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편지
길거나 짧거나 사람은 누구나 제 몫의 한세상을 살기 마련이고 사람이 타고난 자기 몫의 세상을 살다 보면 미운 사람도 보기 싫은 사람도 입 섞여 말하기 싫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슴 내주어 사랑하고 싶은 사람도 서로 마음을 나누며 좋아하고 싶은 가진 것 공유하며 친해 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다 보면 괴로움이 따르기 마련, 때로는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어서 때로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어서 아픔도 따르고 고뇌하는 괴로움도 따를 것이다. 그렇다고 사랑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존재다. 가슴 쥐어짜는 괴로움이 가만있어도 눈물이 슬픔이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가슴이 아려오는 아픔이 따른다고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삶이란 것 자체도 괴로움의 연속이니 인간사 세상을 살지 말라는 말과 같을 것이다. 상처가 수시로 덧나 아파도 인간의 얇은 생각으로 해결할 수 없어 괴로워도 우리는 살아야 하고 사랑을 해야 한다.
그래서 좋아하고 사랑하다 보면 때로는 실망하고 때로는 배신의 아픔으로 미운 가정이 싹을 피워 세상 소풍 길에서 자신의 영혼에 잘 떨어지지 않는 상처의 딱지가 앉아 미처 살풀이도 못한 채 생의 마지막 날 보따리에 꽁꽁 싸서 가져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배신의 아픔은 우리가 그에게 반대급부를 바라고 있었음을 진작에 반증했을 것이다. 조건 없이 바람 없이 주고 바램 없이 사랑했다면 돌아서 가는 사람은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미움도 아픔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랑은 기쁨이지만 괴로움이 동반되듯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것은 한층 더 자신을 아프게 할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며 미워하는 마음은 희망 없는 아픔일 게요 희망 없는 괴로움일 것이다. 사계가 차례로 변하여 흘러가듯 마음이 변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으려니 사람이니까 변하고 배신할 수도 있으려니 구름과 강물이 흘러가니 내 마음에서 인연(因緣)이라는 미명(美名)하에 창살 없는 옥살이시켰던 그들을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어진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몫의 인생을 기록하면서 그 기록이 쌓이는 것으로 생의 어깨에 지고 갈 짐을 만들기보다는 적절히 소용없을 기억과 기록을 지우고 삭제할 줄 아는 지혜로움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리 날이 시퍼렇게 서고 잘 드는 칼로도 끈을 수 없는 이 연줄로 아파하는 대상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천륜이 매어놓은 연줄은 이승에 살아 숨 쉬는 사람과 이미 죽어 혼백이 된 저승의 사람과 통교(通交)하며 능히 교감校監)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보존하며 살아있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모습을 마주하며 직접적 대화방식을 비롯해 갖가지 통신수단과 편지 또한 기계문명의 혜택으로 이 시대의 현대인들은 우주탐험을 위해 달에 가있는 우주인들과도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하면 컴퓨터로 하는 화상채팅의 방법으로 통교하는 반면에 산 사람과 죽은 사람과의 통교 방식은 기계문명이나 과학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통교 방식은 정상적인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승의 산 사람과 저승의 죽은 혼백의 통교 방식 중에는 예지 능력을 지닌 이가 매일 밤 잠자리에서 꾸는 꿈을 통해 하는 것이 있고 지금 이 시대의 현대인들을 예를 들어 보자면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 중 깊은 신심을 지닌 이들은 기도에 침체하여 무아지경에 이르렀을 때 신()은 물론이고 죽은 사람의 혼백과의 통교할 수 있을 것이며 마음을 의지할 곳이 흔치 못했던 우리네 조상님들은 나름대로 받들어 섬길 신을 만들어 서로의 방식대로 통교를 나누곤 하였다.
그들이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