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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1203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12. 3. 07:54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1203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rrD_lpGXjR4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오늘 복음을 읽으며 배경으로 소개된 예수님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본문을 읽지 않고도 우리에게 주님이 즐거워하시는 모습이 그리 흔하지 않기에 이 부분에 한참을 머물러 생각합니다. 무엇이 주님을 그처럼 즐겁게 만들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 후 주님이 아버지께 드린 기도 안에서 그 내용을 알게 됩니다.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은 우리가 처음부터 이해 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이해한다는 것이 말이 안되는 일이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는 늘 그 어려운 하느님을 누군가가 가르쳐주기를 바라기도 하고 그것에 익숙하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설명하고 이끌어주는 방식 그대로 하느님을 받아들이는데 적응된 우리는 우리 스스로는 단 한발도 주님께 다가가지 못한다는 한계를 느끼곤 합니다. 그런데 이 한계가 이미 예수님을 통해 깨어졌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이끌었던 이들에게 이런 말씀을 먼저 하셨습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분을 인정하지 못했던 지혜와 슬기의 주인공들은 주님의 처지와 그분이 계신 곳, 그리고 삶을 통해 그분을 평가했습니다. 하느님을 말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데 그분의 자리와 사람들이 ‘격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작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자리에는 그들의 ‘높은 지식과 품위’의 의심이 가득했고, 주님을 떠보려는 불신의 질문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주님의 말씀의 가치가 무게가 있을리 없었고, 무식하고 약한 이들에게 헛된 희망을 품는 떠돌이 설교가 정도로 치부했습니다. 진리가 길과 사람들에게 넘쳤지만 지혜와 슬기로운 이들은 자신들이 그 위에 있다고 묻어버리고 무시했습니다. 그 사이 하느님 구원의 기준은 한없이 낮은 이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하느님에 대한 진리는 다시 어려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철부지들이 듣던 주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은 아무나 읽어도 알 수 없는 것처럼 바뀌어 버렸고 누구나 하늘나라를 꿈꿀 수 있었던 그 세상은 누구도 천국을 기쁘게 꿈꿀 수 없는 잔인한 성벽으로 가로막힌 하늘을 보지 못하는 곳처럼 바뀌어 버렸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쉬운 것을 어렵게 만드는 재주를 부린 이들은 누구입니까? 새해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열린 하늘나라를 다시 닫아버린 우리가 정당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주님의 이 감탄사는 이제 더는 가능하지 않은 것일까요?



0:00  오늘의 복음
1:33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