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자식들치고 부모 소중함 모르는 자 뉘 있겠느냐만, 부모님과 사별(死別)한 지 석 삼 년 아직도 부모님 살아생전 함께 생활했던 그 모습 기억 속에 살아 생생하고 부모님 모습 눈앞에 아롱대며 부모님 음성 귓전에 맴돌 건만 정작 피부로 느끼고 품어 안을 부모님의 육신은 흔적이 없으니 휑한 심정 가눌 길이 없다.
부모님 영전에 시묘(侍墓)살이 삶을 열두 번 더 살아도 부모님 내게 주신 사랑과 은혜에 천만분의 일도 못 갚거늘 하루 삼시 세 끼니 따슨 밥에 찬이 맛이 있니 없니 실없는 투정을 일삼고 조금 추우면 춥다. 조금 더우면 덥다. 무엇이 그리도 부족한 것인지 게다, 제 부모님 혼이라도 밤이슬 맞지는 않으실까 한 마디 걱정 않고 제 육신 편히 잘 잠자리만 걱정하는 이 불효자식,
옛말에 부모님 돌아가시면 땅에다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더니 천명을 다하시고 가신 부모님을 생각해도 살아생전 이 못난 자식 탓에 갖은 고생 다 하시던 그 모습 눈앞에 아롱거려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 부모님은 젊은 시절 금쪽같은 자식 둘을 낳아 제대로 정 한번 주지 못한 채 잃었으니, 그 심정 어이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처참한 느낌이 아니셨겠는가…
아버지는 남자라 견디고 참을 수 있다손치더라도 특히 자손이 귀한 가문(家門)으로 시집오셔서 어린 나이에 귀하디귀한 아들 둘을 낳았으나, 땅의 뉘이면 꺼질세라 안고 있으면 행여 부서질세라 불면 놀라 날아갈세라 큰 소리로 기침 한번 못하시며 손자 자식 그리도 귀히 여기시던 할아버지 탓에 아들자식이 좋아도 좋다는 표현 한마디 못하며 귀한 자식 고추 한번 제대로 만져보지 못한 채 등불의 이슬처럼 하루아침에 허무하게 보내야만 했었던 어머니의 그때의 그 심정을 부모님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는 지금에서야 조금 이해할 것만 같다. 철들자 망년 난다는 속언도 있듯이 머리엔 서리가 내리고 얼굴엔 세상 풍상에 곰삭아 피는 저승 꽃 필 무렵에서야 태산(泰山)보다 높고 어느 심해(深海)보다 깊으신 부모님의 은공(恩功)을 이제서야 깨닫다니 미련한 게 인간이라 한심하기 그지없다. 부모님께 효도하려 해도 부모님 기다려 주시지 않더라 라는 말을 잠시 잊었던 게야.
조실부모(早失父母)하신 것이나 다름없는 아버지께서 살아생전 먹고사느라 바빴고 인생 즐겨 노느라 기회를 줬으나 그 소중한 기회를 놓쳐버려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던 데 대하여 가슴 치며 후회하신다는 뜻으로 자녀를 훈도하실 기회 때마다 입이 닿도록 일러주셨고 어머니께서 습관처럼 삼 남매 귓전에 못 딱지가 앉도록 복습해 주셨던 교훈이었는데 부모가 자식들을 생각하는 만큼 자식은 부모님을 애틋하게 생각지 않는다는 뜻이 담긴 말씀이셨다.
슬하에 열 자식을 두었다고 하여도 한 부모의 자식을 아끼고 생각하는 큰 마음과 은공을 헤아릴 길이 없을 것이라 하셨는데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하니 그 말씀이 천만 번 옳았던 교훈이었으며 세상 모든 자식이 다른 모든 교훈이야 헌 고무신으로 엿을 바꿔먹듯 흘려버린다 할지라도 이 교훈만은 다른 이에게 말로써 마음에 큰 상처를 받으면 잘 잊혀지지 않는 것처럼 가슴팍에 언제까지나 아로새겨야 할 큰 교훈이 아닌가 싶다.
이 크옵신 교훈 가슴에 새기고 이 세상 모든 자식과 이 교훈을 공유하고 싶은 심정에서 부모님들의 은공을 다 갚기엔 턱없이 모자라고 미흡하겠지만, 부모님들의 은공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열 가지 부모은공헌장(父母恩功憲章)을 만천하에 재정 공포(公布)하며 이 헌장을 이 땅 위에 자식 된 처지에 있는 모든 이와 다 함께 공유했으면 한다.
