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셋이 하나고, 하나가 셋이다” | 차광철 베다 신부님(점촌 본당 주임)

松竹/김철이 2023. 6. 4. 09:08

“셋이 하나고, 하나가 셋이다”

 

                                                             차광철 베다 신부님(점촌 본당 주임)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께서 사랑 안에 온전히 일치된 한분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세분 하느님이 아니라 유일하신 한분 하느님을 믿는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하지만 이 삼위일체 교리는 부족한 우리 머리로써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셋이 하나고, 하나가 셋이다.’ 그것을 머리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신비’라고 표현합니다.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에 속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이해가 아니라 신앙이 요구되는 부분인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해 우리 인간의 머리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너무나도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신학자들이 즐겨 하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더 위대한 분이시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해를 늘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방금 우리가 들은 복음 말씀도 이를 분명히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생각했습니다. 심판하시는 하느님, 벌주시는 하느님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보여주셨습니다. 구원하시는 하느님, 용서하시는 하느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스페인의 한 성당 고해소에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십자가가 달려 있다고 합니다.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오른팔이 못에서 빠진 채 밑으로 내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이 십자가 아래에서 어떤 남자가 진심으로 통회하며 수많은 대죄를 고백했습니다. 사제는 그에게 사죄경을 암송하며 앞으로 다시는 죄 짓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 사람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얼마 동안 약속을 성실히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도 나약한 인간이었습니다. 사제는 그의 죄를 하느님의 이름으로 다시 용서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습관적으로 인간적 나약함 때문에 다시 죄에 떨어졌을 때, 사제는 그의 회개의 진정성을 의심했고 용서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당신 오른손을 못에서 빼내 그 사람에게 구원의 표지인 십자가를 그어주신 다음 사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를 위해 피를 흘린 것은 그대가 아니라 바로 나다!” (<하늘은 땅에서 열린다> p.33)

 

“하느님은 언제나 더 위대한 분이십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시는 분입니다.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라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부족하고 죄스럽기 그지없는 우리에게 당신 몸을 내어주러 오시는 분입니다. 그분께 의탁하며, 감사한 마음 가득 가지고 성체께로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