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618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ROQzAWTkUoE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하느님을 믿는 우리지만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또 열심히 살아야하기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세상의 일원이고 그 점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아는 이로서 고유한 자격과 위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모르고 세상의 지식과 자신의 지혜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긴 하지만 그들과 함께 사는 것에서 우리의 신앙은 그들과 결코 ‘별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믿음과 삶의 자리는 늘 그 자리이기에 우리의 모습을 둘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
예수님으로부터 새롭게 풀이되는 이 옛 문구를 이 세상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달라진 것이 있다면 원수의 개념에 분노하기 보다 자신을 위해 그가 누구든 원수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곧 자신이 아니면 심각하게는 가족도 원수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웃이 사라지고 나를 기준으로 원수가 될 것인가의 고민을 하는 정도로 나빠진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의 가치를 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저마다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은 남들과 경쟁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아는 이의 삶이란 삶의 진리를 알고 사람의 존재와 삶의 이치를 아는 사람과 그것을 모른채 살아가는 이들과의 구별되는 지점을 말합니다. 곧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순서가 틀려 있음을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있음을 자신 스스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선택한 사랑의 크기를 두고 하느님께 또 사람들에게 내세우는 것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하느님을 말하며 비웃고 조롱하며 상대적인 가치로 자신들의 우월함을 자랑하는 이들에게 이 말씀은 아주 무거운 지적입니다. 율법학자들에게는 죄인이, 바리사이에게는 세리가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모욕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사실 그러하다면 당장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불리던 그들부터 달라져야 할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 하느님을 알고 사람을 안다는 것은 비교가 아닌 바로된 길을 걷는 것입니다. 곧 불가능한 한계의 차이를 보이는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의 완전하심을 우리가 닮았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고 주님의 뒤를 따라야 하겠습니다.
0:00 오늘의 복음
1:31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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