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발표작

임진년(壬辰年) 용의 해에 담아본 삶의 지표/(수필) 월간 한비문학

松竹/김철이 2014. 3. 6. 16:51

임진년(壬辰年) 용의 해에 담아본 삶의 지표

 

 신묘년(辛卯年) 토끼해를 맞아 새해 삶의 목표를 정하고 그 조임 새의 끈을 다져 묶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다가왔는지 임진년(壬辰年) 용의 해가 넌, 올 한 해 동안 어떻게 네 인생을 꾸려 나아갈 건데…?" 하고 눈앞에서 용의 눈으로 부라리는 듯하다. 게다가 2012년 올해는 60 만에 찾아오는 흑룡의 해라고 하니 왠지 모르는 중압감이 새로운 일 년을 살아내야 할 인생의 어깨를 짓눌러 한층 더 생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한편, 2012년 흑룡의 해를 맞아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흑룡처럼 그새 못다 이룬 생의 목표를 죄다 이뤄봐야지 하는 내 실적 야무진 야망을 불타오름을 느낀다. 

 늘 현실에 실존하지 않으면서도 항상 상상 속의 영물로 자리 잡아온 용은 오랜 세월 동안 동양인의 마음과 정신세계에 크나큰 상징성을 지닌 존재였다. 낡은 역사의 장을 뒤로 넘기다 보면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서도 용에 대한 숱한 설화와 전설적 요소가 함께 숨 쉬며 살아왔었고, 종교와 민속의 대상으로 숭배됐음을 한눈에 능히 느낄 수 있다. 용은 예로부터 우리나라 민족사에 문화와 사상을 풍부하고 다채롭게 꽃피운 신비의 동물이었다. 용은 12간지의 동물 중 유일하게 실재하지 않는 존재의 동물로 봉황, 기린, 거북과 함께 "4령"의 하나로 손꼽혀왔으며, 특히 마른하늘에 먹구름을 일으켜 가뭄에 단비를 내리게 하여 갈증을 해갈 시켜주는 고마운 존재로 신앙의 대상으로 전해져 왔다. 

 

 용의 형상은 오래전 중국 명나라 시절 이시진(李時珍)이 지은 본초학의 연구서,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머리에 사슴뿔같이 두 개의 뿌리에서 돋아난 여러 갈래의 뿔이 돋아 있고 몸은 뱀과 같이 길고 호랑이 같은 큰 주먹에 날카로운 여섯 개의 발톱이 돋아있다고 되어 있다. 아울러 등에는 81개의 비늘이 있어 사람이 이에 닿으면 죽게 되고, 제비 고기를 좋아하고 오색실을 싫어한다고 했다. 용이 사는 곳은 하늘과 물속이며 수컷은 바람을 등지고 울고 암컷은 바람을 안고 운다고 한다.

 

 용은 전통적으로 고귀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비유돼왔었다. 그 옛날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이라 높여 불렀고 임금이 앉는 의자를 더없이 높은 위치에 있는 자리라 하여 용상, 임금이 입었던 의복을 용포라고 한 것은 지고 지상 용의 이미지에 의탁해 국가와 인간을 보호하고자 하는 염원이라 하겠다. 아울러 용은 우리나라 토속신앙에 크고 작고 어둡고 밝은 대소 명암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변신의 능력을 지녔다고 믿었다. 한편, 조선 중종 22년(1527) 년에 발간된 훈몽자회(訓蒙字會) 최세진이 지은 한자 학습서를 인용해 보면 용의 고유어는 "미르"다. 미르의 어근은 "밀"로 물(水)과 어원이 같다. 동시에 미리(豫)의 옛말과도 관련이 있다. 용의 등장이 어떤 미래를 예시해주기 때문이다. 조선 영조 46년(1770)에 왕명에 따라 홍봉한 등이 우리나라 고금의 문물제도를 수록한 책.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를 펼쳐보면 신라 원년에서 조선 숙종 40년(1714) 사이에 무려 29차례나 나라 안 곳곳에 용이 출현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 뒤에는 거의 빠짐없이 태평성대, 성인의 탄생, 풍년 기록이 뒤따른다. 이러한 믿음이 용을 우리 겨레에게 친근한 문화 공감대로 묶어져 내려온 바 있다.

