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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 | 위선으로는 지속할 수 없는 행위가 하나 있다 ,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2023 10 17

松竹/김철이 2023. 10. 17. 07:02

[위선으로는 지속할 수 없는 행위가 하나 있다 ] 전삼용 요셉 신부님,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2023 10 17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3RYbv_NU9aU

 

 

 

가해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 위선으로는 지속할 수 없는 행위가 하나 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손을 씻지 않고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안 좋은 생각을 품습니다.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은 율법이라기보다는 관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을 꼬집습니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나쁜 욕망으로부터 깨끗해지는 방법도 제시하십니다.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세 범주로 나뉩니다. 모든 행위는 ‘욕구’에 의해 발동됩니다. 인간의 기본 욕구는 ‘생존 욕구’입니다. 곧 더 가지고 더 먹고 더 세지려는 욕망입니다. 아기들의 모든 행동은 이 생존 욕구에 기인합니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행위가 첫 번째 범주입니다. 
두 번째 범주는 그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오는 방어기제입니다. 오늘 바리사이들이 하는 행동들입니다. 곧 손과 접시를 깨끗이 씻는 행위입니다. 이것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이 깨끗함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이는 속이 더러움을 감추기 위한 위선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범주입니다. 
두 번째 범주의 행동은 첫 번째보다 더 안 좋습니다. 본인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남을 속이는 것은 물론이요 본인들도 속기 때문입니다. 본인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본인들은 남들보다 깨끗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스스로 나아질 기회를 잃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의 행동은 첫 번째에 속했기 때문에 회개할 수 있었으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그 위선적 행동으로 깨끗해질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구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범주는 생존 욕구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입니다. 이러한 목적이 그 사람을 깨끗하게 만듭니다. 교회에서는 그 방법으로 기도와 단식과 자선을 하라고 권합니다. 생존 욕구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으로 하는 기도와 단식과 자선은 모두 그 사람을 깨끗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어떻게 인간이 깨끗해질 수 있는지를 몸소 모범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와 단식을 제외하고 ‘자선’만을 강조하실까요? 사실 기도와 단식은 위선적인 두 번째 범주에 속하는 행위로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기도는 오래 하고 단식하며 힘든 얼굴을 하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자선만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망은 욕망의 가장 근저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1티모 6,10)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도 십일조를 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자선을 베풀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것에서 재산에 줄어드는 모습을 보고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 중 어떤 누구도 매일 기도할 수 있고 매일 단식할 수 있는 사람은 있어도 매일 자선을 베풀어 성인들처럼 가난해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만큼 재물이 욕망의 근저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선악과를 바치는 것, 곧 십일조를 바치는 것, 제때 소출의 일부를 주님께 드리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영화 ‘황시의 아이들’(The Children of Huang Shi)은 1930년대 중국의 진실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1937년 중국에서 일어난 일본군의 침략 중에 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합니다. 중심인물은 영국 기자 조지 호그는 특종을 잡을 욕심에 일본군의 무자비한 난징 학살 현장을 취재하던 종군기자입니다. 그는 일본군에 붙잡혀 사형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잭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지만 부상으로 돌아갈 처지가 못 된 그는 안전한 ‘황시’로 몸을 피합니다. 
황시에는 고아원이 하나 있었는데 60명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조지는 처음에는 고아들을 위해 도와주려는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아이들과 가족 같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또한, 그는 아이들을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700마일을 걸어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 여정 중에 그는 아이들을 위험에서 보호하려는 노력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교육도 제공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를 통해 조지는 단순히 기자에서 아이들의 보호자, 교사, 그리고 친구로 변모하게 됩니다.
이 여정을 통해 조지는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며, 고아들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진정한 사랑, 희망, 헌신에 대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내면의 변화와 성장,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강인함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욕심은 사랑할 때 사라집니다. 
자선이 그만큼 강력한 힘을 얻는 이유는 바로 ‘사랑’에 가장 근접해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도와 단식도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 악한 욕망의 반대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자선은 사랑에 근접합니다. 그래서 저절로 악한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쉰들러는 돈만 아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유태인들을 돕기 위해 자기 재산을 쓰다가 결국 재산을 다 잃고 맙니다. 그런데도 마지막에 자기 차를 팔지 못한 것, 금 배치를 팔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그것을 팔았더라면 몇 명은 더 구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욕망은 재물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재물로 얻은 기쁨이 재물에 대한 욕심을 사라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선은 그만큼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데 강력한 무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