬는 사람과 이미 죽어 혼백이 된 저승의 사람과 통교(通交)하며 능히 교감校監)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보존하며 살아있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모습을 마주하며 직접적 대화방식을 비롯해 갖가지 통신수단과 편지 또한 기계문명의 혜택으로 이 시대의 현대인들은 우주탐험을 위해 달에 가있는 우주인들과도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하면 컴퓨터로 하는 화상채팅의 방법으로 통교하는 반면에 산 사람과 죽은 사람과의 통교 방식은 기계문명이나 과학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통교 방식은 정상적인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승의 산 사람과 저승의 죽은 혼백의 통교 방식 중에는 예지 능력을 지닌 이가 매일 밤 잠자리에서 꾸는 꿈을 통해 하는 것이 있고 지금 이 시대의 현대인들을 예를 들어 보자면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 중 깊은 신심을 지닌 이들은 기도에 침체하여 무아지경에 이르렀을 때 신()은 물론이고 죽은 사람의 혼백과의 통교할 수 있을 것이며 마음을 의지할 곳이 흔치 못했던 우리네 조상님들은 나름대로 받들어 섬길 신을 만들어 서로의 방식대로 통교를 나누곤 하였다.

 

 그들이 신()이라 믿고 섬기던 잡신()의 큰 굴레 속엔 토속신앙, 민속신앙, 무속신앙이 있는데 토속신앙이란 샤머니즘을 기초로 했었다. 해일, 지진, 천둥·번개 등을 보면서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그들에게 제사와 기도, 기원을 드리기 시작하면서부터 토속신앙의 기원이 시작된 것이다. 거기에다 '' 이라는 것을 더해 토속신앙들이 생겨난 것이고 반대로 서양의 경우를 보면 한국이나 일본에서 '' 적인 존재를 결합한 것과는 달리 '인간' 을 결합했다. 북유럽신화나 그리스, 로마 시대의 전설이나 신화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인간을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절로 들 것이다. 그들은 인간들처럼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 섬겼을 것이다. 다만 동양의 토속신앙들의 신들은 좀 더 인간보다 고차원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졌고, 인간과 같이 감정을 지니고 있되, 그것이 절대적이어서 인간보다는 영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민속신앙이란 생활과 관련된 지혜와 절제, 근면등을 위한 민간 가정에서의 생활지혜를 신앙적으로 승화시킨 것을 말한다. 인간과 신이 집안에서 공존한다는 의미다. 우리 조상은 집을 돌보는 집지킴이의 존재로 믿었다. , 마당, 마루, 부엌 집안 곳곳에서 우리를 지켜주던 집지킴이들. 집을 새로 지을 때 쌀을 가득 넣은 성주단지를 모시거나 햇곡식을 넣어 뒤란이나 장독대에 해마다 "터주 가리"를 만든 것은 대표적인 집지킴이 신앙이었다. 대표적인 민속신앙은 가신신앙(家神信仰)인데 위에서 말한 집안의 신들을 모시고 받드는 것을 말한다. 가정의 주부들이 가신이 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가정의 평화와 안녕, 건강 등을 각 처소에 있는 신들에게 기원하는 것을 말한다. 각 처소의 신명을 보면, 안방의 조령[祖靈(제석 帝釋)]과 삼신(三神)을 들 수 있고, 대청에 성주, 부엌에 조왕(竈王), 장독간에 철륭, 측간에 측신(廁神), 문간에 문신[門神, 또는 수문신(守門神)], 그리고 뒤꼍과 안뜰에 터주(地神)와 업을 들 수 있다. 동제신앙(洞祭神仰)이 또한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신앙으로 주로 산신제, 성황제, 마을굿이라 부른. 주로 일 년에 한 번 정도 행사인데 음력 정월이나 음력월에 많이 행해지고 그 시기가 되면 마을을 대표한 제주를 뽑아 시기를 정하고 제사비용을 가정마다 추렴해서 준비했다. 신으로서의 주 대상은 농경 사회에서는 산신, 성황신, 용신 등이다. 아울러 우리 전통 한옥의 방, 마루, 마당, 장독대, 곳간, 부엌, 변소, 지붕 곳곳에 머물며 우리와 함께 했던 우리의 집지킴이 역할을 해주었던 민속 신중에는 집을 지켜주고 보호해 준다고 믿었던 성주신, 민간에서 신으로 모셔지는 조상신, 가정의 출산과 아이들의 양육을 도맡아 준다고 믿었던 삼신, 불의 신으로 섬겨지며 부엌에 모셔져 아궁이와 밥솥을 관장했던 조항신, 집터를 관장해 준다고 믿었던 터주신 등이 있다. 무속신앙이란 수많은 잡신과 인간들을 연결해주는 무속인을 통해 통교할 수 있는 것으로 믿어왔다. 우리네 조상은 이 세 분류의 민간신앙에 의지하여 삶의 희로애락이란 거대한 산을 지혜롭게 넘어왔지만, 그 어떤 일이든 과하면 아니 한 것 못하다는 교훈처럼 세 가지 민간신앙 행위 중에 간혹 분란도 일어나곤 하였다 한다.

 

  이처럼 애틋한 가족애와 집과 땅을 향한 집착이 어느 민족보다 강했던 것으로 느껴졌든 것은 유년시절 매일 밤 장독대로 나가 정화수 떠놓고 슬하의 자식들을 위해 빌고 또 비시던 어머니의 애틋한 모습을 통해서였다. 그때만 하여도 어머니는 자주 사찰을 찾아 불공을 드리곤 했었는데 그러한 신앙행위로도 어머니의 허황했던 마음을 채울 수 없었던지 밤이슬 맞아가며 이름 모를 잡신들 신전에 공을 들였던 것이다. 아마 모르긴 하여도 그 당시 어머니 뇌리엔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부터 시작하여 위의 모든 잡신의 은혜를 바라는 단어들로 빽빽이 채워졌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어머니 평생소원은 슬하의 삼 남매 탈 없이 가정을 꾸려 나아가는 거라 하셨다. 매일 밤 그 소원을 빌어주신 덕분에 부유하게 잘살지는 못하지만, 우리 삼 남매 한 사람도 이탈하지 않고 가정을 꾸려 부모님 답사하고 가셨던 그 사랑의 길을 따라가는 중이다. 이 작은 공간을 빌려 그 크옵신 부모님 은혜에 내 영혼 감사의 편지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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