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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 | 권위가 있는 말엔 항상 이것이 섞여 있다 | 연중 제1주간 화요일, 2025 01 14

松竹/김철이 2025. 1. 14. 07:00

[권위가 있는 말엔 항상 이것이 섞여 있다] 연중 제1주간 화요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5 01 14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T9pjf5heuIQ

 

 

 

2025년 다해 연중 제1주간 화요일 – 권위가 있는 말엔 항상 이것이 섞여 있다

첫 어부들을 제자로 뽑으신 예수님은 이제 본격적으로 사람 낚는 일을 시작하십니다. 그 일을 시작하시며 오늘 복음에서 강조하는 것은 ‘권위 있는 가르침’입니다. 
복음 전파자의 권위는 ‘성령’입니다. 성령만이 악령을 쫓아낼 힘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회당에 있던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쫓아내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라며 놀라워합니다.
권위 있는 가르침과 악령을 쫓아내시는 것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가르침은 말로 하는 것이고 악령은 성령으로 쫓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말에 성령의 힘이 더해지면 사람에게서 악령이 떠나가게 되는데 그런 가르침이라야 권위가 있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권위가 없는 가르침은 어떤 것일까요? 금쪽같은 내 새끼와 같은 프로에 보면 아이들은 부모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문제라고만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요? 부모의 말에 왜 권위가 사라졌는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시고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시며 당신 자신과 싸우셨습니다. 성령이 말의 권위인데, 이 성령은 필연적으로 자기가 자기 자신을 이기게 합니다. 이때 흐르는 피가 말과 섞을 때야 말에 권위가 생기는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한 젊은 스님이 수박을 사러 5일장에 들렀습니다. 완벽하게 익은 수박을 조심스럽게 골라 값을 지불한 스님은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치고 가서 수박이 땅에 떨어져 조각조각 부서졌습니다.
“이보시오! 남의 수박을 깨뜨린 뒤 어떻게 그냥 가버릴 수가 있어요?” 
스님이 소리쳤습니다. 백발의 노부인이 뒤를 돌아 스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중이라면 정신을 차려야지. 이 정도도 못 참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가르침과도 같은 여인의 말은 스님의 뒤통수를 강타한 것 같았습니다. 
“보살님, 어디 사십니까?” 스님이 호기심에 물었습니다. “내가 어디 사는지 뭐가 중요하냐? 중요한 건 네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다.” 
스님은 그녀를 따라가고 싶은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습니다. 잠시 후, 노파는 막걸리를 파는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남 따라다닐 시간에 네 갈 길이나 가라.” 노파가 말했습니다. 스님은 그 말에 깜짝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지금껏 남을 따라다니기만 했구나.” 노파의 말은 계속해서 가르침처럼 느껴졌습니다. 
스님은 “부인, 당신은 매우 현명해 보이는군요. 무엇을 공부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여자는 “지혜는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23살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대학에 보내기 위해 갖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군에 입대하고….”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그의 부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뢰를 밟고 죽었다고 하더군요.” 그녀는 계속해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 사람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 후로 눈물이 멈출 수가 없었어요. 먹고 자고 상관없어요. 저는 몇 년 동안 슬픔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스님은 그녀의 말속에 담긴 깊은 고통을 깨닫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어느 날 지붕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어요. 떨어지는 것을 보다 보니 충격을 받았습니다. 물방울이 냇물이 되어 냇물이 바다가 됩니다. 바다가 다시 구름이 되고 물방울이 되죠. 삶과 죽음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돌아옵니다. 그 근원으로. 이것을 느끼고는 슬픔을 멈출 수가 있었습니다.”

노파의 말에 권위가 있었던 이유는 노파의 말은 곧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노파는 자기 자신을 이긴 사람입니다. 그 안에 성령께서 계신 것이고 그 성령이 한마디, 한마디에 그 사람의 피를 섞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예사로 들리지 않습니다. 나의 삶을 변화시키지 않은 말들은 내가 아무리 되풀이해도 힘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한테서 들으신 말씀으로 당신을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러니 말씀에 힘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자신을 이긴 사람의 말엔 권위가 있습니다. 자신도 이기지 못한 말은 권위가 없습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고 해도 그렇습니다. 잔소리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 가장 권위 있는 말은 어디서 하신 말씀일까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실 때, 그리고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들입니다. 자기를 이기신 말씀. 이 말씀을 듣는 이들은 변합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의 말에 피를 섞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영향력 있는 말을 하고 싶거든 매일 성령을 자기를 이기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합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하면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