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年末年始)
세밑(歲晩)이 점차 다가오면서 벽에 걸려 있는 벽걸이 달력은 벌써 송년 모임 갖가지 명칭의 연말연시 모임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 식으로 12월 한 달 동안 하루가 멀다고 술에 찌들어 살아야 한다는 적지 않은 부담감을 지닌 채 생활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더없이 바쁜 현대 생활에 찌들어 스트레스가 쌓여가는데 갖가지 모임으로 몸과 마음을 더욱더 바삐 움직여야 하니 쌓아가는 스트레스는 한층 더 가중(過重)될 것이고 연중(年中) 내내 흐트러짐 없이 이끌어 가던 생활 리듬이 쉬 허물어질 수가 있다. 이런 모습들을 드러내게 됨은 남녀노소 누구나 연초(年初)에 나름대로 계획했던 삶의 모습들이 아닐 것이다. 새해가 밝아올 무렵이면 세상 사람들은 물 위로 솟아오르는 한 해의 첫해를 바라보며 해맞이를 한다. 또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 년 동안 아무런 변함없이 제자리에서 묵묵히 제 역할만 충실하게 수행할 해돋이를 하며 조용한 독백 속에 자가결실(自家結實)을 절로 다진다. 한 해의 새로운 계획을 세우려고 나름대로 일 년 동안 실천할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삶을 새해의 연두(年頭)에 일 년 일기를 쓰는데 변하지 않는 것은 인심(人心)이 아니라는 속설을 대변해 주기라도 하듯 연초에 세운 삶의 계획대로 생활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세상 사람들 누구나 술을 마시게 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곧잘 솔직해진다. 어쩌면 우리 사람들은 그 솔직함이 좋아서 흰 눈이 소록소록 내리는 날 밤 살을 예이는 듯한 혹한도 아랑곳없이 뒷골목 포장마차의 목로에 앉아 고기 굽는 희뿌연 연기를 어깨로 넘기며 마주앉아 권커니 잦거니 술을 마시는지 모른다. 이러한 맛을 아는 이들이야말로 인생의 멋과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아닌가…?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술에 관한 동서양 성현들도 금언, 속담, 은어, 시구 등을 통해 찬반의 나름대로 술에 대한 진리와 의미를 설정해온 바 있다. 술도 분명히 사람이 먹는 음식이라 잘 먹으면 약이 되고 분별없이 잘못 먹으면 독이 되어 돌아온다. 몇 잔의 술로 해묵은 원수를 용서하게 되고 처음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점차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속설처럼 자칫 잘못 마신 몇 잔의 술 때문에 여태 쌓아온 인생의 공든 탑을 한순간 무너뜨리는 이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결코 떼놓을 수 없는 출세와 영광, 그리고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술의 미학(美學)을 다 부질없고 가벼운 넋두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술만 잘 배우고 잘 다스려도 천하를 다 얻을 수 있고 술을 배우려면 반드시 자신을 세상에 있게 해 주신 부친께 배워야 탈이 생기지 않는 법이라던 옛 어른들의 말씀처럼 예도(禮度)에 속하는 주도(酒道)를 잘 배워 행한 사람 중 성공한 인생 속에 행복을 누렸던 이도 많지만, 반면에 분별없는 음주문화 탓에 패가망신 당한 이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삼척동자(三尺童子)가 잘 알다시피 중국 당나라 때 이태백도 술 때문에 패가망신했고 유랑과 술을 방탕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객사했으며 국가원수였던 태위 교위는 술에 만취되어 죽었다. 백제의 장군 혼건은 술에 취해있다. 고구려에 패했고 재벌 석숭 역시 술 때문에 망했다. 신라 헌강왕은 적병과 싸우던 중 주연을 베풀던 포석정에서 패망했고, 우리나라 역사의 조언으로는 1593 논개(論介)에 의해 수장(水葬) 살해(殺害)를 당했다는 일본의 무장(武將) 게야무라 역시 진주성 싸움의 승리를 기념하는 잔치에서 축배의 술을 마시다 진주성을 함락시킨 적장(敵將)을 품에 안고 함께 진주 남강에 투신했던 의기(義妓) 논개에 의해 진주 촉석루에서 사무라이 무장으로써 불명예스러운 수장(水葬)을 당한 바 있다. 일찍이 성경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 것을 경고했다. 삼손 역시 주색에 빠져 영성을 잃고 헤매다 결국 스스로 무너져 망했다 한다.
