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수필

겨울 문턱에서

松竹/김철이 2022. 12. 21. 14:19

겨울 문턱에서

 

                                                                                      김철이



국제통화기금과 유엔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경제성장 순위 세계 10위라더니 마음을 비우고 주변을 두루 살펴보면 여전히 빈곤층 사람들의 신음이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흉년이 들어 식량이 모자라면 울며 보채는 아이들만 먹이게 되므로 아이들은 배부르게 먹어도 어른들은 애써 참으며 굶주림에 시달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뜻으로 “흉년에 어미는 굶어 죽고 아이는 배 터져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피부로 느끼는 추위가 한층 더한 올해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니 이 속담이 저절로 가슴을 파고들어 아픈 마음을 더더욱 아프게 한다.

"가난과 차별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 이억 육백만 명"이라는 유네스코 통계가 예견하듯 경제성장 세계 10위라는 선진국 호칭을 듣는 이즘에도 삶의 중심에서 한순간 곁눈질만 해도 훤히 보이는 모습이 빈곤층의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흘러간 한때 대한민국 대통령 중 한 이가 "나, 이 사람 보통 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라는 어불성설로 ‘보통 사람의 시대’ 운운하며 민심을 회유했었는데 개가 들어도 요절 복통할 막말이 아닌가! 2020년대 기준으로 453만 원이 보통 사람의 월 소득이라는데 경제성장률에 비례하여 반액을 감액한다고 해도 1988년 당시 보통 사람의 월 소득은 200여만 원에 불과했을 텐데 세끼니, 윤이 반질반질 나는 쌀밥에 곁들여 고기반찬이 떨어질 리 만무하고 몇 걸음 안 되는 거리에도 수행비서에 경호원을 거느리고 고급 승용차에 비행기만 이용했던 사람이 어떻게 보통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밤이 되면 너무 추워서 코가 시려 이불을 머리까지 감싸고, 겉옷을 입은 채 잠자리에 드는 이, 보일러 고장으로 몇 년에 걸쳐 연탄난로 하나로 혹독한 겨울을 나는 이, 연탄 한 장이라도 아껴 때다 보니 겉옷을 입은 채 방 안에 앉아있어도 얼굴이 시려 따가움을 느끼는 이, 살이 에이는 듯하여 찬 바람을 막아보려 비닐로 창문을 감쌌지만 별 소용이 없어 자포자기하는 이들의 삶이 고단하고 아프기까지 한데도 최저생계비 1일 체험에 다녀온 뒤 "육천삼백 원짜리 황제의 삶을 살았다."는 천하에 둘도 없을 막말로 사회의 논란을 일으키는 한편 서민층, 빈곤층의 공분을 샀던 모 국회의원에게 묻고 싶다. 

그대는 절도 집도 없이 사는지? 그대는 일 년 삼백육십오일을 하루 같이 쌀 한 컵과 쌀국수 한 봉지, 비트볼 한 봉지, 참치캔 한 개로만 생활할 수 있는지를 그래서 받는 이 배 터지게 기부도 하고 문화생활도 가뿐히 누렸는지를 철부지 어린아이들 눈에도 훤히 비칠 세상 이치를 따져본다면 빈곤층의 삶을 사는 이들이 자가(自家)를 지녔을 리 만무하니 남의 셋방살이하려면 매월 월세도 나갈 터, 아울러 기본적으로 소비되는 전기요금, 수도 요금에 덧붙여 기타 공과금을 비롯해 하루를 살아가자면 돈이 한 걸음 앞서는 건 당연지사인데 평등사회를 구연하고 보통 국민의 대변인이 되어야 할 본분의 소유자가 이다지도 영양가 없는 망언을 서슴지 않는다면 보통 사람 보통 국민은 누굴 믿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 한다고는 하지만, 동냥은 못 해도 쪽박은 깨지 말라는 교훈처럼 몸도 마음도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은 되지 못해도 치유 불과한 마음의 상처는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별한 사람이면서 보통 사람임을 강조했던 이나 억의 삶만 살다 보니 빈곤층 사람들 삶이 애처로웠던지 육천삼백 원짜리 삶을 실천했던 이가 따뜻한 사람 사는 향기를 맡지 못한 듯싶어 그들에게 보통 사람들의 참삶의 향기를 맡게 해 주기 위해 내 장년기에 체험했던 체험 보따리를 풀어보려 한다.

체험담 속 주인공은 내 이웃사촌 중 한 구성 가정이었다. 그 가정의 가족 구성원은 사십 대 중반 부부의 슬하에 일남이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위로 두 딸은 건강했지만, 막내인 아들은 선천성 백혈병을 지닌 채 태어났다. 이 가정의 가장은 봇물 터지듯 들어가는 아들자식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버거워 낮에는 중소기업 과장 대리로 근무하고 퇴근하기 무섭게 대리운전을 하곤 했는데 어느 해 겨울 만취한 차주가 운전 중에 시비를 걸어오는 통에 추돌사고로 이어져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직장은 물론 부업으로 일하던 대리운전조차 놓고 말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에 걸맞게 고정적인 수입이 있어도 아들자식 뒷바라지하기가 수월하지 않을 텐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장이 일손을 놓으니 아들자식 병원비는 물론 가족들의 생계에까지 위협을 받았다. 궁여지책으로 안주인은 아들과 남편의 병간호를 두 딸에게 번갈아 맡겨두고 동네 어귀에 손수레를 놓고 호떡과 붕어빵을 구워 팔았다. 타고난 심성이 올곧았던 덕에 평소 어른 알고 아이 알며 남녀노소 이웃사촌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았고 그 생활 습관 덕택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교훈이 눈앞에 살아났다.

동네 아이들이 등교해 학교에 있을 시간엔 동네 아낙네들이 틈틈이 번갈아 가며 그 가정의 가사와 안주인의 장사 일을 돕는가 하면 아이들은 순서를 정해 하굣길에 수레 가게에 들러 호떡과 붕어빵 굽는 일을 도왔는데 춘삼월 꽃소식이 찾아오듯 정말 호떡집이 불이 난 것이다. 일심동체 개미군단이 힘을 모으니 가게 장사는 문전성시를 이뤘고 덕분에 병든 부자의 병원비는 물론 그 가정의 모든 생활비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그 후 가사 일을 도울 도우미도 구했고 그동안 무임금 헌신적으로 도와준 동네 아낙들에겐 나날이 번갈아 가며 마땅한 임금을 지급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소소하지만, 따뜻한 마음들이 모이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교훈을 보여준 실화가 아니었나 싶다. 겨울 문턱에 들어선 이즈음 “인간은 입이 하나 귀가 둘이 있다. 이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 더하라는 뜻이다.”라는 명언을 영혼에 아로새겨 주변에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가 없는지 두루 살펴봄이 옳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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