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수필 2부작
하얀 찔레꽃 제1화 봄이 오면
김철이
봄비가 잦은 요사이 춘곤증 때문인지 노곤해진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늦은 오후 한잠 자고 일어난다는 것이 세 시간을 넘겨 일어나니 왠지 모를 허전함과 외로움이 밀물처럼 밀려드는데 그 심정에 모닥불을 집히듯이 아내가 평상시에 잘 보지 않던 KBS 가요무대를 아주 편한 자세로 누워 시청하고 있을 때쯤 주옥같은 옛 가요들이 브라운관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때였다. 무명가수의 목소리에 실려 하얀 찔레꽃이라는 옛 가요가 흘러나와 못다 나눈 옛 시절을 향한 그리움과 잠시 재워둔 나의 모정을 향한 심금(
시절이 되어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성급하게 동네 앞동산으로 바구니 옆구리에 끼고 올라 이른 시절 탓에 보기 드문 찔레꽃 꽃잎 몇 잎 따서 슬하의 자식들 화전 부쳐 한입이라도 먹일 생각에 철부지 소녀처럼 한 다름에 산을 달려 내려와 치맛자락 헌 넥타이로 야무지게 묶어 올리고 저고리 소맷자락 동동 접어 올리고 한 가닥 반주도 없이 하얀 찔레꽃 가사도 청아하게 부르던 그 노래, 팍팍한 살림살이 살아내기 힘겨워 새색시일 적에 하얀 족두리 머리에 올려 시집올 무렵 그 화려했던 꿈이라도 되새김질하려는 듯이 눈시울 붉혀가며… 화전 한 조각 얻어먹으려고 턱 고이고 분주히 움직이시던 어머니 손놀림을 따라 준수했던 삼 남매의 눈 속에 어머니의 영문모를 눈물이 들어왔을 때 “엄마! 와 우노?” 하고 물어볼 양이면 “아이다, 울기는 내가 와 우노 지짐을 굽다 보이 기름기 연기가 눈에 드가 그렇제” 하시며 얼른 저고리 소매에 눈물을 씻고는 화재를 딴 곳으로 돌리시곤 하셨는데 그 나이에 어린아이가 뭘 안다고 철부지였던 나는 가끔 하얀 찔레꽃이라는 그 노래를 불러달라고 어머니를 조르며 생통맞게 그 노래에 담긴 사연을 얘기해 달라고 생떼를 썼다. 그럴 때마다 “아이고야! 우리 작가님의 궁금증이 또 발동하셨는 갑네 암! 이야기해주고 말고 대신 나중에 훌륭한 작가 돼서 이 못난 어미 가슴속에 쌓인 한풀이 꼭 해줄 거 제?” 하시며 또래의 아이들보다 체구가 작았던 나의 몸을 살며시 안아주셨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 둘째 아들이 장차 해야 할 일은 글 쓰는 작가로서 제 꼴값 제대로 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미리 예감하신 듯싶다.
어머니는 내게 하얀 찔레꽃과 같은 작가가 되기를 원하셨다. 살이 예의는 혹한을 이겨내고 때가 되면 제 모습 잊지 않고 희게 피우는 하얀 찔레꽃, 세상 온갖 더러운 바람이 불어 닥쳐도 때 묻히지 않고 제때 희게 피는 하얀 찔레꽃, 세상이 아무리 힘들게 하며 육신을 통째 흔들어 놓아도 영혼만은 절대 흔들리지 말고 때 묻지 말며 시대와 타협하지 않고 불의에 굴복하지 않은 깨끗한 영혼을 지닌 글 꾼이 되라는 말씀이셨다. 돈 세상에 돈 없이는 생명을 보존하기 어려운 존재가 사람이지만, 행길에 숱하게 버려놓아도 개도 물고가지 않은 게 돈이라며 돈에도 질이 있고 품격이 있으니 글과 돈이 관련된다 할지라도 양달의 돈인지 응달의 돈인지 잘 분석하여 대처해 나아가라는 것이었다.