초를 다투며 여유 없는 생활 속에 사는 현대인들이 날이면 날마다 받는 스트레스는 말로 어찌 다 표현하겠는가 해서 연초에 스스로 세운 일 년 계획을 제대로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시곤 한다. 세밑(歲晩)이 가까워지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송년 모임이라는 명목으로 잦은 모임과 술자리를 통해 인간사 갖은 정을 쌓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호 간에 얻고 나누는 것도 많겠지만, 때론 과다한 술자리 탓에 본인의 몸가짐을 스스로 흩트려 본의 아닌 실수로 소중한 정에 금이 가는 크나큰 오류를 범하게 되는 실례를 종종 접하곤 한다. 처음 술자리를 시작할 땐 사람이 술을 마시고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사람 본연의 자제력이 많이 줄어들면서 술이 술을 마시게 되며 나중엔 술이 사람을 마시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주위에서 종종 접한 바 있다. 아래의 사례들은 본인들이 연초에 다짐하고 굳게 결심했던 한 해의 계획표를 한순간의 빗나간 행동으로 마무리 단계의 일 년 일기장에다 먹물을 쏟아 인생의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했던 사건 사고들이다. 벽에 걸린 달력도 마른 나뭇가지에 낙엽이 지듯 몇 장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스스로 걸어온 한 해의 걸음을 되돌아보고 또다시 밝아올 한 해를 살면서 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는 하지 말자는 뜻에서 한 가지 인생의 변화하는 모습을 예를 들어 글로 옮겨본다.
서울 모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누가 들어봐도 부러워할 대기업에 취업한 S씨 연말연시 고등학교 총동창회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공교롭게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뜻에서 처가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던 날과 같은 날이었다는 것이다. S씨는 처가식구들과 고교동창들 사이에서 몇 차례 왔다갔다하다가 처가식구들이야 내 가족들이니 사정을 얘기하고 이해를 시키면 무탈할 거라 여기며 사회 출세길이 연관된 고교 총동창회를 택했는데 그날 그 길이 S씨에게 있어서 인생 출세의 길이 아니라 인생 패가망신의 길이었다. 본디 체질적으로 술이 약했던 S씨는 밤새 이어진 술좌석에 적응하지 못한 채 술에 만취되어 새벽녘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다 보니 느낌이 야릇하여 실눈을 떠보니 한 여인이 곁에 누워 있더라는 것, 연유를 알고 보니 고교 동창들 사이 더 없는 애처가로 소문이 자자했던 S씨, 고교 시절 악동으로 돌아간 동창들은 짓궂은 장난으로 S씨 부부 전선에 얼마나 강력한 고압 전류가 흐르고 있는지를 시험해보려고 다른 친구의 아내와 S씨를 나란히 눕혀놓고 휴대전화 사진을 찍어 S씨 아내의 휴대전화로 전송했다는 것, 순간 잘못 생각해낸 장난으로 시작된 이 일이 단란하고 다복했던 한 가정에 평지풍파를 일으킬 줄이야 누구 하나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의 이해심이 아무리 깊다 한들 분명히 한계가 있기 마련, 이해심 깊기로 소문난 S씨 아내 휴대전화로 전송되온 사진을 보는 순간 이십여 년 동안 믿어왔던 남편에 대한 신뢰가 한순간 무너져 내렸다. 고교 시절 악동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기로 빚어진 오해에 불과하다는 S씨 친구들의 급구 해명도 아무런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전후 사정을 얘기하며 눈물로 호소하는 S씨의 애원에도 돌아선 아내의 마음은 되돌려지지 않았다. 출세를 위해 처가가족보다 친구를 택한 것은 억지로 이해한다 치더라도 남자라면 어떻게 자신의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해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유혹과 장난기에 넘어갈 수 있느냐 이미 살아온 세상만큼이나 세상을 더 살아야 할지 모르는데 자신의 몸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남편을 어떻게 믿고 살겠느냐며 이혼을 요구해온 아내의 논리에 반론하지 못한 채 합의이혼서에 도장을 찍고 사랑하는 아내와의 이십여 년간 결혼생활의 막을 내렸다.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S씨는 끝내 아내의 그림자를 잊지 못하다 실의와 자포자기에 빠져 매사를 술에 의지하며 생활하다 젊음을 통째 던져 얻었던 직장마저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S씨는 이로써 술로 패가망신한 이들 중 한 일원이 되고 만 것이다. 한세상 사노라면 이러하게 늘려 있는 유혹에 누구라도 노출되어 있고 단 한 사람도 예외는 없다는 것이다. 연초에 쪼아 묶었던 마음속 끈을 느슨해지기 쉬운 연말 한순간 잘못 풀어 씻을 수 없는 치욕적 인생을 살아갈 요소가 도사리고 있진 않은지 세밑(歲晩)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이 시점에서 우리 자신이 걸어온 일 년의 언저리를 한번쯤은 돌아보는 게 또 다른 한 해를 살아가야 할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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