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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부모에게 아끼는 자녀가 형제에게 아끼지 않을까?/ 성주간 월요일/ 2023 03 03

松竹/김철이 2023. 4. 3. 07:41

부모에게 아끼는 자녀가 형제에게 아끼지 않을까?/ 성주간 월요일/ 2023 03 03/ 전삼용 요셉 신부님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ccitZzD0tUQ

 

 

 

 

가해 성주간 월요일 – 부모에게 아끼는 자녀가 형제에게 아끼지 않을까?

 

영화 ‘라이언 킹’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파사는 프라이드 랜드의 왕으로, 아들 심바와 함께 평화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어린 심바는 세상을 발견하며 성장하고 있고, 아버지 무파사는 그에게 왕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가르칩니다. 하지만, 무파사의 동생 스카는 왕위를 탐내며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스카는 하이에나들과 결탁하여 무파사를 살해하고, 심바를 쫓아내어 왕위를 차지합니다. 심바는 삼촌 스카가 아버지를 살해한 것을 알지 못하고 삼촌 스카의 말대로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여 프라이드 랜드를 떠납니다. 스카는 심바까지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합니다.

심바는 목숨을 건진 덕분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친구 품바와 티몬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과 함께 성장하며, ‘하쿠나 마타타’라는 철학에 따라 걱정 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성장한 심바는 운명적으로 그의 과거와 마주하게 되고 어린 시절의 친구 나라를 만납니다. 나라는 프라이드 랜드의 현재 상황을 알려주며, 심바에게 왕의 자리에 서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스카가 하이에나와 결탁하여 프라이드 랜드가 황폐해졌기 때문에 모두가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심바는 처음에는 자신의 과거를 회피하려 하지만, 무파사의 영혼과의 만남을 통해 용기를 얻게 됩니다. 아버지의 뜻을 물려받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책감과 삼촌, 그리고 하이에나들과 대결을 해야 합니다. 결국 심바는 나라, 품바, 티몬과 함께 프라이드 랜드로 돌아와 스카와 전투를 벌입니다. 스카는 패배하고, 심바는 왕의 자리에 다시 오르게 됩니다. 영화는 새로운 왕실의 탄생과 함께 평화롭게 회복된 프라이드 랜드를 보여주며 끝납니다.

심바가 프라이드 랜드의 형제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바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부끄러움도 무릅써야 하고 목숨까지 내어놓아야 합니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께 대한 효성이 자기 친구들에게 행복을 주는 길이었습니다. 만약 아버지의 뜻에 자기를 바치지 않았다면 그의 친구는 품바와 티몬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길은 부모를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그 대상에게 자신을 봉헌합니다. 부모의 뜻에 자신을 봉헌하지 않는 사람은 그 부모의 형제들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타니아의 마리아는 예수님께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발라 드립니다. 2~3천만 원 상당의 상당히 고가인 향유입니다. 이것을 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합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예수님께 아끼는 자가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 때문에 요한은 이렇게 주석을 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봉헌하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성경에서는 베타니아의 마리아와 막달라의 마리아가 다른 인물처럼 나오지만, 하.사.시.에는 동일 인물로 나옵니다. 곧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다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한 여인이 된 것입니다. 봉헌이 곧 사랑입니다. 얼마만큼 줄 수 있느냐가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의 정도로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에게 아끼는 자녀는 당연히 형제들에게도 아낄 수밖에 없습니다. 형제는 부모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으면 형제의 의미도 사라집니다. 따라서 부모에게 아끼지 않는 자녀가 형제간에도 아끼지 않습니다. 결국 그리스도께 봉헌함이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시작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카리옷 유다처럼 예수님께까지 질투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부모에게 아끼는 사람은 형제에게도 아낍니다. 하느님께 아끼는 사람은 그분의 모든 피조물에도 아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어떤 피조물에게도 좋은 일을 하지 못하고 어떤 피조물에게도 사랑받지 못합니다. 하느님께 아끼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길로 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기 위해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아끼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