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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108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1. 8. 08:44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108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2GVzQx3nrF0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주님 세례 축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오늘은 주님이 요한이 베푼 세례를 받으셨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에게 오신 하느님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필요하지 않은 일들을 많이 경험하십니다. 전지전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주님은 세상에 오신 그 순간부터 너무나 무능하고 또 무지한 듯 느껴지는 사람의 삶을 함께 하셨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피하고 싶어하는 일들을 모두 겪으시려는 듯 싶기도 한 주님의 모습은 우리가 그분을 구세주로 여기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겪지 않고 싶은 모습이 많았습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의 증언처럼 요한보다 훨씬 더 큰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그럼에도 이 주님의 모습은 요한의 증언과는 딴판인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이 태어나실 때에야 어린 아기이시니 그렇다쳐도 성인이 되시고 공생활을 시작하신 후의 주님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의 세례가 그러하니 말입니다.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주님께서 서른이 되실 때까지 고향 나자렛을 벗어나지 않으신 것도 그러하거니와  요한이 베푼 세례라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고해성사의 의미에 더 가까워서 ‘죄를 씻는’ 의미의 행동이었습니다. 죄 많은 이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더러움을 씻어내듯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것이 세례였음에도 무죄하신 주님이 이 세례를 먼저 청하신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예수님의 마구간에서의 탄생에 대해 우리가 주님의 겸손과 가난이라는 주제를 떠올리듯 세례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세례를 받는 요르단강에 들어서서 주님과 함께 줄을 선 죄인들의 사이에 계셨다는 것에 우리는 주님이 그런 우리의 삶으로 당신을 위치시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님께 세례가 필요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주님의 세례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에 하느님이 함께 계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라는 것을 알게 하기에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희망이 됩니다. 그렇게 죄를 씻던 물에 주님이 함께 하시어 우리는 그 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구원은 죄인들을 물들였고 씻어냈으며 건져 올렸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말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1:2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