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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922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9. 22. 07:42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922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Suz3m3jErzI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25주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세상에 오신 하느님. 우리 안에 사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보시고 들으셨던 예수님이 얼마나 세상에 실망하셨을까 생각해보면 언제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하느님의 뜻을 기쁘게 받아들이신 예수님이시기에 그분에게서 심판의 모습은 볼 수가 없고 오히려 주님은 당신의 목숨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시며 세상의 진실을 드러내시고 하느님의 뜻을 바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그 구원의 과정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 속에도 제자들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예수님의 말씀을 먼저 소개하는 복음을 생각하면 이 제자들의 다툼은 더욱 그 질이 나빠보입니다. 그들이 싸운 주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였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베드로’라는 이름을 내세울 이야기가 아니라 나쁘게 생각하면 스승은 당신의 죽음을 생각하는데 그들은 그러면 ‘그 다음 대장은 누군가?’를 생각했다는 이야기이고, 그렇게 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딱한’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세상 사는 게 다 그런거다라고 말할테지만 주님이 여전히 그들을 지켜주신 것이 그것을 두둔한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주님은 당신의 앞날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필요한 가르침으로 말씀을 바꾸십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가르침을 이해하면서도 정작 당신의 죽음이 세상에서 첫째라고 생각하는 이들에 의해 저질러졌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은 모든 이의 첫째로 군림하며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그리스도를 막고자 십자가에 그분을 희생시켰습니다. ‘본보기’가 되게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가장 처음, 곧 첫째가 되셨습니다. 늘 그렇듯 예수님의 가르침에 첫 자리는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을 남겨진 제자들 중 누가 종처럼 살았는가 이전에 주님이 그렇게 하셨음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어린이를 통해 그것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제자들이 생각한 첫째가 주님의 자리라면 주님은 이 어린이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알려주십니다. 이 때도 주님은 어린이를 껴안으십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참 ‘첫째’의 모습입니다. 잘난 점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서 존중하고 함께 하려 하는 이가 하느님이 원하시는 첫째의 모습이고, 또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물어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중 첫째는 누구입니까? 누구의 품에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이 안겨있습니까? 그것이 구별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그가 종과 같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의 업적이나 자격, 심지어 돈까지도 첫째의 요소는 아닙니다. 



0:00 오늘의 복음
1:57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