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변화
저는 가끔 노래의 멜로디는 기억하는데 가사가 통 기 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그냥 제멋대로 가사를 바꾸어 노래 부르곤 합니다. “안녕 귀여운 내 친구 야 멀리 뱃고동이 울리면 네가 안아 주렴.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멀리 멀리 왔다고.” 가수 김창완님의 노래 가사입 니다. 얼핏 보면 맞는 것 같지만 원래의 가사와는 많이 다 릅니다.
“아무도 모르게 모두가 잠든 밤에 혼자서, 울면서 멀리 멀리 갔다고.”로 표현된 원래의 가사는 슬픈 이별과 떠나 감을 이야기하지만, 몇 개의 바뀐 단어 때문에 따듯한 포 옹으로, 멀리서 온 친구를 맞이하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변합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할 이야기는 이렇게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변화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글씨를 종이에 쓰고 돌에 새기는 캘리그라피 작 가이자 새김 예술(전각) 작가입니다.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평범한 직장 생활을 했던 저는 최근 몇 년 사이 전공과는 무관한, 생소하고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2016년 형님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로 저는 심한 불면 과 우울에 시달렸습니다. 처방받은 약물 치료는 크게 도 움이 되지 않았고, 의외로 상담 치료를 위해 찾은 병원 진 료실 책장에 쓰여 있던 캘리그라피 액자가 작은 변화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무작정 붓펜 하나를 사서 책상에 앉 은 저는, 막상 무엇을 써야 하나 고민하다가 마침 책상에 있던 포켓용 성경을 펼쳐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붓펜과 붓은 다른 필기도구와는 달리 누르고 풀어 주 는 힘으로 획의 굵기를 조절해야만 아름다운 글씨가 만들 어집니다. 글씨를 쓰는 속도 또한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할 만큼 느립니다. 자세히 보고, 조용히 소리 내어 읽으며 천 천히 써 내려가야 본문을 틀리지 않고 옮길 수가 있어 많 은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도 하루에 몇 시간씩 작 업을 해도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렇게 성경 필사 를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문득 제 삶에서 일어 나는 모든 일에 하느님께서 깊이 관여하고 계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음은 더없이 평온해지고 하루의 시간이 온 통 말씀의 은총으로 채워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남아 있던 슬픔과 아픔을 있는 그대 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이 모든 것을 봉헌하 오니, 다만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그동안 내 뜻대로 바 라봤던 나는, 진정한 나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 서만 참된 나의 모습을 바라보십니다. 두려움과 슬픔과 분노가 아닌 평온하고 고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것 이 주님의 뜻이었으며 저를 그렇게 이끄셨습니다.
7년 전 상담 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문구점에서 산 붓펜을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지 금의 저에게 조용히 노래를 불러주는 듯 합니다. “내가 안 아줄게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멀리 멀리 잘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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