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827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kIPhg8bmTqI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성녀 모니카 기념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현실’이라는 단어는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상황을 말하는 것이고 또 늘 움직이고 변화하는 시간의 소용돌이 안에 사람이 놓여 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현실이라는 단어는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가장 적절한 변명을 제공하고 근본까지 부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기도 합니다. 하느님 혹은 삶의 근본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은 혼란한 사람의 상태로 이어지는 말이 되곤 합니다. 그러나 이 조차도 변화시킬만큼 큰 힘을 가지는 것이 현실이라는 말입니다.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예전 우리에게 경계의 대상처럼 여려지던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는 지금의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기주의와 다른 것으로 여겨지던 개인주의는 무관심 속의 이기주의로 변화했고, 물질만능주의는 ‘돈’이라는 개념 속에 사람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도 이 부분은 절대가치처럼 바뀌었습니다. 하느님 말씀은 그대로지만 사람들은 하느님을 통해서 이 부유함을 가지는 것을 신앙의 은총인 것처럼 여기곤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바치고 되돌려 몇 배의 가치로 돌려 받는 것이 정해진 규칙처럼 여길 때도 있습니다. 사람의 모든 삶이 하느님에게서 왔음을 잊지 않고 감사함을 돌려드리는 ‘십일조’의 전통도 이제는 지켜야 하는 ‘의무’이고 근본은 사라진 듯 느껴집니다. 오늘 예수님은 이런 위험하고 불안한 변화가 이미 2천 년 전부터 존재했음을 알려주십니다.
“눈먼 인도자들아!”
가진 재물 중 물질적인 것으로 십일조를 바치며 자신들은 의인이며 최상의 신앙생활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는 생각하지 않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주님은 위선자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이 가려졌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을 인도자라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서 하느님을 배우고 선악의 기준을 알게 되는 백성들이니 그들로부터 모든 것이 뒤틀릴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들에게서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하느님께 향한 길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모두의 삶이 향할 수 있음을 예고합니다.
그런데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현실’이라 불리는 그때의 상황이었습니다. 불안한 이스라엘. 식민지로 생활하는 이들 그나마 얻은 신앙의 자유 속 지도자들의 판단은 하느님이 아니었고 자신들의 안락한 삶을 위해 자신의 신분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곧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어떤 현실에도 말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1:32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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