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수필

마른잎

松竹/김철이 2011. 7. 6. 11:20

마른 잎이란 동지섣달 길고 긴 추운 시절을 지낸 크고 작은 나무들이 꽃 피고 새우는 춘삼월 호시절이 오면 제각기 새잎을 내어 나름대로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며 푸른 꿈을 키워가며 세상 인간들에게 대자연의 원리와 신비로움을 반복하여 가르쳐 주다가 시절이 한 해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기 시작할 때쯤이면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르고 물이 올라 마치 기름을 발라놓은 듯 윤기가 흐르던 나뭇잎들은 점차 윤기를 잃고 푸르기만 했던 표면이 갈색과 검붉은 색으로 변해가다 마침내 가을의 끝자락에 와서는 하나 둘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바람 부는 대로 땅에 뒹굴다 무감각하고 무신경하게 뭇 인간들의 발끝의 채이고 밟히다가 잘 돼봐야 나무 밑에 떨어져 한 줌도 채 안 되는 토양으로 돌아갈 것이고 아니면 길거리의 천덕꾸러기로 뒹굴다 끝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소각되기가 일수인 것이 나뭇잎이며 나뭇잎의 운명이다. 물론 사철나무의 잎들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사계 중 일부분인 이 자연현상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되새김질해야 할 것이다. 이 글귀의 뜻은 마른 잎이란 단어가 한낱 식물에 불과한 나뭇잎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넓게 잡아 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사 모든 삶의 모습을 조금만 세심하게 관찰하고 생각해 본다면 사람들의 갖가지 삶의 형태와 표정에서 마른 잎의 희생적인 토양을 능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계층의 구분없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간사 타고난 본디 삶의 운명에서 마른 잎의 운명과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들의 운명이 동등함을 어렵지 않게 느끼고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마른 잎 운명의 원리를 자식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라면 하루하루 일상생활을 하면서 한층 더 쉽게 접하고 매 순간 깨달을 수 있을 것이고 마른 잎의 운명적 원리를 가슴으로 깨닫는 자라면 자신이 마치 꽃다운 부모님의 인생과 청춘을 송두리째 갈아먹고 자란 기생충 같은 생각이 들어 부모님께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에 가슴을 치며 몸부림칠 것이다.

 

 아무리 위세(威勢)가 높고 권세(權勢) 높은 위치에 있는 자라 할지라도 맹호(猛虎)처럼 용맹(勇猛)스럽고 뛰어난 지략(智略)을 지닌 자라 할지라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시간이자 세월이고 먹고 싶지 않아도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이 나이이다. 마른 잎의 부모이자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나무도 고목이 되면 나이테가 생기듯 사람도 마찬가지일 게다.

 

 죄 많은 것이 인생살이인지라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지니고 태어난다는 원죄로 말미암아 한평생을 살면서 아무리 청렴결백(淸廉潔白)한 선비정신으로 살았다 할지라도 죽어 내세에 행복한 삶을 누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굳이 종교적 용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예부터 연세 높은 어르신들이 넋두리 삼아 하셨던 말씀을 더듬어 보면 [내 무슨 죄가 커 이 세상에 생겨나 이런 고초를 겪는가?] [너는 무슨 죄가 커 이다지도 못난 부모를 만나 남이 하지 않는 갖은 고생을 다 하는가?] [우리 부부는 무슨 죄가 커 원수의 연인 부부로 만나 이렇게 아옹다옹하며 살아야 하는가?] 등 갖은 푸념 속에서 드러나듯 인생살이 그 자체가 죄를 짓지 않고는 살아낼 수가 없을 것이다.

 

 흔히들 말하듯 인생 백 년이라곤 하지만, 인생 백 년을 산다는 것이 그리 쉽고 아무나 인생 백 년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성공한 인생인지 아닌지는 먼 훗날 하늘이 판단할 일이기에 성공 여부를 떠나서 별다른 탈 없이 인생 팔십 년만 살아서도 천수를 다 누렸다고 할 수 있고 반 인생은 성공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한 인생이 한평생을 살다 보면 갖은 희로애락을 겪게 되는데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자신이 늙어가는 줄도 모르는 사이 곧은 허리는 굽고 팽팽했던 얼굴엔 주름이 지고 홍어처럼 곰삭아 피는 저승 꽃도 절로 핀다. 이 모든 원리가 인생의 마른 잎이자 나이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설날 미사에서 내가 소속된 성당 신부님의 강론에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귀감이 되고 남을만한 말귀가 있었기에 인용하는 바다. 어느 한 사람은 명절만 다가오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롭고 돌아가신 부모님 영전에 고개를 들 수 없다고 하더라 라는 서두(序頭)로 시작된 강론은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가슴엔 소금을 뿌려놓은 듯 쓰리고 아파서 눈물조차 흘릴 수가 없었다. 이야기 내용인즉슨 한 남자는 어린 시절의 불우했던 가정환경이 죽을 만큼 싫었고 재래 시장 난전에서 나물장수를 하는 어머니가 지독히도 보기 싫고 부끄러워 자신의 성공한 인생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에 불을 켠 채 공부했으며 그 덕에 만인이 동경(憧憬)하고 우러러보는 일류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어머니가 나물장수 해서 보내주는 학자금으로 무사히 졸업하고 암 전문의가 되었으며 교제하던 아가씨와 결혼도 하였고 처가에서 병원을 차려주니 꿈에도 그리던 자신의 병원을 갖게 된 것이란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늦게 퇴근을 하여 자신의 집 대문 앞에서 자기네 가정부와 허름한 옷차림의 한 노파가 다투는 모습을 목격하고 천천히 다가갈수록 노파의 모습이 눈에 많이 익더라는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본 노파는 다름 아닌 자신의 어머니였다는 것이었다. 환한 표정으로 반가이 다가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얼굴이 많이 좋아졌구나. 네가 좋아 보이니 기쁘기 그지없구나.” 순간, 어머니가 왜 그리도 초라하게 느껴지고 가정부 보기에 부끄러운 생각에 “할머니! 사람을 잘못 보신 듯싶습니다.”라는 한마디 말에 두 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신 채 어깨에 힘없이 돌아서 휘청거리며 돌아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일말의 가책을 느꼈으나 바쁜 일상생활에 잊고 살았다 한다.

