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농부는 땅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2023 07 28, 전삼용 요셉 신부님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IjJM_pexXm0
가해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 좋은 농부는 땅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해설해 주십니다. 길-교만, 돌밭-육욕, 가시밭-탐욕을 갈아엎은 좋은 땅은 좋은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좋은 열매를 맺는 땅임은 어떻게 알까요? 좋은 땅은 곧 좋은 농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땅에 상관없이 씨를 뿌리고 있다면 좋은 땅입니다. 결국 주님께서 우리가 되게 하시려는 사람은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주님께서 뿌려진 땅은 이웃을 사랑하는 열매를 맺는 땅입니다. 그 이유는 그 땅 안에 그리스도께서 뿌려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복음을 전하는 이와 함께 계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만큼 큰 사랑의 실천은 없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이가 복음을 전하는 이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에제키엘서에 예언자를 파견하실 때 하느님은 그에게 말씀을 먹여주십니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배를 불리고 속을 채워라.’ 그리하여 내가 그것을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 집안에게 가서 그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에제 3,3-4)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그 맛에 꿀처럼 답니다. 기쁨에 넘칩니다. 하지만 그것이 소화가 되면 배를 아프게 합니다. 이와 비슷한 다른 말씀도 들어봅시다.
“나는 그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 삼켰습니다. 과연 그것이 입에는 꿀같이 달았지만 먹고 나니 배가 쓰렸습니다. 그때에, ‘너는 많은 백성과 민족과 언어와 임금들에 관하여 다시 예언해야 한다’하는 소리가 나에게 들려왔습니다.”(묵시 10,10-11)
왜 말씀을 깨달으면 기쁘면서 동시에 배가 아플까요? 바로 그 말씀은 사랑인데 그 사랑의 기쁨을 나만 느끼는 것이 마음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언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언을 한다는 말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자녀는 굶고 있는데 어떤 부모가 꿀처럼 맛있는 것을 먹고 자녀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땅은 그래서 말씀을 다시 뿌리는 좋은 농부입니다. 그런데 착한 농부는 길과 돌밭과 가시밭을 가리지 않고 씨를 뿌립니다. 누가 나의 말을 무시하든 욕을 하든 공격하든 무조건 뿌립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복음을 받아들인 이는 더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밭이 무서워서 씨를 뿌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이유는 모든 권한을 가진 하느님을 자신 안에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에는 지금은 목사님이 된 ‘고구마 전도왕’이라고 불리는 김기동 목사가 있습니다. 그는 고구마 전도법으로 노상 전도로만 수천 명이 세례를 받게 한 인물입니다. 그도 아내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반대하고 목사님 설교할 때 중앙을 가로질러 예배를 방해하기도 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교회를 가지 못하게 차에 태우고 두 어린아이와 함께 스키 타러 가는 중 커다란 사고가 발생합니다. 자신도 많이 다쳤지만, 그는 모두가 무사하게 해 달라고 믿지도 않는 하느님께 기도했고 하느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목사님은 그를 바로 노상 전교로 데려갔고 그는 첫날 네 명에 실패하고 다섯 번째 사람에게 전교하게 됩니다. 기도 중 그는 고구마와 감자가 삶아지는 모습을 보고 젓가락으로 찔러보는 것처럼 선교하게 됩니다. 고구마가 무서워서 젓가락으로 찌르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그 분에게 정말로 그런 환시를 보여주셨다고 믿습니다. 효과가 있기 때문이고 신학적으로도 맞기 때문입니다. 자신 안에 하느님을 받아들인 사람이, 심지어 하느님을 손 위에 얹고 그분을 집어 입에 넣으면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사람을 보며 두려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좋은 밭에 떨어져 우리 안에 머무시는 분은 모든 권능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김기동 목사는 자신이 아무 힘도 없을 때 자기 가족을 아무도 죽지 않게 해주신 그분이 자신과 함께 계신 것을 믿기 때문에 전도할 때 힘들지 말라고 주님께서 씨앗이 뿌려질 대상을 고구마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좋은 농부는 땅을 무서워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 사람이 고구마로 보이지 않으면, 그냥 밭이나 길이나 자갈밭으로 보이지 않으면 그 안에 권능의 주님께서 함께하신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간은 광야에서 아무 먹을 것도 없이 버티실 수 있으셨던 것은 아버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와 아버지의 모든 권한을 지니신 분이 함께 계십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문을 두드립시다. 존 스타트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만일 복음이 그 자체가 주장하는 대로 기쁜 소식이며 또한 우리를 확신시키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영적♡꿀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쉬기날기] 2023년 7월 28일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복음묵상 안내 (0) | 2023.07.28 |
---|---|
생활성서 듣는 소금항아리 [20230728 연중 제16주간 금요일](김효준 레오 신부님) 매일미사 (0) | 2023.07.28 |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 하느님을 마주하다 (0) | 2023.07.27 |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 기적과 신비의 차이! (23/07/27) (0) | 2023.07.27 |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30727 오늘의 말씀 (0) | 2023.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