 

 이러하듯 신비롭고 우두머리의 상징인 용의 존재지만, 동, 서양이 받아들이는 용의 모습과 상징적 마음가짐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먼저 서양의 용인 드래곤(Dragon)의 발생지는 보통 메소포타미아로 추정됐다. 메소포타미아는 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문명이 발생한 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켜 세운 수메르 인들은 중국의 용보다 훨씬 오래전에 용을 상상했다. 동양의 용과 서양의 용(Dragon)은 생김새부터 다르다. 서양용인 드래곤은 거대한 도마뱀의 모습에 뿔이 달리고 목이 길며 박쥐의 날개를 달고 있고, 손발에는 예리한 발톱이 있고, 딱딱한 비늘이 달려 있다. 서양에서 용은 바닷속 암흑세계에 살면서 죽음, 죄악을 불러오는 괴물로 인식된다. 유럽 일부 나라에서는 용이 땅속에 살면서 인간의 재물을 지켜주는 성스러운 동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톨릭의 전파로 그 상징성이 점차 바뀌게 된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문화권에서 용은 항상 최고의 위엄과 권능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봉화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부석사 창건 설화에서도 용이 악당을 물리치는데 도움을 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가톨릭 성화에서는 성모마리아가 용(뱀)을 발로 밟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돼 있기도 하다.

 

 이종철 전 국립민속박물관장의 조언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명이나 인명에 쓰인 동물 가운데 용이 가장 많다."라면서 "중국의 용은 권위와 위엄에 차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 용은 정감이 가고 아기자기하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중국인이 용을 합리적으로 그리는 데 비해 우리 조상은 주관과 상상력을 동원해 정감있게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호랑이를 가까운 이웃 아저씨처럼 그리는 우리 문화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용이 복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밖에 입신출세 등 경사를 예고하는 것을 비롯하여 부귀의 상징으로 여겨진 용은 예로부터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은혜로운 일을 많이 행한 성스러운 존재로 전해져 왔다. 뭇인간 우주를 정복한 지금 이 시대에도 꿈 중의 으뜸인 꿈은 용꿈이요, "등용문"이라는 말에서 엿보이듯 용은 언제나 희망과 성취의 대상이다. 얻기만 하면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영묘한 구슬, 여의주를 긴 수염 안에 넣고 하늘을 나는 용의 모습은 웅비와 비상, 희망, 그리고 지상 최고의 권위를 상징하는 동물로 받들어져 왔다.

 

 매년 연초만 되면 익숙해져 버린 습관처럼 지난해에 못다 이룬 꿈을 재점검하여 그 꿈을 이루려 다시금 도전하는 이도 있는가 하면 새로운 인생 지표를 설정하여 매진하는 이도 있다. 임진년(壬辰年) 흑룡의 해를 맞아 실존하진 않지만, 희망과 등용문(登龍門)의 상징인 용의 존재처럼 자신을 내세우지 아니하며 내실을 다져 나아가는 인물이 많이 나서 온 국민이 태평성대를 누리며 가진 자도 덜 가진 자도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흑룡이 여의주를 물면 대성하는 사람이 된다.”라는 어느 스님의 예언에 걸맞게 임진년(壬辰年) 흑룡의 해를 맞는 전 국민의 의식이 용이 승천하듯 전 세계의 하늘을 지배하여 지구 상의 뭇 민족을 품어 안고 그 가운데 거들먹거리고 용트림하는 것이 아니라 뭇 민족의 아픔과 상처를 쓸어주는 민족성을 지어내 지녔으면 하는 바람과 큰마음을 절로 지녀 세상 어느 민족이든 감히 넘볼 수 없는 흑룡의 존재로 살아냈으면 하는 기원을 임진년 한 해 벽두(劈頭)에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