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601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2ox_sRyHIkM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사람들은 사회를 이루고 삽니다. 둘 이상의 사람이 어떤 관계로든 함께 하는 작은 사회나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규칙을 두고 살아가는 큰 규모의 사회에까지 우리에게 사회생활은 익숙합니다. 그런데 이 사회의 구성원이 어느 정도되면 우리는 그 속에서 질서를 세우고 사람들은 자연스레 구분이나 구별을 넘어 다름이 아닌 차별이 되는 관계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격이나 권한이라는 부분이 등장합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라고 말하고 평등한 사랑을 말하는 우리에게도 이 부분은 늘 따라다니는 부분입니다. 구별을 넘어 자격을 논하고 권한으로 사람을 보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무서운 말도 서슴없이 하는 우리입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와서”
복음을 읽는 우리는 늘 우리 주님이 가장 높은 분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복음 현장 속의 주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오늘 주님께 질문을 던지는 이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입니다. 이후 주님을 십자가에 몰아세운 장본인들이자 그 사회의 어른들의 역할을 하는 자격을 갖춘 권한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주님께 묻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하느님을 말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데 자격이나 권한이 필요할까요? 수석 사제들, 율법 학자들, 원로들은 각자 맡은 역할이 있습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필요 부분을 담당하고 있고 그들 고유의 특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을 말하고 하느님의 뜻을 말하는데 자격이나 권한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자녀이고 당시에도 모두가 하느님의 백성임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태도는 주님이 당신 ‘주제를 넘은’ 행동을 한다고 여기는 모습입니다. 자신들만이 말할 수 있고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위’를 내세우고, 설명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닌 분을 공격하는 중입니다.
“모르겠소.”
주님이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집니다. 그들 중 일부도 존경하는 이의 이름이 등장했고, 그들과 관계가 없으나 딱히 예수님과 다르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이 앞에 그들은 “모르겠다”라고 그의 이야기의 가치를 표현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한 하느님 백성의 대표들의 비겁하고 옹졸한 모습을 보면서 ‘그 자리도 어떤 사람에게서 시작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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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