인생 교훈을 곁들여 어머니께서 부쳐주시는 찔레꽃 화전은 세상 제일의 일미였다. 어머니 손맛과 함께 어우러졌던 찔레꽃의 향기는 후각을 유혹하기 손색이 없었고 밀가루와 합방한 새콤한 찔레꽃 꽃잎의 맛은 어린 동심을 충분히 매료시킬 만하였다. 어머니는 우리 삼 남매에게 찔레꽃에 얽힌 전설을 입담 걸게 직접 겪으신 체험담처럼 얘기해 주셨는데 '찔레꽃 이야기는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 우리나라의 힘이 약해서 몽골족에게 일 년에 한 번씩 예쁜 처녀를 조공으로 바쳐야만 했단다. 찔레라는 이름을 가진 예쁘고 마음씨 착한 소녀가 있었는데 그는 다른 처녀들과 함께 몽골로 끌려가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찔레는 몽골에서 그나마 착한 사람을 만나 편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찔레는 그리운 고향과 부모와 동생들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10여 년의 세월을 눈물로 보내던 어느 날 찔레를 가엾게 여긴 주인이 사람을 고려로 보내 찔레의 가족을 찾아오라고 했으나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찔레의 마음은 더더욱 아팠고 가족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짙어 몹쓸 병에 걸리고 말았다. 찔레의 병은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병이었다. 보다 못한 주인은 찔레를 고향의 가족을 만나고 오도록 허락을 했고 한 달만 있다가 돌아오라는 조건을 붙였는데 고향 집을 찾아갔지만 고향 집은 이미 불에 타 사라진 지 오래됐고 찔레는 부모님과 동생을 애타게 찾아 부르며 여기저기 산속을 헤매었지만, 가족을 만날 수 없었다. 한 달의 기한이 다 가도록 가족을 찾지 못하고 몽골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깊은 슬픔에 잠긴 찔레는 몽골로 다시 가서 가족 없이 홀로 사느니 차라리 고향 땅에서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고향 집 근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듬해 찔레가 부모와 동생을 찾아 헤매던 곳곳마다 찔레꽃이 피어났고 찔레꽃이 들판 여기저기 안 핀 곳이 없는 이유는 찔레가 그렇게 많은 곳을 가족을 찾아 헤맸기 때문이란다. 또한, 찔레의 가시는 무엇이든 잡으면 놓지 않으려고 하는데 "우리 부모, 우리 동생을 본 적이 있나요?" 하고 애타게 물어보는 찔레의 마음이 가시로 태어났기 때문이란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 전설 속 이야기를 통해 어머니는 피붙이의 소중함을 교훈으로 우리 삼 남매 가슴에 아로새겨 주셨다.
제철이 찾아오면 온 세상을 정화하려는 듯이 들녘에 어김없이 하얗게 번지듯 피어나는 하얀 찔레꽃처럼 아내는 내 글의 주제가 어머니와 유년 시절의 추억에 얽매여 있는 것이 많다며 직접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마마보이, 거꾸로 가는 전차, 라고 놀리는 것 같은 표정을 간혹 짓곤 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작가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내 영혼 속 글 밭에 많은 밑거름을 주신 이도 어머니요 비록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이어서 지난날들을 되새김질해보면 마음이 아파 가슴속 살이 절로 아려왔던 일도 많았고 기가 넘어 그저 가슴만 먹먹해 왔던 일들도 많았지만, 사람 사는 향기가 짙게 묻어났던 시간이었기에 세상 그 어떤 향수에 비교할 수 없는 향기 짙은 추억거리들이라 어머니와 추억, 이 두 가지 존재는 누가 뭐래도 내 글의 여정에 친숙한 길동무로서 역할을 다 하는 데 손색이 없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매년 봄이 오고 갖가지 꽃이 필 무렵이면 내 귓가엔 언제나 하늘 계신 어머니 청아한 음성에 실려 하얀 찔레꽃이라는 한 곡의 노래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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