첫 번째: 나를 잉태하시고 한 몸이 두 몸이 되었으니 열 달이란 절대 짧지 않은 세월동안 태중고통(胎中苦痛)도 그리 만만치 않았을 텐데 먹고 싶고 하고 싶은 욕망 한순간에 다 물리치고 단 일각(一刻)도 소홀함 없이 늘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신 그 은공(恩功) 영혼 속에 새겨 간직하기를…
두 번째: 나를 낳으시며 하늘이 무너지고 태산이 갈라지는 힘겨운 출산의 고통과의 목숨을 건 사전(死戰)속에서도 행여 태중 아기 잘못될까 노심초사(勞心焦思)하시며 사대육신(四大六身)의 뼈마디 하나하나 다 으스러지셨던 내 어머니 출산 고통의 은공(恩功)을 삶의 고충이 따를 때마다 되새김질하기를…
세 번째: 나를 슬하의 자식으로 낳아 자식을 얻었다는 기쁨에 넘쳐 모든 근심조차 잊은 채 금지옥엽 바람이 불면 꺼질세라 작은 소리에도 터질세라 촉각(觸覺)을 곤두세워 낮이나 밤이나 한결같은 정성 쏟으시며 열성으로 키워주신 그 은공(恩功) 늘 잊지 않고 가슴 한가운데 성을 다해 담아두기를…
네 번째: 나를 품속에 둘도 없는 자식이라 여기시고 입에 쓴 것들은 부모님 당신들이 하나 남김없이 삼키고는 밝은 표정 잃지 않으시고 입에 단 것들은 하나같이 다 뱉어서 먹여주시며 쓰디쓴 익모초를 드신 듯 인간 본능조차 잊으려 하셨던 그 은공(恩功)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지라도 늘 잊지 않고 고개 숙여 감사하기를…
다섯째: 나를 세상에 하나뿐인 자식이라 끔찍이도 아끼시며 진자리 값진 융단이라도 된 양 부모님 당신들 누우시고 마른자리 거린들 너덜너덜 다 해진 누더기 취급하며 자식을 가려 누여주셨던 그 은공(恩功) 추울 때나 더울 때나 잊지 말고 상기(想起)하기를…
여섯째: 나를 품속에 쓸어안고 자식으로 젖 물려 키우시던 날 갖은 좋은것 다 드시며 그 영양분 젖줄을 통해 젖 빠는 자식의 오장육부(五臟六腑) 속으로 모두 다 흘러들어 가길 소망하셨던 그 하늘 같고 태산 같은 사랑으로 길러주시는 은공(恩功) 영원불멸(永遠不滅) 잊지 말고 후손들 유산으로 물려주기를…
일곱째: 나를 천하에 둘도 없는 자식이라 만천하에 공개하며 힘든 일은 자청(自請)하고 고된 일은 즐기니 손과 발이 다 해진 누더기나 부모님 당신들 마음은 천국이라 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영과 육을 씻어주신 그 은공(恩功) 차마 잊을 길 없어 눈물로 되돌아 보기를…
여덟째: 나를 마냥 어린 아이 취급하며 구순(九旬)의 어머니 칠순(七旬)의 아들을 걱정하시듯 만단수심(萬端愁心) 무거운 짐 내려놓지 못하고 장정(壯丁) 같은 자식들 먼 길 떠날 때 늘 걱정하시며 생각만은 천 리 길도 만 리 길도 마다치 않고 동행하여 주셨던 그 은공(恩功) 저승에 간들 잊으면 불효자라 항상 가슴에 묻어 동행하기를…
아홉째: 나를 슬하의 자식으로 두었으니 세상 풍상(世上風霜) 다 겪으며 살다가 행여 자식이 죄를 지을 양이면 세상 모든 허물은 부모님 당신들 것이 되어야 하고 천하에 둘도 없을 칭송(稱頌) 꺼리는 모두 자식들 목으로 돌리며 자식들을 위해 나쁜 일까지 서슴지 않으시는 그 크신 은공(恩功) 평생 등창에 업고 살기를…
열 번째: 나를 천륜(天倫)의 자식으로 받아들였으니 하늘이 내려주신 부모의 도리(道理)와 의무(義務)를 다 하려 못 나도 내 자식이요, 잘나도 내 자식이라 세상 끝날까지 자식들 향한 봉사정신으로 천하의 불효막심(不孝莫甚)한 자식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책임지고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시는 하늘 같은 그 은공(恩功) 지옥에 떨어진들 잊을쏘냐 멍에처럼 양 어깨 늘 지고 가기를…
이 헌장을 평생 되새김질하며 부모님 천수를 다 누리시고 세상을 떠나시면 땅에다 묻지만, 자식이 세상에 태어나 천명을 다 누리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면 부모님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이 말의 뜻은 아무리 천하에 둘도 없는 효자, 효녀라고 해도 부모님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부모님께서 슬하의 자식들을 생각하는 부정(父情)과 모정(母情), 그리고 자녀들에게 향한 애틋하고 끔찍하기까지 하며 세상천지에 어느 태산(泰山)보다 높고 어느 심해(深海)보다 깊으신 부모님 천심에 비하면 천 배 만 배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부모님들이야 자식의 묘를 가슴에 쓴다고 했지만, 나는 오십 평생 다 하지 못한 천하의 불효를 눈곱만큼이라도 씻을 수 있다면, 그리고 부모님 세상을 떠나신지 석 삼 년 지금에 와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얄밉고 부끄럽기 그지없으나, 부모님 살아생전 불효밖에 드리지 못했던 영혼의 짐을 조금이라도 벗어버리려 이미 삼 년 전 돌아가신 부모님을 되살려서 다시금 부모님 시신을 내 영혼에 묻고, 부모님 늘 방금 돌아가신 걸로 여기고 내 세상에 살아생전 혼자만의 초혼제(招魂祭)를 지내며 영혼의 시묘(侍墓)살이를 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