 

 그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어머니와 이웃하고 계신 한 아저씨에게서 어머니께서 세상을 뜨셨다는 부고(訃告)를 받고 고향으로 혼자 내려가니 상문(相門)하는 사람 한 사람 없이 부고(訃告)를 띄웠던 그 아저씨 홀로 외롭게 어머니 영정(影幀)을 지키고 계시더라는 것인데, 어릴 적 찌든 가난 속에 사셨던 어머니를 원망하며 어머니 영정을 올려다보고 있을 쫌에 아저씨께선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무엇인가 고심(苦心)하시던 사실을 털어놓으셨단다.

 

 그 아저씨 말씀을 듣자니 사실인즉슨 남자의 어린 시절 너무 어려 세상물정 모를 적에 누군가 갔다 버려 아무도 돌보지 않던 한 아이를 슬하에 자식이 없었던 남자의 부모님이 데려다 금지옥엽(金枝玉葉) 키웠으며 넉넉지 못했던 살림살이이라 부모는 자신들이 먼 훗날 아들의 장래에 마른 잎이 되고자 험한 일 고된 일 가리지 않고 공사장에서 함께 일을 하셨는데 부모가 맞벌이해야 하니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위험을 무릅쓰고 아들을 데리고 일터로 나갈 수밖에 그러던 어느 날 공사장에 쌓아놓았던 벽돌 더미가 아들을 향해 덮치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곁에 계시던 어머니가 아들을 구하려 벽돌 더미 밑으로 뛰어드는 순간 동시에 아버지 역시 아들과 아내를 구하기 위해 벽돌 더미 밑으로 뛰어드셨고 불의의 이 사고로 아버지는 목숨을 잃었으며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잃으셨단다.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슬픔조차 챙길 사이 없이 아들과 먹고살아야 했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시장바닥에서 나물을 파셨다고 하는데 아들이 점차 철이 들면서 어머니의 이런 모습과 가난을 원망하며 부끄러워했다는 것이다. 그 후 아들은 어머니가 시장바닥에서 나물을 팔아 뒷바라지해주신 덕에 국내에서 손꼽는 일류 대학 의대에 입학하였고 암 전문의가 되었다는 소식에 어머니는 뛸 듯이 기뻐하셨다 한다.

 

 모질고 질긴 것이 사람 생명이라 그 험난한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의연하셨던 어머니, 끝내 모진 세상 풍파에 철퇴를 맞고 병마에 자유를 잃어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고 그 엄청난 사실을 홀로 간직하다 마지막으로 암 전문의가 되어 명성을 떨치는 아들을 찾아 다녀오시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세상과 하직하셨다는 것이다.

 

 아들이 어릴 적 이웃 주민들은 한결같이 “남의 자식 키워봐야 아무런 소용없다.” “차라리 짐승을 거두면 은혜를 갚는다지만, 머리 검은 짐승 거둬봐야 악문밖에 더 하겠느냐 정들기 전에 고아원이라도 갔다 맡겨라.”라는 등 무수히 들려오는 뭇소리들을 일축하고 오로지 아들을 위해서 사셨다는 말씀이셨다. 그다지도 금자동아 은자 동아 귀하게 길러놓은 아들자식이 암 전문의 명성을 떨쳤건만 내장 속에 암 덩어리를 부여안고 아들을 찾아갔으나 평생을 희생했던 자식의 손에 진찰 한번 받아보기는커녕 마지막으로 찾아갔던 아들에게 외면을 당해야 했던 그 심정 어이 말로 다 하겠는가, 아버지의 목숨과 어머니의 한쪽 다리를 판 돈으로 공부하여 출세하고 명성을 얻어놓고도 자신을 길러주신 어머니 몸에 청진기 한번 갔다 대보지 못하였으니, 금수(禽獸)만도 못한 이런 삶이 어디에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신부님의 강론은 이어가는 동안 성전 내 앉아있던 교우들의 모든 마음을 숙연케 했던바 있다. 또한, 강론을 무사히 마친 신부님께선 참으셨던 눈물을 훔치시느라 잠시 말씀을 잊지 못하셨다.

 

 그 천하의 불효자이자 패륜아인 그 아들과 처지는 다르지만, 나 역시 돌아가신 부모님께 효도 한번 못해보고 불효만 했음을 자책(自責)하며 명절이 다가오면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이 새록새록 그립다 못해 가슴이 저림을 숨길 수 없다. 효도 받으실 부모님은 결코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는 교훈만이 늘 가슴속에 머물러 되새김질하지만, 내겐 효도할 양친(兩親)이 계시지 않음을 때때로 잊어버린 채 부모님 인생의 마른 잎과 나이테를 닮으려 애써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동안 또 한 해의 설날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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